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호 작가의 첫 소설집으로 '최순덕 성령충만기'를 포함해 일곱 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나온 지 14년이 되어선지 최근에 나온 작품과는 분위기가 다르다. 냉소적이면서도 싱싱한 야성의 냄새가 난다.
등장하는 인물들이 특이하다. 밑바닥 인생을 사는 사람들, 교양 없이 막돼먹은 사람들이 주다. 그런 사람들을 통해 세태를 고발하고 잘난 척하는 사람들의 위선을 까발린다. 더러운 욕망의 카니발에 그들은 민낯을 드러내지만 우리는 가면을 쓰고 점잖은 척 할 뿐이다.
책 제목으로 삼은 '최순덕 성령충만기'는 성경의 장과 절을 흉내 낸 형식이 재미있다. '하나님의 종 하나님의 의인 최순덕에게 내린 성령의 감화 감동 이야기라 이곳에 하나의 보탬과 빠짐없이 기록하나니'가 1장 1절이다.
최순덕은 열심 신자인 부모 밑에서 오로지 하나님에 대한 믿음에만 의지해 성장했다. 성경이 절대 진리이고 세상을 보는 잣대였다. 우리 주변에서 가끔 볼 수 있는 광신도가 되어 간다. 지적 결핍을 느낄수록 믿음의 울타리 안으로 숨는다.
길거리에서 우연히 만난 바바리맨을 구원하는 게 자신의 소명이라 여긴 최순덕은 집요하게 그를 전도한다. 소설은 코믹하고 시니컬하게 그 과정을 그려나간다. 누가 누구를 구원해야 하는가? 사실 구원받아야 할 사람은 최순덕 본인이 아니던가. 오히려 바바리맨이 정신적으로는 더 건강해 보인다.
신앙에도 여러 단계가 있다. 사람이 육체적으로 성장해 나가듯 신앙도 어린 시절을 벗어나 자라나야 한다. 유치한 단계에 머물러 있는 신앙을 '믿음 좋다'고 부추기고 가르쳐서는 안되겠다. 그건 교회 지도자의 책임이다.
최근의 이기호 작가의 글과 비교하면 같은 사람이 쓴 게 맞나 싶을 정도로 스타일이 다르다. 젊은 혈기가 느껴진다. 지금은 일상 생활을 감칠맛 나게 풀어내는 노련한 이야기꾼이 되었다. <최순덕 성령충만기>는 작가의 젊은 시절을 만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