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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편안한 죽음

보부아르가 어머니의 입원과 죽음을 지켜보면서 어머니와 화해하는 과정을 그린 자전소설이다. 동시에 인간에게 죽음이란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를 묻는다. 70대 후반이었던 작가의 어머니는 대퇴부골절로 입원해서 암 진단을 받고 두 달가량 치료를 받다가 사망했다.  작가의 어머니는 강인하고 열정적인 삶을 살았지만 자식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간섭하고 자신의 뜻대로 하려고 했다. 자연히 보부아르와는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갑작스레 찾아온 질병으로 어머니를 간병하면서 모녀간의 유대감을 확인한다. 작가는 어머니의 삶과 죽음을 드러냄으로써 어머니를 애도하면서 자신과도 화해하게 된다. 책 중 한 대목은 이렇다. "나는 죽음을 목전에 둔 이 환자에게 애정을 느끼고 있었다. 희미한 불빛 아래에서 엄마와 이야기를 나누면..

읽고본느낌 2025.01.15

날아라 고니

경안천이 대부분 얼음으로 덮였다. 일부 얼지 않은 곳에는 고니와 기러기가 옹기종기 모여 있다. 동장군에 맞서 물을 지켜내려고 진을 치고 있는 병사들 같다. 다행히 당분간은 강추위 예보가 없다. 새들이 놀 수 있는 터전이 이만큼이라도 계속 보존되면 좋겠다.  얘들은 한낮에는 잘 움직이지 않는다. 휴식시간인 것 같다. 그래도 기다리다 보면 운 좋게 하늘로 날아오르는 고니를 볼 수 있다. 솟구쳐오르는 힘찬 날갯짓에 내 심장이 마구 뛴다. 유유히 비행하는 우아한 자태를 넋을 빼앗기고 바라본다. 답답한 가슴이 뻥 뚫리는 것 같다.  근처에는 맹금류 한 마리가 나뭇가지에 앉아 이들을 지켜보고 있다. 사냥할 생각이 가득한 듯하나 무리지어 있으니 공격할 엄두가 안 나는가 보다. 천변을 걷다 보면 새털이 무더기로 흩어져..

사진속일상 2025.01.14

개치네쒜

최근에 재미있는 우리말을 하나 알았다. "개치네쒜!" 재채기를 한 후에 내는 감탄사로, 이 말을 외치면 감기가 들어오지 못하고 물러나게 된다고 한다. 쉽게 말하면 '감기야, 물렀거라!'라는 뜻이다. 동시에 재채기를 한 당사자에게도 건강을 비는 의미가 있다. 영미권에서 쓰는 "Bless You"와 비슷하다. 대중교통을 탔을 때 옆에 재채기를 하는 사람이 있으면 짜증이 나고 눈총을 주게 된다. 마스크라고 쓰고 있으면 다행이지만 어떤 사람은 입을 가리지도 않는다. 코로나 팬데믹을 지나면서 사람들은 무척 예민해져 있다. 버스 안에서 재채기를 하다가 싸움이 벌어졌다는 보도도 있었다. 개치네쒜는 내가 감기에 걸리지 않으려는 주문이면서 상대의 건강을 염려해주는 좋은 말이다. 어원이 궁금한데 찾아봐도 분명하게 나와 있..

길위의단상 2025.01.13

토지(6, 7)

6권과 7권은 하동, 용정, 경성을 무대로 나라 잃은 백성들의 고달픈 삶을 그린다. 일제에 빌붙어 약삭빠른 처신을 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권세를 누리며 호의호식하지만 대부분의 민중은 뿌리 없는 부평초 같은 삶을 살아간다. 고향에서 쫓겨나 연해주나 간도로 이주한 사람들이야 오죽하랴 싶다. 다행이랄까 서희는 사업 수완을 발휘하여 많은 돈을 모으고 용정의 중심인물로 부상한다. 독립운동에 대한 지원을 거부하며 일본과 척을 지지 않는 것은 고향으로 돌아가 조준구에게 복수하려는 일념 때문이다. 7권 끝에는 공 노인을 통해 조준구에게 옛 땅을 담보로 돈을 빌려주면서 은밀한 복수 작업이 시작된다. 두 권에는 의병 및 독립운동가들의 활동도 펼쳐진다. 주로 옛 동학교도들이 모여서 나라를 되찾으려는 시도다. 중심인물은 환, ..

읽고본느낌 2025.01.12

솟구쳐 오르기 1 / 김승희

억압을 뚫지 않으면억압을억압을억압을 악업이 되어악업이악업이악업이 두려우리라 절벽 모서리에 뜀틀을 짓고절벽의 모서리에 뜀틀을 짓고내 옆구리를 찌른 창을 장대로 삼아하늘 높이장대높이뛰기를 해보았으면 눈썹이 푸른 하늘에 닿을 때까지푸른 하늘에 속눈썹이 젖을 때까지 아, 삶이란 그런 장대높이뛰기의 날개를원하는 것이 아닐까상처의 그물을 피할 수도 없지만상처의 그물 아래 갇혀 살 수도 없어 내 옆구리를 찌른 창을 장대로 삼아장대높이뛰기를 해보았으면억압을 악업을그렇게 솟아올라아, 한번 푸르게 물리칠 수 있다면 - 솟구쳐 오르기 1 / 김승희  알고리즘에 갇혀 살아가고 있다는 느낌을 자주 갖는다. 구체적으로는 유튜브를 볼 때다. 내가 보고 싶은 것을 알아서 찾아주니 편리하긴 한데, 세상을 보는 시야를 좁게 만드는 단점..

시읽는기쁨 2025.01.11

겨울이 좋지만

나는 겨울이 좋다. 이유는 단 하나다. 칩거하는 데 이만한 계절이 없기 때문이다. 겨울은 다른 계절처럼 바깥 날씨가 유혹하지 않는다. 나갈까 말까 망설일 필요가 없다. 밖에 나가지 않아도 될 핑계는 충분하다. 따뜻한 아랫묵에서 딩굴딩굴하는 호사도 겨울이라야 누릴 수 있다. 옛날과는 차이가 있지만 아파트라고 크게 다르지는 않다. 영하의 찬바람에 두꺼운 옷을 입은 사람들은 종종거리며 지나간다. 학교로, 직장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가볍지는 않다. 내 처지가 행복하다고 여기지 않을 도리가 없다. 겨울이 아니라면 이런 안온감과 포만감을 누가 주겠는가. 안과 밖의 대비가 겨울만큼 극적인 계절은 없다. 어머니 자궁 속 태아의 편안함이 이와 같을까. 바르르 떠는 문풍지 소리도 정겹다. 사각사각 눈 내리는 소리를 들으며 ..

참살이의꿈 2025.01.10

사기[34]

그러고는 마침내 자기 목을 찌르며 빈객에게 자신의 목을 받들고 사신을 따라 말을 달려가 고제에게 아뢰도록 하였다. 고제가 말했다."아, 역시 까닭이 있었구나! 한낱 평민에서 몸을 일으켜 세 형제가 번갈아 왕이 되었으니 어찌 어질지 않겠는가!"그를 위해 눈물을 흘리고는 두 빈객을 도위로 삼고 군졸 2000명을 뽑아 왕의 예를 갖추어 전횡을 장사하였다.그러나 장례가 끝나자마자, 두 빈객은 무덤 곁에 구덩이를 파고 모두 스스로 목을 메고 거꾸로 처박혀 전횡을 따라 죽었다. 고제는 이 소식을 듣고 몹시 놀라며 전횡의 빈객이 모두 어진 사람들이라고 생각하였다. 또 그 나머지 500명이 여전히 바다 가운데에 있다고 들었으므로 사신을 시켜 불러오게 했다. 사신이 그곳에 이르러 전횡의 죽음을 알리자 모두 스스로 목숨을..

삶의나침반 2025.01.09

찬바람 맞으며 경안천을 걷다

날이 추워졌다. 올겨울 들어 처음으로 한낮 기온이 영하로 떨어졌다. 이틀 전이 소한(小寒)이었다. 옛날 어른들이 '소한이 대한네 집에 가서 얼어 죽는다'는 말을 자주 했다. 이 무렵이면 한차례 추위가 지나갈 만한 때다. 앞으로 사나흘간 강추위가 몰려올 것이라는 예보다. 더 추워지기 전에 몸을 움직여야겠다는 생각에 경안천에 나갔다. 중무장을 했건만 찬바람이 세게 불어서 눈물, 콧물이 줄줄 흘렀다. 몸도 자꾸 수굿해졌다. 그러나 한남동에서 밤을 새우며 시위를 하는 사람들을 떠올리며 부끄러웠다. 내리는 눈을 고스란히 맞으며 앉아서 버틴 '키세스 시위대' 사진에 가슴 뭉클했었다. 나는 도대체 무엇을 가지고 툴툴댄단 말인가.  백로나 왜가리가 드문드문 눈에 띄고,  이 왜가리는 가까이 다가가도 피하지를 않는다. ..

사진속일상 2025.01.08

더 글로리

이 드라마가 방영될 즈음이었다. 어릴 때 같은 동네에서 살았던 선배한테서 장문의 카톡이 왔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헤어진 뒤에는 만나지도 않았고 심지어는 전화 통화조차 없었던 선배였다. 그러니까 거의 60년 만의 연락이었다. 카톡은 어렸을 때 나를 괴롭힌 일에 대한 사죄와 용서를 바란다는 내용이었다. 선배는 구체적인 상황까지 묘사하며 잘못을 빌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것은 나는 그 상황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선배와 관련된 추억이라는 게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 조금은 황당한 마음으로 나는 기억조차 못하고 있으니 미안해할 것 없다고 답신을 보냈다. 최근에 드라마 을 봤다. 2년 전에 인기리에 방영된 학폭을 주제로 한 드라마다. 고등학생 때 일진들로부터 학대를 당한 피해자 문동은이 30대가 ..

읽고본느낌 2025.01.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