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에 박힌 가시들

학폭을 소재로 한 드라마 '더 글로리'가 인기인 모양이다. 드라마가 일부 사람들의 아픈 기억을 소환하면서 가해자에 대한 복수극에 통쾌해하는 것 같다. 내가 중고등학교에 다녔던 60년대는 학교 폭력이나 왕따가 거의 없었다. 힘깨나 쓰는 치들은 저희들끼리 놀았고 약한 아이들을 괴롭히지는 않았다. 학폭이나 왕따라는 못된 문화가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학폭과 함께 교폭(교사 폭력)에 대한 비난 글도 많이 올라온다. 그 시절에 교사한테서 억울한 체벌을 당하지 않은 사람은 드물 것이다. 개중에는 교사 실명을 공개하며 적의를 드러내는 글도 있다.

 

지금 기준으로 하면 당시의 교사들은 상당수가 처벌 대상이 되고 감옥에 갈 사람도 있을 것이다. 사랑의 매가 아닌 교사의 감정을 못 이긴 채 어린 학생을 구타한 사례가 허다했다. 돌아보면 나도 부끄럽고 후회된 행동이 한둘이 아니었다. 1970년대 후반 경 Y여중에 근무하고 있을 때였다. 교직에 나온지 얼마 되지 않은 20대의 팔팔한 교사였다. 어느 날 선배 교사의 보강을 들어가게 되었다. 프린트를 나누어주고 문제 풀이를 하는데 옆 교실이 너무 시끄러워 수업을 진행하기 어려웠다. 가 보니 선생은 없고 아이들끼리 장난을 치고 노느라 엉망이었다. 주의를 주고 돌아왔으나 조금 시간이 지나니 다시 마찬가지였다. 이번에는 반장을 교단에 불러내어 책임지고 아이들을 조용히 시키라고 했다. 그래도 소용이 없었다. 네 번째 찾아갔을 때 폭발하고 말았다. 반장은 얼굴을 손으로 가리다가 손목시계가 날아가서 박살났다. 너무 심했다는 걸 바로 알아차렸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아이는 가방을 싸들고 집으로 갔고, 화가 난 어머니가 교장실로 찾아와서 항의를 했다. 당시에는 흔치 않은 일이었다. 백 번 내가 잘못한 사건이었다. 감정을 제어하지 못하고 야만적으로 날뛴 내 자신이 죽이고 싶도록 미웠다.

 

그때 상황을 떠올릴 때마다 피해 학생에게 너무 너무 미안하다. 당시에 직접 사과를 하지 못했고 어쩌다 보니 그 뒤로도 기회가 없었다. 내가 수업을 들어가지 않는 반이었다. 그 학생은 지금 나이가 환갑 가까이 되었을 것이다. 오랜 세월이 흘렀어도 그때의 일을 잊지 않았을 것이고, 어쩌면 트라우마로 남아 있을지 모른다. 혹 그 일을 잊었을 수도 있다. 상처로 남지 않았다면 다행이고 고마운 일이다.

 

몇 달 전에 고향에서 함께 자란 K 선배로 부터 카톡 문자를 받았다. K는 초등학교와 중학교 2년 선배였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로는 소식만 들을 뿐 만난 적이 없었다. K네 집이 동네를 떠났기 때문이다. K가 나한테 직접 문자를 보낸 것도 특별했고, 내용 또한 전혀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문자 내용은 이랬다.

 

"내가 꼭 잊지 않고 사과를 해야 할 것이 있어 문자 보냅니다! 나 00형이예요! 먼저 정중하게 사과합니다. 어릴 적에 앞 냇가에서 수영하며 즐겼을 때 나는 그때 동생이 너무 좋은 나머지 물놀이 중 물속에 던져 넣고 물에 처박으며 놀았고, 어느 한순간 물속에 오랜 시간이 지체되어 숨을 가빠하던 모습에 장난이 지나치게 되었음을 즉시 사과하지 못했던 것, 수십 년이 지났지만 진심으로 정중하게 사과드립니다. 너무 좋아서 노는 중에 일어난 일이지만 다시 진심으로 깊이 사과합니다. 사실 그 미안함 때문에 내 스스로가 물놀이를 줄이기도 하였답니다... 동생! 미안해. 잘못했어~"

 

K 선배가 미안해 하는 이 사건은 나는 전혀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문자를 받고 한참 동안 어리둥절했다. 선배한테는 용서를 받아야 할 중대한 사건이었는지 몰라도 나에게는 기억 저편으로 사라진 일이었다. 사과해야 할 정도로 심각한 사안이 아니었다고, 나는 기억도 못하고 있다고, 선배에게 답신을 보냈다. 객관적 사실은 하나일 텐데 각자의 기억에 저장된 내용은 크게 다르다. A에게는 중차대한 것이 B에게는 사소한 것일 수 있다. 무심코 던진 돌이 개구리에게는 치명적일 수 있다는 사실을 호숫가에서 노는 개구쟁이들은 모른다. 가해자와 피해자의 기억의 오류에 의한 차이가 불협화음을 만들기도 한다. 오히려 가해자가 적반하장으로 큰소리치는 경우도 있다. K 선배 정도 되면 특이한 케이스일 것이다. 

 

Y여중에서의 충격 이후로 나는 매 드는 일을 중지했고 절대로 체벌은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내 교직 생활에서 하나의 전환점이 된 사건이었다. 그 뒤로 스스로에게 한 약속을 백 퍼센트 지키지는 못했다. 하나 체벌을 할 때라도 감정을 섞지 않도록 최대한 주의했다. 그러나 아무리 조심하더라도 내가 인지하지 못하는 가운데 아이들에게 준 상처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을 것이다. 학교만이 아니었다. 가정에서 자식들에게 가한 유무형의 폭력은 또 어떠하였는가. 이 모든 것들이 내 가슴에는 가시로 박혀 있다. 세상에는 공짜가 없다. 알게 모르게 생명에 가한 폭력은 나에게로 돌아오게 되어 있다. 그래서 내 꿈이 늘 이렇게 어지러운가. 사과와 용서를 바라는 마음을 내는 것 외에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비록 냉담자지만 나는 예전의 기도문을 읊조리며 고개를 숙인다. "주님,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