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권으로 된 이민진 작가의 장편소설이다. 이민진 작가는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다. 1970년대 중반인 일곱 살 때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을 간 한국계 미국인이다. 예일대 역사학과와 로스쿨을 졸업하고 변호사 일을 하다가 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파친코(Pachinko)>는 1910년부터 1989년까지를 시대적 배경으로 4대에 걸친 재일교포 가족의 처절한 생애를 다룬 소설이다.
"역사가 우리를 망쳐 놨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이야기는 이런 강렬한 문장으로 시작한다. 이야기의 중심에는 선자라는 여인이 있다. 선자는 아무리 밟혀도 기어코 다시 일어나는 잡초처럼 강인한 생명력을 보여주는 여인이다. 무너지지 않는 꿋꿋한 정신력은 한민족을 닮았다. 일본이라는 낯선 땅에서 그녀는 일가의 중심이 되어 시대의 풍파를 견뎌낸다. 인생은 불공평하고 억울하다. 고통과 상처 투성이다. 그래도 삶은 계속되어야 하고, 인생의 의미는 무너지지 않고 싸워 나가는 데 있다고 소설은 말한다.
선자의 남편인 이삭, 두 아들인 노아와 모자수는 이상주의자와 현실주의자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이삭과 노아는 비극적인 죽음에 이르는데 어쩌면 예견된 결말인지 모른다. 반면에 모자수는 아버지의 길을 따라 세속적인 삶을 살아간다. 이 세상에는 현실을 극복하려는 사람과 현실에 잘 적응하는 사람이 있다. 삶이 투쟁이라는 것은 어느 쪽이나 마찬가지지만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려는 쪽에게 현실은 늘 가혹하다.
<파친코>는 디아스포라의 이야기다. 미국으로 옮겨져 생활하게 된 작가의 체험이 이 소설에 진하게 녹아 있음이 분명하다. 디아스포라에게 일본은 미국보다 상황이 훨씬 더 나빴을 것이다. 이국에서 온갖 난관을 극복하고 생존한 분들께 감사와 존경을 표한다. 또한 현대의 우리들 또한 정신적인 디아스포라가 아닌가, 라는 생각도 해 본다. 전통적인 삶의 양식이 파괴되고 현대라는 터전에 내동이처진 것과 같기 때문이다. 우리는 정주민에서 노마드가 되어 가고 있다.
외국인이나 외국에 거주하는 한국계 젊은이들은 우리의 역사를 잘 알지 못한다. 일본과의 아픈 역사를 배울 기회가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30개가 넘는 언어로 번역된 <파친코>가 훌륭한 역사 교과서가 되지 않을까 싶다. 재일교포들은 일본인이 천하게 여기는 파친코 사업에 많이 참여했다고 한다. 파친코 기계는 비밀리에 조작을 해서 손님이 돈을 잃도록 하는 것 같다. 소설에도 그런 장면이 나온다. 소설 제목이 파친코인 것은 인생 역시 그러하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이 아닐까. 세상은 기본적으로 불공평하고 정의롭지 못하다. 인류 역사는 그런 가운데서도 꺾이지 않는 민초들의 질긴 삶을 보여준다.
<파친코>에는 정(情), 한(恨)과 같은 한국인의 정서가 잘 녹아 있다. 동시에 어떤 외압에도 무너지지 않는 인간의 끈질긴 생명력이 빛난다. 구둣발에 밟혀도 다시 고개를 내미는 민들레와 같다. 소설을 읽는 동안 민들레 같은 잡초의 이미지가 떠나지 않았다. 두 권을 이틀에 후딱 읽어넘긴 재미있으면서 애절한 이야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