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순하 작가의 단편소설집이다. '죽음을 주제로 한 연작소설'이라는 부제대로 아홉 편의 단편소설이 모두 죽음을 다루고 있다. 어떻게 죽느냐는 어떻게 사느냐와 연관된다. 그러므로 이 소설집은 죽음에 대한 진지한 사념이면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에 대한 물음이라고 할 수 있다.
각 단편을 요약하면,
1) 바보아재
톨스토이의 '바보 이반'을 연상시킨다. 유치원생 정도의 지능이지만 착하고 순수한 바보아재와의 추억을 통해 영악해진 우리의 삶을 반성한다. 바보아재는 천수를 누리고 누구보다 많은 문상객의 조문을 받으며 세상을 뜬다.
2) 얼굴 하얀 그 사람
데레사 수녀가 세운 인도의 '임종의 집'에서 만난 한 한국인의 죽음을 그렸다. 아무 인적사항이 알려지지 않은 그는 자신이 평생 봉사한 '임종의 집'에서 쓸쓸히 생을 마감한다.
3) 할멍구와 백수건달
외로운 두 사람, 할멍구와 일용직 노동자의 따스한 인간애를 그린 소설이다. 막장 인생으로 보이지만 비슷한 처지의 이웃에 대한 동정심이 뭉클하다. 못난 사람은 못난 사람끼리 의지하며 살아야 하는가 보다. 세상에 미련이 없으면 죽음도 무겁지 않다.
4) 그날, 그리고 그 다음날 새벽
실적을 올리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자동차 영업사원의 이야기다. 가족을 먹여살려야 하는 부담감과 동료와의 경쟁, 삶은 전쟁터다. 그의 마지막은 돌연사였다.
5) 똥 싸는 시어머니
똥 싸는 시어머니를 모시는 며느리의 애환과 솔직한 심정을 잘 묘사했다. 죽음이 아니면 화해할 수 없는가?
6) 태식이 엄마
자식과 사이가 나쁜 남자는 노년을 간병인에게 맡긴다. 재산도 전부 그 여자에게 물려준다. 자식은 아버지의 유산에만 관심이 있다. 결국은 자식과의 말다툼 충격으로 사망한다. 자식과의 갈등과 현대인의 물욕을 다룬 소설이다.
그 외 '봉선화', '공범', '찬란한 춤'이 있다.
글은 부드럽고 자연스러워 편하게 읽힌다. 작가 자신도 약 30년 전에 죽을 고비를 넘기고 살아난 경험이 있다. 그 체험이 죽음에 대해서 깊이 들여다보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삶이 더 남루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죽음에 대해 생각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죽음은 우리를 겸손하고 숙연하게 한다. 작가는 이를 '격세의 위안'이라 이름 붙였다.
"현실에서든, 상상에서든, 죽음을 민낯으로 마주하게 될 때마다 어김없이 옷깃 여미게 되는 숙연함은 또 어떤가요. 피가 서늘하게 정화되는 듯한 이런 숙연함, 이 현실 다른 어느 경우에서도 느껴볼 수 없을 듯합니다. 그런 숙연함 다음에는, 적어도 당분간이나마, 삶에 대한 근심 걱정이 스스로 느낄 만큼 묽어지는 것도, 그때마다 늘 새롭죠."
누구나 죽음을 맞지만 생의 마지막은 개인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좋은 삶을 떠나서 좋은 죽음이 있을 수는 없다. 그렇다고 좋은 삶이 좋은 죽음을 보장해주지는 못한다. 어느 경우든 우리가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자각은 중요하다. '메멘토 모리'는 조금이라도 더 의미 있게 살아보려는 가련한 인간의 몸부림인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