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학년이 되니 새해가 되어 주고받는 인사조차 덤덤하다. 친구들이 모인 단톡방도 예전 같이 시끌하지 않다. 어쩌다 새해 인사가 올라오지만 반응이 심드렁하다. '오는 년이나 가는 년이나' 별다르지 않다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더구나 우리나라는 신정과 설날이라는 두 번의 새해가 있어 덕담 주고받기도 과유불급이 되기 십상이다.
이런 얘기를 했더니 한 친구는 그래도 기념일인데, 라며 동의를 못하는 표정이었다. 자주 안부를 전할 수 있으니 좋지 않냐는 것이었다. 그런 생각이 들다니 부럽기도 하다. 아무래도 나는 세상사에 대해 시니컬한 측면이 있다. 인사치레라지만 마음에 없는 소리를 지껄이는 게 싫다. '복(福)'이 너무 남용되어 싸구려로 전락한 느낌도 싫다.
설 연휴 당구장은 문전성시였다. 영감들이 집에 있지 않고 모두 당구장에 몰린 것 같았다. 자리를 찾느라 세 군데나 돌아다니다가 결국 포기했다. 누군가 말했다. "명절에 찾아온 가족들과는 잠깐만 있어주고 자리를 피하는 게 서로가 편해." 그래서 당구장이 노인들로 만원이 된 것인가. 씁쓸했다.
반주로 술 한 병을 했다. 모인 여섯 명 중 술을 반은 마시고 반은 안 마신다. 마시는 사람은 각 한 병을 책임진다. 나에게 절주(節酒)란 소주 한 병이 경계선이다. 이 정도라야 집에 들어갔을 때 아내가 술 마신 걸 눈치채지 못한다. 소주 한 병이면 마실 때 기분이 좋고, 마신 뒤에도 별 부담이 없다. 술기운을 빌려 씰데없는 말을 떠벌리지 않는 것이 다행이었다.
자리를 파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그저께 내린 눈이 녹지 않아서 조심스레 걸어야 했다. 발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다정했다. 적당하게 싸늘한 냉기도 좋았다. 저잣거리의 소란에서 벗어난 나만의 조용한 시간을 즐기며 천천히 걸었다.
오는 년 가는 년에 너무 매정했던 건 아닌지 조금은 미안해졌다. 설날 연휴 중의 어느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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