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여왕 마고

샌. 2018. 9. 3. 11:07

 

올 초 이탈리아에 여행 갔을 때 가이드가 메디치가를 설명하면서 카트린에 대한 일화를 재미있게 소개해 주었다. 어떤 여인인지 궁금하던 차에 마침 이 영화를 알게 되었다. 주인공은 카트린의 딸인 마고지만, 카트린도 중요한 역할로 나온다. 카트린이라는 인물과 그 시대 배경을 이해하는 데는 충분한 영화다.

 

카트린은 메디치 가문이 쇠락하던 1519년에 태어나서 프랑스 왕자에게 시집을 간다. 당시에는 이런 정략결혼이 다반사였다. 낯선 외국에서 카트린은 외롭게 살아간다. 남편에게는 사랑하는 여인이 있었고 결혼 후에도 그 관계는 공개적으로 지속되었다. 그러나 남편인 앙리 2세가 죽은 뒤부터 총명한 카트린은 실권을 잡기 시작한다. 그녀는 항상 검은 상복을 입었고, 왕인 아들 뒤에서 섭정으로 프랑스를 이끌었다.

 

영화는 1572년 카트린의 셋째 딸 마고와 나바르 국왕인 앙리의 결혼식으로 시작한다. 구교와 신교의 화해를 위한 정략 결혼이었다. 당시는 가톨릭과 개신교가 첨예하게 대립하던 때였다. 그러나 카트린의 의도와 달리 가톨릭에 의한 위그노(개신교)의 대학살이 일어난다. 결혼을 축하하기 위해 모인 위그노가 만 명 가까이 살해된 사건이다. 그 참상을 영화는 끔찍하리만큼 세밀하게 그리고 있다.

 

영화는 대학살의 주범으로 카트린을 지목하는 것 같다. 그 외에도 독살 등 여러 음모에 카트린이 관여한다. 늘 검은 옷을 입고 있어 음흉한 인상을 풍긴다. 영화가 꼭 역사적 사실을 가리키지는 않을 것이다. 가이드는 카트린을 온갖 난관을 헤쳐나간 대단한 여자로 평가했다.

 

그런 역할을 영화에서는 마고가 담당한다. 결혼식장에서 추기경이 마고에게 "앙리를 남편으로 맞이하겠는가"고 물었을 때 결혼에 대한 불만의 표시로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오빠인 샤를 9세가 강제로 머리를 수그리게 만들어야 했다. 그만큼 당당한 여자였다.

 

성적으로도 무척 자유분방했던 것 같다. 사랑하지 않은 남편과는 잠자리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피로연 기간에는 가면을 쓰고 나가 길거리의 남자와 육체적 즐거움을 나눈다. 음모와 권모술수, 성적 타락이 넘쳐나는 왕궁이었다. 근친상간도 쉽게 일어났다.

 

마고는 거칠지만 지혜롭게 어려움을 극복해 나간다. '여왕'이라는 호칭을 들을 만하다. 실제로 마고는 왕비이기는 했지만 여왕이 되지 못했다. 그런데도 이런 제목을 붙인 것은 그녀의 여왕다운 면모 때문이 아닌가 싶다. 어머니인 카트린을 그대로 닮은 것 같다.

 

마고가 사랑한 남자는 단두대에서 처형당한다. 영화는 마고가 그 남자의 머리를 싼 보자기를 안고 공식 남편인 앙리를 찾아가는 것으로 끝난다. 마차 안에서 시종이 "피가 드레스에 떨어집니다"라고 하자. 마고는 대답한다. "상관없어. 미소 지을 수만 있으면 돼."

 

'여왕 마고'는 마고와 카트린을 중심으로 16세기 유럽의 종교전쟁과 왕궁의 분위기를 잘 그려낸 영화다. 참으로 험난한 시대를 통과해서 오늘에 이르렀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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