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이 빌려준 책이다. 부제가 '한형조 교수의 금강경 별기'인데 2011년에 나와서 현재 15쇄까지 찍었으니 종교 서적으로는 인기 있는 스테디 셀러라 할 수 있다. 불교를 인문학적 관점에서 색다르게 접근하여 신선한 느낌을 준다. 내용이 알차서 맛있는 걸 먹듯 조금씩 야금야금 읽었다.
생각할 거리가 많아서 한 번만 읽고 말기에는 너무 아쉬워 나도 새 책을 한 권 샀다. 옆에 두고 다시 읽어보려 한다. 지금으로서는 이 책을 논할 처지가 못 된다.
지은이는 불교를 불성, 번뇌, 반야라는 세 축으로 설명한다. 불교가 이 세계를 어떻게 보는지 설명한 대목이 인상적이었다. 이 세계는 인간에 의해 구성된 세계다. 즉, 세계는 주관이 만든 환상이다. 그런 면에서 불교는 관념론에 가깝다. 그렇다고 객관적 실재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불교는 세계의 실재를 에누리 없이 긍정합니다. 그것은 분명히 역력하게 실제(實際)합니다(※실재實在와 실제實際의 차이에 주목한다). 불교가 문제 삼는 것은, 객관적 실제實際가 아니라 '그 실제를 수용하고 해석하는 인간의 시선'입니다. 다시 말하면 불교가 점검하고자 하는 것은 인간에 의해 '구성된' 세계라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인간 관점의 울타리를 벗어나는 것이 불교의 목표라고 할 수 있을까. 반야로 내 안의 무명풍(無明風)을 타파할 때 열리는 신세계를 깨달음이며 불성이라 부르는 것일까. <붓다의 치명적 농담>은 이런 자문자답을 하게 만든다. 불교를 머리로 헤아릴 수는 없겠으나 무슨 개념이든 언어의 틀을 벗어날 수 없으니 불교 용어에 익숙해지는 게 우선이겠다. 무지無知, 상相, 공空, 법계法界, 화엄華嚴, 관견管見, 삼계유심三界唯心, 팔정도八正道, 연기緣起, 등등.
'누구든 부처가 될 수 있다'가 아니라 '누구나 이미 부처다'라고 선언하는 것이 불교다. 또한, 불교는 자기 부정을 통해 새로운 길로 나아가는 정신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불교의 가르침은 - 특히 선불교 - 파격적이다. 부처를 죽여야 부처가 산다. 불교는 교조적이지 않다. 그래서 불교는 매력적이다. 이 책은 천천히/찬찬히 다시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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