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어느 독일인의 삶

샌. 2023. 1. 2. 10:20

이 책의 주인공은 브룬힐데 폼젤(Brunhilde Pomsel)은 나치 선전부 장관이었던 요제프 괴벨스의 비서로 일하다가 독일 제국의 멸망을 곁에서 지켜본 사람이다. 책 표지에 실린 그녀의 프로필이다.

 

"1942년부터 1945년까지, 인류 역사상 가장 중대한 범죄자들 중 하나인 요제프 괴벨스를 위해 일했다. 나치 선전부의 속기사였던 그녀가 풀어놓는 이야기는 악의 평범성에 대한 통찰을 보여준다. 폼젤은 자신이 나치 가담자였다는 사실을 부인하지 않는다. 하지만 자신은 철저히 비정치적이었고 그 당시 그녀에게 중요한 것은 단지 직장, 의무감, 소속감에 대한 욕구였다는 것이 그녀의 항변이다. 나치 만해의 규모와 잔학성은 종전 뒤에야 알게 되었다고 한다. 2017년 106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폼젤은 그저 평범한 독일인이었다. 베를린 방송국에 근무하다가 속기 능력을 인정받아 괴벨스의 비서로 채용되면서 나치 부역자가 되었다. 그녀의 말을 들어보면 힘든 시기에 직장과 물질적 안정만을 바랐을 뿐 나치가 무슨 짓을 저지르고 있는지는 알지 못했고 관심도 없었다고 한다. 거기에는 맡은 일을 열심히 해야 한다는 의무감과 상층부에 속하고 싶은 욕망이 자리잡고 있었을 것이다. 자신의 성공과 물질적 안정만 생각하고, 사회적 불의와 타인에 대한 차별에는 둔감한 결과 그녀는 결국 거악(巨惡)에 협력하게 되었다.

 

책에는 괴벨스에 얽힌 흥미로운 에피소드들이 소개된다. 그녀는 히틀러와 괴벨스가 자살할 때 바로 옆 벙커에 있었다. 괴벨스가 '총력전을 원하는가'라는 유명한 연설을 할 때는 단상에 앉아 있기도 했다. 그녀는 군중들의 광기에 경악했다고 말한다. 그녀는 마지막까지 뭔가 진실을 숨기는 듯한 인상을 풍긴다.

 

<어느 독일인의 삶>이 말하는 것은 우리는 누구나 폼젤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이다. 한나 아렌트가 지적한 '악의 평범성'이다. 폼젤은 이웃에서 만날 수 있는 보통의 여성이다. 말년이 되어 폼젤은 그녀의 솔직한 생각을 전해준다. 잘못된 행위에 대한 회한에 젖기도 하지만, 그것은 어쩔 수 없는 길이었다고 변명한다. 그녀의 말이다.

 

"나는 내 인생에서 많은 것을 잘못했다고 생각해요. 당시엔 그런 부분을 깊이 생각해 보지 않았어요. 그저 난 항상 의무감이 투철한 사람이었어요. 내가 하는 일은 사람들에게 믿음을 줬어요. 그만큼 성실하게 잘 했고, 항상 정확했어요, 어떤 자리에 있건 나는 내가 맡은 일을 충실히 완수했어요. 평생 그랬죠. 당시도 물론이었고요. 그 일이 나쁜 일이건 좋은 일이건 상관없었어요. 방송국에 근무하건 선전부에서 일하건 그건 중요하지 않았어요. 어디에 있건 마찬가지였어요. 그건 문제가 되지 않았어요."

 

그녀의 말에 나오는 '열심' '성실' '충실' '의무' 등이 역사 의식이나 자기 성찰 없이 실천될 때 어떤 결과를 낳을 수 있는지 두려워진다. 폼젤의 삶의 교훈은 결국 우리 자신을 향한다. 나는 무관하다고 해서 과연 책임을 피할 수 있을까. 훗날 우리도 폼젤처럼 말할 것인가. 우리는 아무것도 몰랐다고. 알려고 하지도 않았고, 그저 열심히 살기만 했다고.

 

나치가 집권하고 세력을 떨친 것은 자신을 비롯한 당시 독일인들의 무관심이었다고 폼젤은 말한다. 어느 특정한 사람이나 계층의 무관심이 아니라 오늘날에도 반복해서 볼 수 있는 일반인의 무관심이다. 예를 들어, 우크라이나에서 끔찍한 일이 일어나고 사람들이 고통을 겪는 모습을 TV로 보면서도 방송이 끝나면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이 고개를 돌리고 즐겁게 저녁을 보내는 게 우리들이다. 인간 본성에 내재한 이기주의와 불의에 대한 외면이 반복적인 역사의 비극을 유발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폼젤을 비난할 수만은 없다.

 

그녀는 위에서 시키는 대로 서류를 타이핑하고 전화를 받고 걸었을 뿐 나치가 그런 집단인지는 꿈에도 몰랐다고 잡아뗀다. 어떻게든 남들보다 잘살려고 하고 열심히 살았던 게 잘못이었냐고 그녀는 항변한다. 그러나 그런 행위가 거악을 돕는 것이라면 그녀의 책임이 없는 것일까. 이 책은 품젤을 비난하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현재를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묻는다. 개인의 이익에 매몰되어 자기 성찰의 눈을 닫는 순간 야만이 우리를 집어삼키기 때문이다. 어느 독일인, 폼젤의 삶이 보여주는 경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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