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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산. 바. 라. 기.
멀리 나가지 않는다면 그 해의 첫 꽃은 늘 개불알풀꽃이다. 집 주변에서 제일 먼저 만나는 꽃이기 때문이다. 어제도 동네 어귀 양지바른 곳에 옹기종기 피어난 개불알풀을 보았다. 남쪽 지방에서는 1월에도 개불알풀꽃을 볼 수 있지만 내가 사는 곳에서는 3월 초순이 되어야 피어난다. 이 꽃을 보고서야 비로소 봄이 왔음을 실감한다. 나의 봄 지표꽃인 셈이다. 이른 봄 우리 곁에 찾아와 "와~" 하고 감탄사를 나오게 하는 파란색 별과 같은 꽃, 개불알풀이다. 이름이 민망하긴 하나 그래서 더 정겹게 다가오는 꽃이다.
미국의 자연주의자인 베리 로페즈(Barry Lopez, 1945~2020)의 에세이 모음집이다. 사후에 출간된 책으로 회고록이자 자신이 다녀온 여러 지역을 인간 중심이 아닌 자연의 입장에서 아름답게 보여주는 책이다. 부제가 '숲과 평원과 사막을 걸으며 고통에서 치유로 향해 간 55년의 여정'이다. 그의 글은 현장에 서 있는 것처럼 생생하다. 남극을 비롯해 그가 찾아간 특별한 장소를 지구환경이라는 측면에서 이해하게 되고, 우리가 자연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깨닫게 된다. 진정으로 자연에 다가가면 우리는 경외심을 품지 않을 수 없으리라. 지은이는 이 시대를 '공포시대'라고 부른다. 자연에 대한 인간의 오만과 횡포가 극에 달한 시대라는 뜻이다. 자연에 대한 서술 못지않게 내가 관심을 가진 부분은 지은이가 어..
놋화로 온기가 사라지고문풍지를 치고 온 냉기가목덜미를 핥는 밤 할배 빠져나간 아랫목으로고슴도치처럼 파고들었지 아궁이에서 타닥거리며장작 타는 소리를 들으며다시 잠들던 어린 시절의 따스했던겨울 새벽이 있었다 (150108) 문득, 그대가 옆에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150109) 봄이 오면몰래 들떴지 수리산 변산아씨를만날 생각으로 살그머니 창문 열고미소 짓던 새악시들 어디로 다 떠나고 바람 부는 계곡에는사나운 발자국만 남았네 침묵의 봄이 된 것은나도 공범자였기 때문 (150110) 하늘아, 어쩌자고 막무가내로쏟아져 내리니 땅은 꿈쩍도 않는데아예 눈 딱 감고 있는데 (150111) 생명의 약동(躍動)! 이보다 더 아름다운 것은 없어라 (15012) 살아가..
철새 떼가, 남쪽에서날아오며도나우강을 건널 때면, 나는 기다린다뒤처진 새를 그게 어떤 건지, 내가 안다남들과 발맞출 수 없다는 것 어릴 적부터 내가 안다 뒤처진 새가 머리 위로 날아 떠나면나는 그에게 내 힘을 보낸다 - 뒤처진 새 / 라이너 쿤체 쭈뼛쭈뼛 바깥으로 밀려난 아이가 있었다. 앞에 서지 못하고, 중간에 끼지도 못하고, 가장자리에 겨우 자리를 잡고 부끄러운 듯 서 있었다.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아 투명인간 같았던 아이였다. 오래된 흑백 사진첩에서 그 아이를 본다. 뒤처진 새를 기다리는 시인의 마음이 따스하다. "그게 어떤 건지, 내가 안다 / 남들과 발맞출 수 없다는 것 // 어릴 적부터 내가 안다" 시인은 뒤처진 새에 자신을 겹쳐서 보고 있을 거다. 아파 보지 않고서 뒤처진 새에 눈길을 줄 수..
경북 울진군 서면 소광리의 금강송 숲을 소재로 한 산림소설이다. 이 소설을 쓴 이용직 작가는 산림청 공무원으로 나무를 심고 산을 돌보는 일을 하고 은퇴한 분이다.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숲과 산림에 관한 글을 쓰는 작가다. 도 실제 인물을 주인공으로 한 소설이다. 주인공 김달수 씨는 일제 강점기 때 궁핍을 면하기 위해 소광리에 들어와 화전민의 삶을 시작했다. 소광리는 버스가 다니는 길에서 40리나 들어가야 하는 깊은 산속이었다. 그는 해방과 6.25 전쟁을 겪으며 혹독한 환경에서도 억척같이 살아낸다. 소광리는 우리나라 최대의 금강송 군락지가 있는 곳이다. 그는 궁벽한 산촌에 살면서 자신을 살려주는 산, 특히 금강송을 지키기 위해 평생을 바친다. 도벌꾼을 막고 산불을 예방하는 등 정부의 손이 미치지 못하는 ..
한 달 전부터 어금니가 욱신거리기 시작했다. 그럭저럭 참고 지냈는데 양치를 하다가 만져보니 많이 흔들리는 것이었다. 전처럼 저 혼자 툭 빠지면 큰일이다 싶어 부랴부랴 치과에 가서 발치를 했다. 그리고 임플란트 공사가 시작되었다. 그동안 이 어금니로 용케 버텨왔다. 2년 전에 앞니 브리지를 할 때 의사 선생님이 이 어금니도 수명이 다했으니 임플란트를 하는 게 어떻겠느냐고 물었다. 길어봤자 한두 달이라고 했다. 엑스레이 사진과 달리 아무 증상이 없으니 좀 더 기다려보겠다고 나는 답했다. 그런 어금니로 2년을 버텨 온 것이다. 마치 시한부 판정을 받은 환자가 주치의의 예상보다 열 배 넘게 산 셈이다. 그렇지만 치아 상태가 더 좋아질 리는 없는 법, 드디어 종말이 찾아왔다. 같은 죽음이라도 자연사가 훨씬 아름답..
덕진공원에 있는 팽나무다. 덕진공원에는 왕버들 노거수가 여럿 있지만 팽나무는 이 나무 하나인 것 같다. 공원의 북쪽 산책로에 있다. 나무 수령은 150년 가량 되었고, 높이는 14m, 줄기 둘레는 3m 정도다. 존재에 등급을 매길 수 있으랴마는 굳이 구분한다면 인간보다는 나무가 더 상급이 아닌가 싶다. 저 묵묵한 의연함 앞에서 인간 존재의 경박함이 얼마나 하찮은가. 나아가면 나무보다는 바위가 위일 수도 있겠다. 그 '억년 비정(非情)의 함묵(緘默)'을 당할 자 누가 있으랴. 공원 팽나무를 바라보며 그런 생각을 했다. 햇살 따스한 2월의 어느 날이었다.
퇴원한 장모님을 뵈러 가서 닷새를 있었다. 그 사이에 병원 진료를 받으러 눈비 속에서 익산에 다녀왔고, 가까운 데 나들이를 하기도 했다. 상심한 장모님을 달래주려 나름 애를 썼는데 다행히 마음을 여시는 기미가 느껴졌다. 시간이 지나면서 차차 회복되시길 기대한다. 하루는 장모님을 모시고 아중호수(牙中湖水)에 다녀왔다. 전주시 남동쪽 외곽에 있는 아중호수는 여러 차례 지나치기만 하다가 이번에 처음으로 찾아가 봤다. 아내와 장모님이 카페에서 휴식하는 동안 나는 호수 둘레로 난 약 3km 길이의 산책로를 걸었다. 예상보다 멋진 호수길이었다. 데크길에 하얀 새의 배설물이 보여 위를 올려다보니 처음 보는 새 여러 마리가 소나무에 앉아 있었다. 검색해 보니 여러 이름이 나오는데, 가마우지의 한 종류로 보인다. 자주..
산골에서 살아가는 삶을 그린 이 책을 쓴 저자는 일본의 우에노 지즈코 선생이다. 책의 저자 소개에 의하면 우에노 선생은 1948년생이고 사회학을 전공한 동경대 은퇴 교수로 나와 있다. 선생은 20여 년 전에 야마나시현 아쓰가타케 남쪽 산속에 집을 짓고 도쿄와 전원을 오가는 생활을 한 것 같다. 코로나가 확산되자 완전히 거처를 그곳으로 옮겨 혼자 살고 있다. 는 산속 생활의 즐거움과 고충, 노년의 소망 등을 적은 에세이다. 우리나라의 전원생활 사정과 크게 다르지 않다. 책에는 가족 이야기가 하나도 나오지 않는 것으로 보아 선생은 독신녀가 아닌가 싶다. 지도를 찾아보니 야마나시현은 일본 중부 지방으로 도쿄에서 차로 두 시간 정도 걸리는 남서쪽에 위치하고 있다. 그곳 아쓰가타케 지역은 은퇴자들이 말년을 보내는..
베란다에 버려진 화분이 있다. 산에서 가져온 흙을 담아두고 있는데 2월이면 연초록 잎이 나기 시작하고 이내 꽃을 피운다. 별꽃이다. 올해도 일찍 새 잎이 나는가 했더니 어느덧 환하게 꽃을 피웠다. 베란다에 나갔다가 우연히 발견해서 더욱 기뻤다. 비록 베란다에서지만 올해 만난 첫 꽃이다. 잡초 취급을 받는 별꽃이지만 이름만은 예쁘다. 우리 집에 찾아온 별이니 더욱 귀하지 아니한가. 그동안 널 거들떠보지 않아 미안하구나. 이렇듯 꽃이라도 피워야 눈길 한 번 더 주며 소중한 줄 안다. 그게 인간의 마음인 걸 어쩌랴.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아도 괘념치 않고 밝게 웃는 네가 고맙다. 모든 생명은 거룩하다는 사실을 널 보며 다시금 되새긴다. 동시에 생명의 씨가 품은 지극한 정성 앞에서 경건해지지 않을 수 없다. 고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