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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동리 팽나무

우리나라에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팽나무가 4그루 있다. 그중 하나가 고창군 부안면 수동리에 있는 이 팽나무다. 안내문에는 우리나라 팽나무 중에서 가장 크고 웅장하다고 적혀 있다. 나무 높이는 12m, 줄기 둘레는 6.6m, 나뭇가지가 펼쳐진 너비는 26m에 이른다. 수령은 400여 년으로 추정한다. 이 팽나무는 정월 대보름에 마을 사람들이 당산제를 지내면서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던 당산나무로, 오랫동안 마을 공동체의 중심이자 마을을 지켜주는 신으로 여겨졌다. 예전에는 나무 앞까지 바닷물이 들어와 갯골을 따라 들어온 배가 이 팽나무에 밧줄을 감아 정박했다고 한다. 지금은 간척이 되어 주변이 너른 평야로 변해 있다. 팽나무가 위치한 곳이 인가에서 조금 떨어진 얕은 언덕 위다. 주위에는 다른 큰 나무가 ..

천년의나무 09:43:50

모양성 용트림소나무

고창 모양성 안에 맹종죽림(孟宗竹林)이 있다. 맹종죽은 1938년에 유영하 선사가 불전의 포교를 위해 절을 지으면서 심었다고 한다. 맹종죽림과 송림의 경계에는 일부 소나무가 대나무과 얽혀 자란다. 대나무 사이을 뚫고 자라는 소나무 모습이 승천하기 위해 용트림하는 것 같다. 이 광경을 보면서 '적대적 공생'이 떠올랐다. 처음에는 하늘을 가리는 대나무가 얄미웠을 것이다. 대나무는 소나무의 생명력을 전투적으로 부추겼고, 소나무가 승천의 꿈을 꾸게 만들지 않았을까. 소나무와 대나무는 이제 둘도 없는 동반자가 된 듯싶다. 치열한 삶의 현장이 빚은 아름다운 풍경이다.

천년의나무 2025.02.19

전주, 군산, 고창

전주 구시가지에는 6, 70년대에 지은 단독주택이 많이 남아 있다. 일부는 빌라나 다세대주택으로 변했지만 아직 옛 모습을 간직한 집이 상당하다. 대규모 아파트 단지로 개발할 여력이 안 되는 동네다. 전주에는 한옥마을이 유명하지만 특정 지역일 뿐이고 대부분은 시멘트로 지은 비슷한 형태를 하고 있다.  골목길을 걸으며 옛집들 풍경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담장 너머로 작은 마당이 있으며 대개 유실수 몇 그루가 지붕까지 닿아 있다. 벽이 도로에 맞닿아 옹색한 집도 있다. 서로 이마를 맞대고 오순도순 살아가는 모습이 정겹다. 어수선해 보여도 사람 살아가는 향취가 느껴진다. 전주의 골목길을 산책한 이른 아침이었다.  장모님이 소환해서 형제들이 모두 모였다. 파티가 열렸고, 하사하는 금일봉을 받았고, 밤늦게까지 시..

사진속일상 2025.02.19

좋을 대로 해라 / 김규동

천상병이 좋아한 것은 막걸리공초 오상순은 그저 담배문익환이 사랑한 것은 반독재 집회김정환은 철학과 맥주에즈라 파운드가 좋아했던 것은 시경말로가 흠모한 것은 영웅이다정지용이 사랑한 것은 말을 만드는 일과 염소수염이상이 그리워한 것은 인간의 사랑이다이병기가 사랑한 것은 난초김기림은 지성을권정생이 사랑한 것은 길가의 민들레꽃김남천이 사랑한 것은 노동자 농민이고임화가 사랑한 것은맨발로 뛰어다니는 한국의 아이들이다여운형이 가장 좋아한 것은 대중을 만나는 일손기정이 좋아한 것은 끊임없이 달리는 것김구가 사랑한 것은 나라의 독립이다 얘들아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집에서 학교에서 시달리는 아이들아너무 괴로워하지는 마라네 좋아하는 것을 하면 된다그것만이 너 자신을 살리는 길이니라천재는 거기 있다좋을 대로 해라 좋을 대로 ..

시읽는기쁨 2025.02.15

최선의 삶

이런 청소년기를 보낸 사람도 있구나,라고 가슴 아프게 읽었다. 범생이로 보낸 나로서는 전혀 다른 세상을 대하는 충격이 컸다. 은 소설이지만 작가의 실제 경험에 바탕을 둔 성장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중학생 때 가출하고 고등학교는 중퇴해서 24세 때 한예종에 들어간 작가의 이력이 소설의 구성과 비슷하다. 임솔아 작가의 장편소설이다. 작가의 말에 따르면 이 책은 작가가 방황하던 16살 때부터 10년간 써 온 소설이라고 한다. 오랜 기간 놓지 못한 것은 글로 드러냄으로써 마음의 상처가 치유되기를 바란 간절함 때문이었으리라 생각된다. 작가가 다시는 악몽을 꾸지 않게 되었기를 바란다. 소설은 강이, 아람, 소영 세 소녀의 심한 성장통에 시달린 중고등 시절 이야기다. 강이는 뚜렷한 이유 없이 친구 따라 가출해서 험..

읽고본느낌 2025.02.14

경안천 버들(250211)

경안천에서 가장 애호하는 장소가 된 이유는 이곳에 '나'의 나무, 경안버들이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왜 내가 좋은 둑방길을 버리고 강변으로 내려가는지 모른다. 다정한 친구를 만나는 것처럼 가능하면 가까이에서 보고 싶기 때문이다. 손이라도 잡을 수 있으면 좋으련만 그대와 나 사이에는 강물이 가로막고 있다. 마음 놓고 건너갈 수 있을 정도의 꽝꽝 얼음이 어는 경우는 드물다. 어느 겨울인가 그런 때가 있기는 했으나 몇 걸음 떼어놓다가 겁을 먹고 되돌아섰다. 사랑은 용기라고 하는데 이러다가는 짝사랑만 하다가 끝날지 모르겠다. 나의 나무여, 오늘도 안녕!

천년의나무 2025.02.12

경안천의 큰부리큰기러기

경안천습지생태공원에서 기러기를 가까이서 만났다. 기러기 중에서도 큰부리큰기러기로 매년 겨울이면 이곳으로 찾아오는 손님이다. 얘들은 시베리아에서 지내며 번식을 하고 월동을 하기 위해 우리나라를 찾는다.  기러기는 얼음이 얼지 않은 곳에 무리로 모여 수초 사이에서 열심히 먹이 활동을 하고 있었다. 내지르는 소리가 봄철 개구리 합창처럼 요란했다. 둘레에는 몇 마리가 고개를 빳빳이 들고 미동도 없이 서 있었다. 아마 보초병이 아닌가 싶다. 대부분의 새들이 그러하듯 기러기도 경계심이 크다.  얼음판 위에서 휴식을 취하는 다른 무리가 있고,   심심한 하늘에 그림을 그려주기도 하고,  다른 쪽에는 고니와 함께 쇠오리들이 모여 있었다.   단톡방 세 군데에 오늘 찍은 기러기 사진을 올렸다. 사람마다 각각의 반응을 보..

사진속일상 2025.02.12

좌파 고양이를 부탁해

어쩌다 새벽에 깰 때가 있다. 새벽이라야 6시쯤이지만 보통 때보다는 한두 시간 일찍 눈을 뜨는 셈이다. 이불속에서 빈둥거리기도 하고 부지런을 떨며 책을 펼칠 때도 있다. 오늘은 김봄 작가의 에세이 를 읽었다. 이런 시간에는 무거운 주제보다는 가벼운 에세이가 적당하다.  우선 군더더기 없는 간결한 문장이 맘에 들었다. 일상의 에피소드를 가벼운 터치로 유머러스하게 잘 그려냈다. 제목이 암시하는 것처럼 부모와의 정치적 견해 차이로 인한 갈등도 여럿 나온다. 심각한 것을 심각하지 않게 대처하고 쓰는 것이 작가의 재주인 것 같다. 작가는 고양이 두 마리와 함께 산다. 여행이나 출장을 갈 때는 어쩔 수 없이 어머니에게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한다. 결혼하지 않은 작가는 정치적으로 좌파이고 부모는 우파다. 사사건건 부딪..

읽고본느낌 2025.02.11

골골 팔십

지인이 급작스레 죽었다. 일흔이 넘어서도 백두대간을 타고, 등산 모임의 대장을 맡을 정도로 건강을 자신했는데 갑자기 심정지가 왔다. 산에서 일어난 일이라 손 쓸 새 없이 벌어진 일이었다. 사람의 목숨은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른다. 인명재천(人命在天)이라 할 수밖에 없다. 건강하다고 오래 사는 게 아니다. 약골이라고 단명하지도 않는다. '골골 팔십'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현대식으로 바꾸면 '골골 백살'이라고 해야 옳겠다. '무병단명(無病短命) 유병장수(有病長壽)'라는 말도 있다. 이런 말들에는 상당한 근거가 있다. 몸이 약하면 아무래도 조심을 하게 된다. 기력이 떨어지니 무리를 할 수가 없다. 반면에 튼튼한 사람은 자신의 건강을 과신하기 쉽다. 과로나 과음을 겁내지 않는다. 이런 지나침이 쌓이면 한순간에..

참살이의꿈 2025.02.10

사기[37]

패공은 고양의 객사에 이르자 사람을 보내 역생을 불렀다. 역생이 객사에 이르러 패공을 만나러 들어갔을 때, 패공은 마침 침상에 걸터앉은 채 두 여자에게 발을 씻기게 하고 있었는데 그 모습으로 역생을 만났다. 역생은 들어가서 길게 읍한 뒤 절을 하지 않고 말했다."당신은 진나라를 도와 제후들을 치려고 하십니까? 아니면 제후들을 이끌고 진나라를 치려고 하십니까?"그러자 패공은 역생을 욕하며 꾸짖었다."이 유생 놈아! 천하 사람들이 한결같이 오랫동안 진나라에 고통을 겪었기 때문에 제후들이 서로 손을 잡고 진나라를 치려 하고 있는데, 어째서 진나라를 도와 다른 제후들을 친다는 말을 하느냐?"역생이 말했다."진실로 사람들을 모으고 의병들을 합쳐서 무도한 진나라를 쳐 없애고자 하신다면 거만한 태도로 장자를 만나서는..

삶의나침반 2025.02.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