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살이의꿈

내 안에는 뭐가 들어있을까

샌. 2023. 2. 28. 10:36

거의 매일 밤 꿈을 꾼다. 그런데 꿈이 영 마뜩잖다. 열에 아홉은 사람들과 다투고 마찰을 겪는 내용이다. 악몽까지는 아니어도 괴롭고 답답한 꿈이다. 잠을 깨고 반추해 보면서 늘 기분이 씁쓸하다. 

 

오늘 새벽 꿈도 그랬다. 옛 직장 동료들과 무슨 발표를 하게 되어 있었다. 나누어준 프린트 자료가 있었는데 집에다 두고 나왔다. 내 발표는 두 번째였다. 뒤에 발표하게 되어 있는 동료에게 자료를 빌려달라 했는데 냉정하게 거절당했다. 어쩔 수 없이 집으로 달려갔다. 그 사이에 집은 엉망이 되어 있었다. 아끼던 물건(큰 수정 구슬인데 무슨 용도인지는 모르겠음)은 마당에서 뒹굴고, 대드는 동생과 티격태격하며 손찌검까지 했다. 너무 화가 난 상태에서 잠이 깼다. 

 

싸우고 지지고볶고 꾸는 꿈마다 패턴이 비슷하다. 인간관계의 갈등이 꿈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어느 분이 자신의 꿈을 기록한 내용을 본 적이 있다. 신기할 정도로 우아하고 아름다운 꿈들이었다. 그걸 영적으로 풀이하니 더욱 그럴싸했다. 그분과 비교하면 내 꿈은 쓰레기더미였다. 한 번은 아내에게도 물어봤는데 꿈 내용이 희한하긴 하지만 사람들과 싸우는 건 없다고 했다. 내 무의식의 창고에는 도대체 뭐가 들어있길래 꿈이 이 모양인지 한심하게 느껴졌다.

 

과거에는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군대나 학교 꿈을 꾸며 시달리긴 했어도 가끔은 하늘을 날거나 파라다이스를 구경하는 등 꿈속에서나마 신난 적도 있었다. 이제는 벽에 꽉 막힌 듯한 느낌이다. 사람들과 만나면 불화가 생기고 싸움박질을 한다. 제일 자주 등장하는 대상은 형제들이다. 현재의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꿈을 해석할 수 있는 전문 소양이 있다면 요사이 내가 받는 마음의 압박감을 밝혀낼 수 있을지 모른다. 의식 세계에서는 무시할지라도 무의식에서는 숨어 꿈틀대는 무엇이 있는가 보다. 의식이 잠자는 동안 무의식이 표출되는 것이 꿈이라고 보면 그렇다. 꿈은 인간의 기억을 재배치하면서 억눌린 감정을 해소해 주는 역할을 한다고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다. 의식이 외면하고 감지하지 못하는 스트레스를 꿈이 드러냄으로써 풀어주는 기능을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내 괴로운 꿈도 긍정적으로 볼 여지가 생긴다.

 

인간의 잠에는 여러 단계가 있는데 꿈을 꾸는 수면 상태를 'REM(Rapid Eye Movement) 수면'이라고 하며 충분한 숙면의 정도를 나타낸다고 한다. 이 기준이라면 꿈은 숙면의 증거가 되고, 꿈이 없는 잠은 수면 부족을 나타낸다. 꿈 내용을 떠나서 꿈 자체는 바람직한 현상으로 볼 수 있다.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환상적인 꿈속에 잠긴다면 얼마나 좋겠느냐만 내 마음밭이 그렇게 비옥하지는 않은 것 같다.

 

인간의 뇌는 신기하다. 기억은 어떻게 저장되어 있고, 수많은 정보는 어떤 과정을 거치며 처리하고 분류할까. 꿈만 봐도 미스터리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잠자리에 들 때 오늘은 무슨 꿈을 꿀까, 기대가 되면서 동시에 불안하다. 꿈이 만들어내는 새로운 스토리가 궁금한 것이고, 어두운 속마음이 드러나는 것에 두려움을 느낀다. 꿈만 본다면 내 안은 화와 분노로 가득차 있는 것 같다. 부디 그것만은 아니길, 좋은 것은 더 깊숙한 곳에 숨어있으리라고 억지로 믿어보면서 위안을 삼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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