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실 세면대 옆 수건걸이에 걸린 수건이 눈에 들어온다. 9년 전에 친구가 교장으로 정년 퇴임을 하며 기념으로 준 수건이다. 아랫단에 친구 이름과 함께 이런 글귀가 적혀 있다. "지금 여기서 행복하세요!"
사람은 다른 동물과 달리 지금 여기서 행복하기 어렵다. 머리가 너무 복잡하기 때문이다. 사람은 현재에만 충실할 수 없다. 과거와 미래 일이 발목을 잡아서 근심과 걱정 속에 살아간다. 반면에 동물은 단순하기 때문에 과거나 미래에 매여 현재를 희생하지 않는다.
오리 두 마리가 연못 위에서 직각을 이루는 물길을 따라오다가 충돌했다. 이내 꽥꽥 소리와 푸드덕 날갯짓의 한바탕 소란이 일어났다. 하지만 그것뿐이었다. 두 오리는 서로 떨어져서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무심히 가던 길을 간다.
사람이라면 어땠을까? 네가 잘못했다고, 앞을 똑바로 보고 다니라고 서로 삿대질을 하며 싸웠을 것이다. 그러나 오리들은 충돌이 일어난 그 순간만 반응하고 금방 무심해진다. 몇 초만 지나면 충돌한 사실조차 잊어버린다. 사람은 며칠 동안 기분 나쁜 사건을 기억한다. 누가 고소라도 했다면 몇 달을 끌며 괴롭힐지 모른다. 동물과의 차이점이다.
스스로 짊어진 과거의 짐을 벗지 않고서는 지금 여기서 행복하기 힘들다. 오지도 않은 미래에 대한 근심도 마찬가지다. 인간의 뇌는 환경에 적응하며 살아남기 위해 발달하다가 지금과 같은 능력을 갖추게 되었다. 사고(思考)하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진화한 것이 아니다. 이성과 감정은 생존을 위한 진화의 부산물일 뿐이다. 덕분에 호모 사피엔스는 지구를 지배하는 주인(?)이 되었지만 복잡하고 정교해진 두뇌는 인간에게 예상치 못한 골칫거리를 안겨 주었다. 과거를 기억하고 집착하며 미래를 예견하는 능력으로 인해 근심과 걱정 속게 살게 되는 아이러니에 빠진 것이다.
동물은 시간의 흐름을 연속으로 인식하지 못한다. 그래서 동물은 죽음을 무서워하지 않는다. 죽음 자체를 모르고 살기 때문이다. 다만 죽음이 임박하면 본능적으로 알아차리기는 하는 것 같다. 동물은 집단을 떠나 홀로 아무도 모르는 곳에 가서 죽는다. 이런 행동은 인간보다 훨씬 더 지혜롭다. 인간에게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우주의 배경복사처럼 짙게 깔려 있다. 아는 것이 병인 것이다.
인간의 지성은 양날의 검이다. 뒷산의 다람쥐는 왜 사는지 묻지 않고도 잘 살아가고 있다. 다람쥐에게 인간의 번민을 설명해 준다면 다람쥐는 뭐라고 대답할까. 노년이 되어 인지저하증/치매가 찾아오는 것은 어쩌면 자연의 혜택인지 모른다. 옆에서 간호하는 사람은 힘들겠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당사자는 세상의 시름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다. 평생을 애쓰고 궁구해도 도달할 수 없던 순수무구의 경지를 인생 말년에서야 맛보게 되는 게 아닐까.
행복은 어쩌면 우리 뇌의 기만인지 모른다. 자기 만족 또는 자기 위안으로 부를 수도 있겠다. 그렇지 않다면 인간이 스스로 파 놓은 늪에 제 발로 걸어들어가 빠져 죽을지도 모르니까. 우주는 호모 사피엔스가 집단 자살하는 꼴은 보고 싶지 않은 모양이다. 오늘 아침 화장실에서 본 친구의 짧은 문구에 이렇게 횡설수설하는 걸 보니 나 역시 어쩔 수 없는 인간 뇌의 포로인가 보다. 친구야, 과연 가능하기나 할까? "지금 여기서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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