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빅스비 선생님의 마지막 날

샌. 2024. 10. 22. 10:48

이런 책인 줄 몰랐다. 우선 초등학생이 나오는 소설로 어린이 도서에 속한다. 제목만 보고 죽음에 대한 철학적 담론이 나오는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내용의 대부분은 병원에 입원한 선생님을 찾아가는 아이들의 좌충우돌 소동이다. 소설 끝에 가서야 왜 아이들이 그런 행동을 했는지 가슴 뭉클해지는 멋진 마무리가 있다.

 

빅스비 선생님은 30대 중반의 여자로 초등학교 6학년 담임을 맡고 있다. 아이들을 가르치거나 대하는 태도가 특별한 선생님이다. 지식을 전수하는 교사가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성장을 도와주는 진정한 의미의 선생님이다. 책에는 선생님 유형을 여섯 가지로 나누면서 그중 '좋은 선생님'을 이렇게 묘사한다.

"이분들은 학교라는 고문을 견딜 수 있도록 해주는 유형이다. 우리는 좋은 선생님을 만나면 단번에 알 수 있다. 미술 시간이 아닌데도 수업에 집중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기 때문이다. 학년이 바뀌어도 찾아가서 인사하고 싶고, 실망시키지 않고 싶은 선생님이 바로 좋은 선생님이다. 빅스비 선생님처럼 말이다."

 

선생님 얘기가 나오면 내심 뜨끔하다. 나는 좋은 선생님이 한순간도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고서도 어떻게 30여 년을 견뎌냈는지 의아하다. 현실에서 빅스비 선생님 같은 분을 만나기는 힘들다. 소설이니까,라고 치부하며 이 책을 읽었다.

 

어쨌든 빅스비 선생님은 췌장암에 걸려 학교를 그만 두고 입원했다. 토퍼, 스티브, 브랜드 세 남학생은 학교를 몰래 빠져나와 선생님을 만나러 간다. 먼저 아이들은 베이커리, 헌책방, 와인점에 들러 물건들을 사고 그 과정에서 여러 우여곡절을 겪는다. 왜 이런 복잡한 절차를 밟았는지는 나중에 드러난다.

 

평소 빅스비 선생님은 책에서 읽은 좋은 구절을 칠판에 적어 아이들에게 알려 주고 함께 얘기를 나누었다. 그걸 아이들은 '빅스비어'라고 불렀다. 어느 날 빅스비 선생님은 이런 문장을 적었다.

"지구에서 머무는 날이 딱 하루 남아 있다면 그날을 어떻게 보내겠는가?"

아이들은 이 주제로 글을 쓰다가 선생님에게 물었다. 책의 해당 부분은 이렇다.

 

"선생님은요? 선생님은 어떻게 보내실 거예요?"

"내 마지막 날에? 정말 알고 싶니?"

반 아이들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선생님이 얘기를 길게 한다면 수학 시간이 그만큼 줄어들 것이고 그럼 우리는 퀴즈를 풀지 않아도 될 것이다.

"그래, 나의 마지막 날에는 치즈케이크가 있어야 해."

"치즈케이크요? 왜 치즈케이크예요?"

"만약 나한테 정말 마지막 날이 온다면, 살면서 내가 사랑하게 된 모든 것들에 감사하고 싶거든. 치즈케이크도 그중 하나야."

"정말요? 가족이나 친구들하고 보내지 않으실 거예요?"

"물론 그래야지. 하지만 치즈케이크는 꼭 있어야 해. 그리고 아무 치즈케이크가 아니라 시내 쇼핑센터 근처에 있는 미셸 베이커리의 화이트 초콜릿 라즈베리 슈프림 치즈케이크여야 해. 거기 가본 사람 있니?"

선생님의 질문에 겨우 두 사람만 손을 들었다.

"한 번쯤은 가봐야 해. 갈 만한 가치가 있는 곳이거든. 그리고 이런 말은 하면 안 되겠지만... 솔직히 털어놓자면 와인도 있어야 해. 치즈케이크의 맛을 더 돋워줄 수 있는 게 필요하거든. 아, 그리고 감자튀김도."

"감자튀김요?"

"맥도날드 감자튀김. 마지막 날이니까 라지 사이즈로 시킬 거야. 그리고 음악이 있어야 해. 차이콥스키 아니면 베토벤. 웅장하고 압도적이면서도 약간 슬픈 걸로. 나와 우리 가족, 친구들만을 위한 오케스트라 연주로 말이야. 우린 모두 나무로 둘러싸인 언덕에 앉아서 치즈케이크와 감자튀김을 먹을 거야. 먹고 마시고 웃겠지.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고 추억도 많이 만들 거야. 하지만...."

선생님이 손가락을 들어 올리며 말을 끝맺었다.

"작별 인사는 하지 않을 거야."

 

세 아이가 왜 미셸 베이커리에서 '화이트 초콜릿 라즈베리 슈프림 치즈케이크'를 사고, 와인점과 맥도널드에 들어갔는지 이 대목이 되어서야 이해가 되고 울컥해진다. 빅스비 선생님은 제자들과 함께 자신의 말한 대로의 마지막 날을 보내고 숨을 거두었다. <빅스비 선생님의 마지막 날>은 인간으로 살면서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타인의 기억 속에 '좋은 사람'으로 남아있도록 사는 것! 책의 마지막 문장은 이렇다.

"결국 좋은 선생님은 잊히지 않는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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