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은이의 어머니는 아흔 즈음에 말기암과 알츠하이머성 인지저하증으로 호스피스 병동을 전전하며 생의 끝을 보내셨다. 이 책은 아들이 엄마의 마지막 1년을 지켜보며 쓴 간병 기록이다. 엄마에 대한 극진한 사랑과 정성이 담겨 있다. 지은이는 서울대학교 국문과 교수인 박희병 선생이다.
이 책을 통해 죽어가는 시간도 귀하고 값진 인생의 일부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선생은 어머니만 아니라 여러 병실에서 만난 환자들을 통해서 지켜야 할 인간의 존엄성을 확인했다고 한다. 여기에는 물론 여러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가족만 아니라 의사와 간호사, 간병인, 그리고 적절한 의료체계가 뒷받침되어야 가능하다. 그런 점에서 선생의 어머니는 행복하신 분인 것 같다. 아들은 직장을 휴직하면서 어머니를 지켰다.
<엄마의 마지막 말들>이라는 책 제목이 말하듯 선생은 어머니가 병상에서 하신 말씀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어머니는 인지저하증/인지장애/치매를 앓으시지만 의식을 완전히 놓치는 않으셔서 돌아가실 때까지 의사소통이 가능하셨다. 어머니의 짧은 한 마디에 지은이는 과거 어머니와의 추억을 떠올린다. 모자 사이의 정에 가슴이 따스해진다.
말기암과 인지장애를 겪더라도 이렇게 죽을 수 있다면 참으로 행복할 것 같다. 통증이 적절히 제어되면서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과 인간적 유대를 잃지 않는다면 품위 있는 죽음도 충분히 가능하다. 물론 힘겹고 어려운 일이긴 하다. 우선 내가 어떻게 살았느냐가 내 죽음의 양태를 결정한다. 어머니를 보면서 선생은 죽음의 과정이 삶의 과정과 직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책에는 여러 병원을 경험하면서 느낀 점도 솔직하게 적혀 있다. 병원에 따라 환자를 대하는 태도가 천차만별이고 이것이 환자 상태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특히 환자를 대하는 의사의 태도와 자질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환자를 이해가 아니라 처치의 대상으로 여기면 상태가 여지없이 악화되는 경험을 했다. 호스피스 병동에 입원한 이들은 죽음을 대기하는 존재가 아니라 남루하지만 나름의 삶이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가족의 도움을 받으며 죽을 때까지 인간으로서의 예의와 존엄을 지킨 선생의 어머니는 행복하신 분이셨다. 암이나 인지장애도 한 인간의 의지를 꺾을 수는 없었다. 동시에 선생의 지극한 효심에 감동한다. 미래에 어떻게 될 지 모르지만 나는 도저히 그렇게 할 자신이 없다. 인간계 너머에 계신 분 같다. 더구나 선생의 아버지는 연세가 아흔 중반이신데도 아내가 입원한 병원을 격일로 다니시며 간호하셨다는 사실이 놀랍다. 오가는 데 두 시간이나 걸리는 거리를 대중교통으로 다니시면서 말이다. 그러면서 아내의 간호 일기를 쓰셨다고 한다. 책에도 몇 군데서 아버지의 일기를 인용하고 있다.
"하늘이 참 곱다." 창 밖을 내다보시며 하신 어머니의 마지막 말이었다고 한다. 비록 책을 통해서지만 한 인간의 아름다운 죽음을 만난다. 이렇게 죽을 수 있다면 죽음이 무섭거나 두렵지 않을 것 같다. 그러면서 나는 앞으로 어떻게 죽게 될지, 내 죽음의 방식은 어떨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 여기서 마음을 바로 내면서 올바르게 사는 일이 우선이라는 사실을 새기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