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살이의꿈

조만간 죽는다

샌. 2023. 5. 8. 11:13

"조만간 죽는다." 생략된 주어는 당연히 '나는'이다. 생명체가 죽는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인간도 짧은 지상의 삶을 누리다가 반드시 죽는다. 이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자신이 죽는다는 사실은 외면하려 한다.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을 애써 피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천 년 만 년 살 것처럼 사고하고 행동한다.

 

죽음에 대한 의식은 불안을 동반한다. 살아 있는 인간은 죽음이라는 완전 소멸을 감당하기 힘들다. 공자마저 죽음을 묻는 제자의 질문에 "삶도 모르는데 죽음을 어찌 알겠느냐?"며 회피하는 태도를 보였다. 인간 존재의 근원을 탐구하는 철학은 다른 말로 하면 죽음을 직시하는 학문이다. 인간의 불안과 부조리가 죽음이라는 숙명에서 기인하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아는 것이 병이다. 죽음을 예견하지 못하는 다른 동물이 더 행복할지 모른다. 그들은 지금 이 순간을 충실히 살아간다.

 

외면한다고 회피할 수 없을진대 적극적으로 죽음을 의식하도록 노력하는 것도 삶의 한 태도라고 생각한다. 받아들이면 오히려 가벼워질 수 있다. 우리가 필멸의 존재임을 자각한다면 헛된 욕망에서 어느 정도는 자유로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옛날 로마에서는 환호를 받는 개선장군에게 옆에서 시종이 이렇게 속삭였다고 한다.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당신이 죽는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라는 뜻이다.

 

세상을 살다 보면 마땅치 못한 일을 만나고 속이 부글부글 끓는다. 대상이 사람이든 물건이든 애착으로 괴로워한다. 망상과 욕심의 포로가 되기도 한다. 희로애락의 쓰나미에 휩쓸리기도 한다. 이럴 때의 특효약이 '내' 죽음을 자각하는 것이 아닐까. 어느 분은 아침에 눈을 뜨면 "금방 죽는다"라고 세 번 나직이 말한다고 한다. 자기 자신에게 '메멘토 모리'를 의식시켜 주는 것이다. 

 

죽음에 대한 자각은 삶의 태도를 바꾸어준다. 내 경험상 확실히 들끓는 마음의 진정 효과는 있다. 세상일이 어찌 내 뜻대로 되어 가겠는가. 이럴 때 내가 죽는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움켜쥔 손을 스르르 펼 수 있다. 더구나 내 나이는 지금 일흔줄을 넘어섰다. 새파란 이팔청춘도 아니고 죽음이 언제 닥쳐도 이상하지 않는 나이다. 오늘 하루도 살아가면서 몇 번이나 주문처럼 욀지 모른다.

 

"나는 조만간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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