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개체로서의 인간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 즉 상호작용을 통해서만 존재한다. 무리를 지어 살아가는 특성이 오늘의 호모 사피엔스를 만들었다. 서로 소통하고 협력하는 능력이 계발되면서 두뇌가 발달하고 문명의 건설이 가능하게 되었다.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사람은 가정에서부터 국가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공동체 속에서 살아간다. 모든 공동체에는 구성원들 사이에 공유하는 공통분모가 있다. 혈연이나 학연, 지연 등이 대표적이다. 같은 취미를 가지고 이루어진 모임도 많다. 유유상종(類類相從)이라는 말이 있듯 인간은 '끼리끼리' 어울린다. 결국 성향이 비슷한 사람들끼리 자주 만나게 되는 것이다.
성향이 비슷한 사람들은 서로 대하기가 편하다. 이해의 폭이 넓은 탓이다. 예를 들어, 내향성인 사람은 외향적 성격을 가진 사람과는 삐걱거려도 같은 내향성과는 죽이 잘 맞는다. 살아가다 보면 주변에는 소위 코드가 맞는 사람들이 남게 되고 그렇지 않은 사람과는 자연스레 멀어진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면서 동시에 끼리끼리 원리가 작동하고 있다.
착한 사람 주변에는 착한 사람들이 많다. 사기꾼 주변에는 사기꾼들이 많다. 사귀는 친구를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는 말은 옳다. 착한 사람이 세상을 긍정적으로 보는 이유는 자기 주변에 착한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부정적으로 보더라도 최소한 세상은 살 만하다고 믿는다). 사기꾼은 세상이 온통 사기꾼들로 가득한 것으로 본다. 같은 세상이지만 부처 눈에는 부처로 보이고 돼지 눈에는 돼지로 보이는 것이다.
끼리끼리 문화의 폐해도 만만찮다. 잘못 변질하면 배타적인 패거리 집단이 된다. 이런 패거리 문화가 학교에서 따돌림이나 학폭을 낳는다. 어른들이라고 다르지 않다. 작은 동호회에서도 파벌이 생기고 소수를 배척하는 예가 수없이 많다. 끼리끼리는 공동체를 움직이는 원동력이지만 동시에 차별과 배척으로 타인에게 상처를 준다. 공동체의 리더가 늘 염두에 두어야 할 사항이다. 배려와 포용이 없으면 어떤 모임이든 발전해 나갈 수 없다.
국가나 집단간의 패권 경쟁도 인간성에 내재한 끼리끼리/편가르기와 연관되어 있다. 힘 있는 집단, 가진 집단이 자기들끼리 뭉치고 타자를 소외시킬 때 당장은 이득이 될지 몰라도 결과적으로는 몰락의 길을 걷게 될 것이다. 기후 위기도 이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21세기에 들어서 이런 경향이 점점 강해지고 있어 우려스럽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지만 동시에 이를 극복해야 하는 과제를 동시에 안고 있다. 인류는 이때껏 사회적 동물로서의 가치 실현을 충분히 해 왔다. 이제는 '홀로'의, '고독'의, '깨달음'의 가치가 우리를 구원할 때가 아닌가 싶다. 그때가 되면 '나'가 '우리'와 다르지 않음을 알게 될 것이다.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存)을 떠올리는 부처님 오신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