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류의 책을 읽을 때면 항상 두 가지 감정에 휩싸인다. 하나는 엄밀한 과학 법칙의 지배를 받는 우주의 맹목성에서 오는 무의미함과 공허다. 현재의 과학 지식으로 우주의 미래는 열역학적 죽음으로 귀결한다. 결국은 모든 것이 암흑의 차가움 속에 사라질 것이다. 다른 하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이곳에서 가냘픈 생명으로 살아가는 경이와 기쁨이다. 우주의 관점으로 보면 참으로 하찮은 존재지만 호모 사피엔스의 지적 능력은 우주의 태초부터 미래까지를 그려 보일 수 있다. 우주와 함께 인간 자체도 경외롭다.
<엔드 오브 타임(Until The End of Time)>은 부제가 '브라이언 그린이 말하는 세상의 시작과 진화 그리고 끝>이다. 지은이인 브라이언 그린(Brian Greene)은 초끈이론을 대표하는 물리학자면서 저서와 방송을 통해 과학대중화에 힘쓰고 있는 인물이다. 제2의 칼 세이건이라는 말도 듣는다. 전작인 <엘레건트 유니버스>를 흥미롭게 읽었던 기억이 난다.
이 책은 물리학을 벗어난 의식, 언어, 예술, 종교, 죽음 등의 분야도 다룬다. 물리학자의 통섭 저작이다. 지은이가 논리를 펼치는 두 기둥은 엔트로피와 진화론이다. 책 초반에서 엔트로피를 설명하는 부분은 발군이다. 엔트로피 개념을 잡는데 다른 어느 책보다 뛰어나다. 빅뱅이 일어날 때 인플라톤장이나 밀어내는 중력 등 새로운 용어도 알게 되었다. 양자 요동으로 생긴 물질과 에너지의 불균일한 분포가 인플레이션 팽창을 타고 넓게 퍼진 후 밀도가 높은 지역에서 1세대 별을 탄생시킨 과정이 정밀하게 그려진다.
마음이 없는 입자에서 의식이 생성되는 문제는 여전히 논란의 대상이다. 지은이는 의식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물리학의 한계를 넘어서야 한다고 말한다. 기존의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한다. 의식을 설명하는 가설 중에 원시의식(proto-consciousness)이라는 개념이 흥미로웠다. 입자들이 의식의 씨앗을 갖고 있다고 가정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입자에게는 기존의 물리적 특성 외에 의식을 나타내는 항목을 도입해야 한다. 또, 꿈을 진화적으로 해석할 때 생존에 필요한 시뮬레이션이너 스토리 텔링이라고 보는 관점이 있다. 초기 인류는 꿈을 통해 사후세계의 개념을 품게 되었다는 주장도 있다. 죽은 자가 꿈에 나타나는 것을 보고 죽음 이후의 세계를 충분히 상상했을 법하다.
이렇듯 지은이는 물리 외적인 영역에서는 여러 가지 학설을 소개하면서 간간이 자신의 견해를 밝힌다. 어쩔 수 없는 한계일 것이다. 그중에서 종교가 우리에게 주는 유익과 우리가 종교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말하는 내용이 있다. 당연하겠지만 지은이는 종교 역시 진화적 산물이라고 여긴다.
(1) 종교의 초자연적 존재나 형이상학적 주장에 얽매이지 않으면 더 크고 충만한 이야기 속에서 펼쳐지는 우리의 삶을 바라보며 즐거움과 편안함을 느낄 수 있다.
(2) 종교적 이야기를 '인간이라면 반드시 갖춰야 할 조건'의 은유적 표현으로 이해하면 굳이 신자가 아니어도 경전을 읽는 데 가치를 부여할 수 있다.
(3) 특정 종교의 교리와 과학을 조화롭게 연결하는 해석 체계를 개발하는 것도 흥미로운 도전이 될 것이다.
(4) 세상에 대한 신성한 느낌에 '합리성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경험을 확장시켜 주는' 또 하나의 층을 추가하는 것도 보람 있는 일이다.
(5) 종교 단체를 지원하고 결속력을 강화함으로써 우리도 이득을 볼 수 있다.
(6) 종교의식에 참여하여 자신의 삶에 신성함을 더하고, 유서 깊은 전통과 나를 연결해 주는 신성한 날을 되새김으로써 감정적 풍요로움을 만끽할 수 있다.
경전의 내용을 문자 그대로 믿지 않더라도 종교는 삶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면서 삶이 더욱 풍성해질 수 있는 실용성을 갖추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책의 뒷부분에 나오는 우주의 미래에 대한 설명은 한 편의 장대한 드라마다. 지은이는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에 비교하며 우주의 역사를 펼쳐 보인다. 우주 즉, 시간의 끝에는 모든 물질이 해체된 어두운 종말이 기다리고 있다. 우주는 크고 작은 블랙홀로 되겠지만 종내는 그 블랙홀마저 소멸할 것이다. 우주는 평범하고 무질서한 고엔트로피 상태에서 영원히 지속될 것이다. 현재의 물리학 이론에 따르면 그렇다. 앞으로 새로운 사실이 발견되면 미래 예측도 당연히 달라진다. 앞으로 1조 년 뒤에 빅크런치가 일어날 수도 있다.
양자론으로 볼 때 우주에 시간이 무한하다면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다. 우리 우주는 다중우주의 한 부분일지 모른다. 우리의 두뇌에서 나오는 다양한 논리와 기억들이 과연 실재하는 것일까. 우리에게는 과거란 것이 없는지 모른다. 결코 일어난 적이 없는 일에 대한 기억과 생각이 주입된 두뇌로 우리가 존재한다고 한들 틀린 말은 아니다. 상상을 확장해 나가면 우주는 기묘한 사건으로 가득하다.
호모 사피엔스는 우주적 규모에서 볼 때 찰나라는 말도 부족할 정도로 순간의 섬광이 되어 살아간다. 우리는 차갑고 텅 빈 무한 공간의 시대를 향해 나아간다. 인류가 존재했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사실 장구한 시간을 열심히 조망해 봐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 약간의 무게만 더한 것에 불과하지 않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의 마지막을 지은이는 이렇게 맺는다.
"그렇다. 우리는 무상하기 그지없는 일시적 존재다. 그러나 우리가 존재하는 짧은 시간은 우주의 역사를 통틀어 매우 희귀하고 특별한 시간이다. 이 시간 동안 우리는 자기 성찰을 통해 만물에 가치를 부여하고, 형이상학적 가치를 창출했다. 영원히 변치 않을 유산을 남기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이미 우주의 타임라인을 조망한 우리는 그것이 이룰 수 없는 목표임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소규모의 입자들이 모여서 현실을 인지하고, 자신을 돌아보고, 자신이 얼마나 단명한 존재인지를 깨닫고, 지칠 줄 모르는 열정으로 아름다움을 창조하고, 연결 관계를 확립하고, 우주의 미스터리를 풀었다는 것은 정말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