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이 시작되는 공식적인 나이는 65세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서 65세에 노인이 되었다고 인정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 같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경로 우대증을 받기는 했지만 노인이라는 소리를 듣기에는 너무 이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은 이팔청춘'이라는 말속에는 노인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심정이 배어 있는 게 아닐까.
실제 노년이 시작되는 나이는 몇 세 쯤일까? 개인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나로서는 일흔을 넘어서니 노년의 단계에 들어섰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른 사람과 얘기를 나누어봐도 대체로 비슷한 것 같다. 인간은 세월 따라 서서히 늙어가겠지만 노인이 되었다고 정서적으로 느끼는 감정은 한순간에 찾아온다. 인생의 과정은 단계가 있고 점프하듯 다음 단계로 넘어간다. 불연속적인 노년의 시작이 대체로 일흔 부근이지 싶다.
2021년 기준 한국인의 평균수명/기대수명은 남자가 80세, 여자가 86세다. 대신에 건강수명은 남자가 72세, 여자는 75세로 통계에 나와 있다. 건강수명이란 신체적이나 정신적으로 특별한 이상 없이 생활하는 기간을 말한다. 이 수치로 판단해도 사람들은 70세 근처에서 신체적 정신적 한계를 느끼면서 자신의 노쇠를 인정하게 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쉽게 걷던 산길이 힘들어지고 정신도 깜박깜박거린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도 달라진다.
생로병사는 생명체에게 필연적인 현상이다. 어느 누구도 이 원칙에서 벗어날 수 없다. 중요한 것은 노화 현상을 생명의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점이다. 사람들은 봄에 새싹이 돋아나면 밝게 웃고, 늦가을에 낙엽이 떨어지면 슬퍼하지만 새싹이나 낙엽은 생명 순환의 한 과정일 뿐이다. 인간 감정이 개입하여 희비(喜悲)에 휩싸인다. 노화와 죽음을 바라보는 태도도 마찬가지다. 오고감에 집착하면 인생이 괴로워지기만 한다. 그 괴로움은 자기 스스로가 만들어내는 것이다.
나보다 윗 연배인 이웃분이 계신다. 이분은 늙은 것을 너무 억울해 한다. 나를 볼 때마다 왜 머리칼 염색을 하지 않느냐고 묻는다. 자신은 늙어 보여 백발이 너무 싫단다. 심지어는 손주한테서 할아버지 소리를 듣는 것도 마땅찮아한다. 나이 여든을 가까이 두고 너무 철이 없는 게 아닌가. 백세 시대가 되었으니 일흔부터가 장년이라고도 강변을 한다. 늙음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하면 좌절감밖에 들 수 없다. 나중에 죽음 앞에서까지 발버둥치지 않기를 바란다.
행복한 노년의 전제조건이 늙음을 쿨하게 받아들이는 일이 아닐까. 건강 상태나 질병에 너무 매달릴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다. 건강 검진의 효과도 의문이다. 수치로 나오는 자신의 신체 상태에 예민하게 반응하느니 모르고 마음 편하게 사는 게 낫지 않을까. 지인 중에 건강염려증 비슷하게 엄청 몸을 생각하는 분이 있었다. 공기가 좋아야 한다고 양평 전원주택으로 이사를 해서 조심하며 살았다. 그런데 전원 생활 이태만에 세상을 떠났다. 내가 볼 때 차라리 몸 상태를 의식하지 않고 자유롭게 사는 편이 나았다.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더 해로울 수도 있다.
갈 때가 되면 간다는 마음가짐이면 암도 그다지 두렵지 않을 것 같다. 나이 70이 넘으면 암이 발견되어도 수술을 할지는 심사숙고해야 할 것이다. 악성이라면 모르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암과 공존하며 살아가는 것도 한 방법이 아닐까. 노년의 판단 기준은 그 전과는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모르는 것이 약'인지도 모른다. 편하게 자연사를 한 분이 있었는데 죽은 뒤에 해부를 해 보니 속에 암덩이가 있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분은 건강검진을 받지 않았으니 암인지도 모른 채 수십 년을 걱정 없이 살았던 것이다. 실제로 노년이 되면 암의 성장이 느리다고 한다. 특수한 경우인지는 모르지만 얼토당토않은 경우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노년의 삶은 사람마다 천차만별이다. 일흔이 되기 전에 요양원에 있는 사람이 있고, 여든이나 아흔이 되어도 등산을 하고 책을 쓰는 사람도 있다. 어떤 원인이 이런 차이를 만들까? 평소의 생활 습관이 중요한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지금 당신이 먹고 마시고 행동하는 양태를 보면 미래의 당신을 알 수 있다고 한다. 거기에 더해 유전인자의 중요성 또한 무시할 수 없다. 인간이 아무리 발버둥쳐도 벗어나지 못하는 한계가 바로 유전자다. 유전자의 존재는 자신에게 닥치는 현실을 담담히 받아들이라고 말하는 게 아닐까.
노년에는 활력이나 원기가 감퇴하는 대신 정신적 여유와 행복을 맛볼 수 있는 시기다. 어쩌면 그것이 인생의 참맛인지 모른다. 그러자면 노화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욕심 버리기, 검소하게 살기, 작은 데서 행복 찾기를 통해 노년의 삶을 멋지게 꾸밀 수 있지 않을까. 노년에 접어든 나의 희망이면서 도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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