시읽는기쁨

진달래 시첩 / 조명암

샌. 2025. 4. 23. 07:48

진달래 바람에 봄치마 휘날리더라

저 고개 넘어간 파랑 마차

소식을 싣고서 언제 오나

그날이 그리워 오늘도 길을 걸어

노래를 부르노니 노래를 불러

앉아도 새가 울고 서도 새 울어

맹서를 두고 간 봄날의 길은 멀다

 

갈 길도 멀건만 봄날도 길고 길더라

돌 집어 풀밭에 던져보면

이렇단 대답이 있을쏘냐

그날이 그리워 오늘도 길을 걸어

노래를 부르노니 노래를 불러

산 넘어 산 있고 물 건너 벌판

기약을 두고 간 봄날의 길은 멀다

 

범나비 바람에 댕기가 풀어지더라

산허리 휘감은 아지랑이

봄날은 소식도 잊었는가

그날이 그리워 오늘도 길을 걸어

노래를 부르노니 노래를 불러

아가씨 가슴속에 붉은 정성과

행복을 두고 간 마차의 길은 멀다

 

- 진달래 시첩 / 조명암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이 노래를 들었다. '진달래 시첩'은 1941년에 가수 이난영이 불렀는데 가사는 월북한 시인인 조명암이 썼다. 옛 노래는 촉촉이 내리는 봄비처럼 가슴을 적시며 흐른다. 

 

조명암(본명 조영출, 1913~1993)은 충남 아산 출신으로 일제강점기에 건봉사에서 지내다가 만해 선사의 주선으로 보성고보에 진학하고 일본 와세다대 불문과를 졸업했다. 시인이며 작사가로 활동하다가 해방 뒤 월북하여 북한의 문화성 부상까지 지낸 인물이다. 그가 작사한 노래는 모두 금지곡이 되었다가 1994년에서야 해금되었다.

 

가사는 떠나간 임이나 그 무엇을 향한 그리움으로 가득하다. 소월의 '진달래꽃'에서 느끼는 이별, 슬픔, 그리움이 이 노래 속에도 들어있다. 진달래의 화려한 색깔의 이면에는 그런 이미지가 녹아 있는 것 같다. 요즘 같은 봄날이면 멋들어지게 불러보고 싶은 노래다. 노래방이라도 찾아가서 폼을 잡고 싶지만, "노래를 부르노니 노래를 불러", 이럴 때는 음치인 게 너무 답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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