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꼰대 김철수

샌. 2018. 9. 27. 14:24

나이가 들면서 경계하는 일 중 하나가 꼰대 소리를 듣지 않기다. 대부분의 꼰대는 제가 꼰대인 줄 모른다. 그래서 무섭다. '꼰대'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늙은이나 선생님을 가리켜 청소년이 사용하는 은어'라고 나와 있는데, 자신의 구태의연한 사고방식을 가지고 타인에게 강요하는 사람으로 주로 쓰인다. 노인 중에 꼰대가 많은 건 당연하다.

 

꼰대는 자기 확신이 너무 강하다. 자기 경험과 사고 프레임 안에 갇혀 있다. 혼자 무엇을 믿든 상관할 바 아니나, 남에게 지적질하고 훈계하니 문제다. 간섭, 지적, 조언, 충고, 호통 등이 꼰대 짓의 모습이다. 여기에 권위가 더해지면 그 폐해가 심각하다. 꼰대는 정신 질병이다.

 

이 책 <꼰대 김철수>는 꼰대의 행태를 낱낱이 고발한다. 읽으면서 뜨끔한 부분이 많다. 꼰대란 고정관념을 진리로 믿는 사람이기도 하다. 꼰대는 사고가 딱딱하게 굳어 있다. 꼰대에서 벗어나기란 제대로 선 성인이 되는 일에 다름 아니다. 꼰대들의 생각과 언어를 살펴 경계한다면 인간됨의 유치한 단계를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책에는 '꼰대어 사전'이 나온다. 꼰대임을 드러내는 말과 행동이다.

 

왕년

자기 자신을 철저히 초라하게 만들고 싶을 때 사용하는 자학어 또는 자멸어. 자신이 한때 잘나갔음을 부각함으로써 지금 내가 얼마나 보잘것없는 사람인지 만천하에 자백하는 데 상당한 효과가 있다.

 

오지랖

웃옷의 앞자락. 뒤끝 있는 디자이너는 미워 죽을 것 같은 모델에게 오지랖을 최대한 넓게 디자인한 옷을 만들어 입힌다. 모델은 쓸데없이 넓은 오지랖 때문에 아무리 맵시 있게 워킹을 해도 폼이 나지 않으며 때론 오지랖에 다리가 걸려 무대에서 넘어지기도 한다. 옷도 사람도 오지랖이 너무 넓으면 불량품.

 

통일

한때는 우리의 소원이었던 단어. 꿈에도 소원이었던 단어. 하지만 이젠 음식점에서 식사 주문할 때 식성과 취향과 개성을 짓밟는 용도로만 겨우 생명을 유지하고 있다. 다른 용도로 이 단어를 사용하는 순간 종북 의심을 받을 수 있으니 주의할 것.

 

나이

한 사람이 살아온 길이. 살아온 깊이와는 무관. 실력의 길이와는 더욱 무관. 지혜의 깊이와는 더더욱 무관. 통찰의 깊이와는 더더더욱 무관. 사람의 깊이와는 더더더더욱 무관. 주름살의 깊이와는 유관.

 

버르장머리

버릇을 얕잡아 이르는 말. 그런데 왜 버르장다리나 버리장꼬리가 아니고 버르장머리일까. 다리나 꼬리는 쉽게 그 형태를 바꿀 수 없지만 머릿속에 든 생각은 쉽게 바꿀 수 있다는 무례한 자신감이 단어 속으로 기어들어 갔기 때문. 그러나 남의 생각을, 남의 버릇을 내 취향에 맞게 바꾸겠다는 생각만큼 버르장머리 없는 태도도 없다.

 

과장

실제보다 크고 높게 보이려는 과시욕이 불러내는 인생의 화근. 문학에서 과장법은 전하려는 메시지를 강조하는 데 도움이 되지만, 인생에서 과장법은 메시지는 물론 메신저의 신뢰에도 큰 타격을 준다. 나는 약간 과장이지만, 나는 약간 허풍이지만 상대는 그것을 거짓말로 받아들인다.

 

반말

말을 절반만 하는 것. 예를 들면 "미안하지만 오늘 중으로 꼭 처리해 주십시오"라는 말. 총 열여덟 글자를 사용해야 하는 이 말을 앞뒤 다 자르고 "오늘 중으로 꼭 처리해"라고 딱 아홉 글자만 사용하여 말하는 것. 입을 덜 피곤하게 하는 효과가 있을지는 모르지만 듣는 귀는 허벌나게 피곤하다.

 

단정

너희가 모르는 세상 진리를 나는 다 안다는 근거 없는 확신과 어처구니없는 자신감으로 무장한 강도가 선량한 시민 목에 자신의 가치관을 칼처럼 들이대고 복종을 강요하는 위험한 행위.

 

권위

독립적으로 사용하면 박수 받아 마땅한 단어. 꼬리에 다른 말이 붙으면 질타받아 마땅한 단어. 권위과 권위적은 전혀 다른 말이다. 권위와 권위주의는 전혀 다른 말이다. 권위 뒤에 자꾸 붙으려 하는 '적'은 적으로 간주하고 '주의'는 각별히 주의할 것.

 

흑백

총천연색 영화가 나오기 전 생각. 그러니까 20세기도 아니고 19세기 생각. 세상은 흑과 백 딱 두 가지 색깔뿐이라는 생각. 흥선대원군이 홍대 클럽 구석에 앉아, "사람인 듯 사람 아닌 사람 같은 저것들은 뭐지? 상투 틀지 않았으니 사람 아니야!" 이렇게 혼자 결론 내리는 먼지 폴폴 쌓인 생각.

 

우리

참 어려운 말. 사람을 껴안을 땐 차이를 극복해 내는 더없이 따뜻한 말. '너희'의 상대어로 쓰일 땐 작은 차이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더없이 차가운 말. 따뜻함과 차가움 사이를 왔다 갔다 하다 자칫 감기 걸리기 딱 좋은 어렵고도 어려운 말.

 

성공

남을 비난하는 이유. 남을 모함하는 이유. 남을 멸시하는 이유. 남을 속이는 이유. 남을 짓밟는 이유. 비난하고 모함하고 멸시하고 속이고 짓밟는 일에 인생을 낭비하는 이유. 가장 안타까운 것은 이것이 가족에게 소홀해도 되는 이유하는 것.

 

갑질

화를 돋우는 부채질. 복종을 강요하는 주먹질. 굴욕을 강제하는 발길질. 아픈 곳을 콕콕 쑤시는 바느질. 약점을 부풀리는 고자질. 허점을 퍼뜨리는 이간질. 결국 남의 인격을 훔치는 도둑질. 결국 자신의 인격마저 곤두박질. 그러니까 한마디로 우라질.

 

다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동의어가 많은 단어. 힘, 무죄, 수단, 방법, 요령, 목숨, 복종, 절대, 무적, 지위, 권력, 권위, 황제, 특별 같은 단어가 모두 돈의 동의어다. 반대말은 딱 하나, 사람.

 

불안

<꼰대어 사전> 마지막을 장식하는 단어. 국어사전엔 '걱정되어 마음이 편하지 아니함'이라고 뜻풀이가 되어 있는데 지금 내 마음이 딱 그러함. 꼰대들 너무 몰아붙인 것 같아 마음이 편하지 아니함. 그래서 그들을 이해하려는 노력 조금이라도 해 보려고 데려온 단어.

 

주변을 둘러보면 꼰대 행태를 보이는 사람을 쉽게 찾을 수 있다. 나도 예외가 아니다. 부지불식간에 꼰대짓을 많이 하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끊임없이 나를 돌아본다. 가능하면 내 식으로 재단하고 비난하는 일을 줄이고, 말을 줄이려 한다. 습성이야 어디 쉽게 바뀌겠는가. 우선 입을 막는 게 급선무다.

 

정철 작가가 쓴 <꼰대 김철수>는 재미있게 읽으면서 내 안의 꼰대를 찾을 수 있는 책이다. 나를 비추는 거울과 같다. 뒷 표지에는 '꼰대 체크리스트 15'가 있다. 두 개 이하가 나와야 성숙한 어른이다. 여섯 개 이상이면 이미 꼰대 경계경보가 발령되었다고 보면 된다.

 

1. 사람을 만나면 나이부터 확인하고, 나보다 어리면 반말을 한다.

2. 요즘 젊은이들은 노력은 하지 않고 세상 탓만 하는 것 같다.

3. "00란 000인 거야" 하는 식의 진리 명제를 자주 구사한다.

4. 후배의 장점이나 성과를 보면 반사적으로 그의 단점을 찾는다.

5. "내가 너만 했을 때"라는 말을 자주 한다.

 

6. 나보다 늦게 출근하는 후배가 거슬린다.

7. 고위 공직자, 유명 연예인과의 개인적인 인연을 자주 이야기한다.

8. 후배가 커피를 알아서 대령하지 않거나, 회식 때 삼겹살을 굽지 않으면 불쾌하다.

9. 자유롭게 의견을 말하라고 했는데 나중에 보면 내가 먼저 답을 제시했다.

10. 후배, 부하 직원의 옷차림과 인사 예절도 지적할 수 있다.

 

11. 내가 한때 잘나갔다는 사실을 알려 주고 싶다.

12. 연애, 자녀 계획 등의 사생활도 인생 선배로서 답을 제시해 줄 수 있다.

13. 회식, 야유회에 개인 약속을 이유로 빠지는 사람을 이해하기 어렵다.

14. 내 의견에 반대한 후배는 두고두고 잊지 않는다.

15. 나보다 성실하고 열정적으로 일하는 사람은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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