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허송세월

샌. 2024. 11. 19. 11:02

동네 서점에서 산 일곱 권의 책 중 하나다. 한 달 만에 10쇄를 찍었으니 김훈 작가의 인기가 어느 정도인지를 알겠다. 나 역시 작가의 문체와 함께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에 공감한다.

 

작가에게는 세계에 대한 깊은 응시와 인간에 대한 따스한 연민과 애틋함이 있다. 이 책에서는 불교적 세계관도 자주 느껴졌다. 특히 '흐름'이라는 말이 자주 나왔다. 인간의 삶도 자연의 큰 흐름과 연계하게 된다. 비교하기에 뭣하지만 김형석 선생과는 결이 많이 다르다. 소설가가 훨씬 더 철학적이다.

 

책 제목으로 쓰는 '허송세월'이란 글은 "나는 오후에 두어 시간쯤 햇볕을 쪼이면서 늘그막의 세월을 보낸다. 해는 내 노년의 상대다"로 시작한다. 음미하고 사색하는 철학자의 글이다. 이런 말도 참 좋다.

"혀가 빠지게 일했던 세월도 돌이켜보면 헛되어 보이는데, 햇볕으로 쪼이면서 허송세월한 때 내 몸과 마음은 빛과 볕으로 가득 찬다. 나는 허송세월로 바쁘다."

 

<허송세월>에는 40여 편의 산문이 실려 있다. 이번에 는 각 글의 마무리 부분에 주목했다. 김훈 작가의 색깔이 잘 드러나 있고, 또한 글의 결말을 어떻게 짓는지 참고가 되었다.

 

- 지금도 가끔씩 꿈속에서 담배를 피운다. 중생의 어리석음은 한이 없는데, 나는 이 어리석음과 더불어 편안해지려 한다.

 

- 코로나의 재앙 속에서도 호수공원의 새해 첫날은 별일이 없었고 모든 일상이 다 갖추어져서  평화로웠다. 새와 물고기와 어린이들이 잘 어우러져 있었다. 까치가 말을 걸고 어린이들이 지절거리고 개들이 좋아서 뛰고 장애아의 어머니가 행복하게 웃었다. 깊은 겨울이지만, 수양버들의 가지 속에 봄은 이미 와 있었다.

 

- 시험이 끝나서 다들 돌아가고, 해가 저무는 운동장 한 구석에서 시험을 치른 여자아이 한 명이 무릎을 끌어안고 울고 있었다.

 

- 깊이 내려앉은 해가 빛과 색을 모두 거두어들이고 젊은 어머니들이 노는 아이들을 핸드폰으로 불러들이면 나는 집으로 돌아간다. 또 하루가 노을 속으로 사위어 간다.

 

- 가볍게 죽고, 가는 사람을 서늘하게 보내자. 단순한 장례 절차에서도 정중한 애도를 실현할 수 있다. 가는 사람도 보내는 사람도, 의술도 모두 가벼움으로 돌아가자. 뼛가루를 들여다보면 다 알 수 있다. 이 가벼움으로 삶의 무거움을 버티어 낼 수 있다. 결국을 가볍다.

 

- 나의 죽음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면서 남의 죽음을 문상 다니고 있다. 말더듬증만이라도 온전히 간직하면서 병원 다니고 문상 다니며 여생의 날들을 감당하려 한다. 

 

- 새는 갔으므로, 나는 정원사를 불러서 마당을 손질하고 나무를 소독할 작정이다.

 

- 나는 며칠 후 퇴원했다. 호수공원에 산책 나갔다가 두 다리로 걸음을 걷는 일의 복됨을 알게 되었다. 이 세상에 땅이 있어서 인간의 걸음을 받아 주었다. 꽃들이 피어 있는데, 창세기 때 핀 꽃을 이제 처음 보는 것 같았다. 내 옆에 꽃이 피어 있었구나. 이걸 모르고 먼 데를 헛되이 헤매고 있었구나. 살던 세상으로 돌아오길 잘했구나.

 

- 노스님 계신 절과 내가 사는 대도시는 아주 가깝다. 길로 연결되어서 언제나 갈 수 있다.

 

- 어린아이들은 길을 걸어갈 때도 몸이 리듬으로 출렁거린다. 몸속에서 기쁨이 솟구쳐서 아이들은 오른쪽으로 뛰고 왼쪽으로 뛴다. 아이들의 몸속에서 새롭게 빚어지는 시간이 아이들의 몸에 리듬을 실어준다. 호랑이나 사자의 어린것들도 스스로 기뻐하는 몸의 율동을 지니고 태어난다. 그것들은 생명을 가진 몸의 즐거움으로 발랄하고 그 몸들은 신생하는 시간과 더불어 뒹굴면서 논다. 이 장난치는 어린것들의 몸의 리듬을 들여다보는 일은 늙어 가는 나의 내밀한 즐거움이다.

 

- 세월호가 침몰한 자리에 다시 가 봤더니 봄을 맞는 섬들이 아지랑이 속에서 나른했고 수평선에까지 물비늘이 반짝였다. 바다는 빛으로 덮였고 신생하는 시간의 미립자들이 물 위에서 춤추고 있었다.

 

- 공원에서 연꽃과 물고기를 들여다보면서 장자를 생각했다. 연꽃이 장자고 물고기가 책이었다. 아름다운 것은 본래 스스로 그러하다. 거꾸로 써도 마찬가지다. 내년 여름에는 또 새 매미가 울겠지.

 

- 파주 예술마을 헤이리는 금산리 민요 '헤이리소리'를 동네 이름으로 삼았다. 돌아오는 길에 헤이리 예술마을에서 저녁을 먹었다. 멋진 인테리어를 갖춘 카페에서 젊은 연인들이 와인을 마시고 있었다. 저물어서 일산으로 돌아왔다. 거기서 일산은 아주 가까웠다.

 

- 세상의 길과 이어지지 않는다면 책 속에 무슨 길이 있겠는가. 나는 김득신의 책과 화적의 밥 사이를 건너가지 못한다. 나는 밤에는 책을 읽지 않는다.

 

- 좋은 말들은 늘 가까이 있다. '고향' 식당에서 혼밥을 먹으면서 가까운 말들을 끌어와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내 옆자리의 사내도 혼밥에 혼술을 먹고 있었다. '고향'의 혼밥은 혼밥 먹는 사람들의 더불어밥이다.

 

- 사람은 손과 팔을 내밀어 사랑을 한다. 사랑에는 몸과 말이 모두 필요하다. 이것을 해 본 사람은 다 안다. 나는 요즘에는 연장을 사용하는 일은 하지 못하고 연장에 기름만 치고 있다.

 

- 귀로에 차가 많이 막혔고, 도로는 답답했다. 차 때문에 차가 가지 못했다. 앞차 때문에 내 차가 가지 못했고 내 차 때문에 뒤차가 가지 못했다. 다들 오도 가도 못했다.

 

- 새 날개 치는 소리는 새로운 새벽의 시간을 손짓해서 부른다. 소리는 살아서 퍼덕거린다. 모든 시간이 새로우므로 삶이 쇄신을 가능하다. 새들은 내 15층 작업실 밖 하늘을 날아다니고, 여기서 나는 새들과 더불어 겨울을 난다.

 

- 불완전한 세상에는 그 불완전을 살아 내는 불완전한 방법이 있다. 이 방법은 허약하지만 소중하다.

 

- 꽃 핀 나무 아래서 온갖 냄새들의 기억이 되살아나는 노년은 늙기가 힘들어서 허덕지덕하지만, 이 세상의 모든 아기들이 태어나기를 기다린다. 이 미세먼지 속에서 아기들이 태어나서 젖 토한 냄새를 풍겨 주기를 나는 기대한다. 이 마지막 한 문장을 쓰기 위하여 나는 너무 멀리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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