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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에 대한 질문

민주주의가 위기를 맞고 있다. 한국만 아니라 전세계적 현상이다. 트럼프가 당선된 미국에서는 극우 세력이 힘을 받아 세계 질서를 어지럽히고 있다. 겉으로나마 민주주의 이념을 전파하던 예전의 미국이 아니다. 개인이든 나라든 각자도생이라는 험난한 시대에 접어들었다. 작년에 윤석열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것도 개인의 문제만이 아닌 이런 지구적 분위기와 연관되어 있다고 본다. 전에는 민주주의와 세계 평화로 표상되는 이데올로기/가치관을 주도해 나가는 국가가 있었지만 이젠 더 이상 없다. 그들도 제 코가 석 자인 상태다. 우리나라는 계엄 후 일차 위기는 넘겼지만 여전히 불안하다. 한국 엘리트의 상당수가 파쇼적 시각을 갖고 있다는 보도를 봤다. 문화로서의 민주주의는 바탕이 튼실하지 못하면 모래 위에 쌓은 성처럼 연약한 구..

길위의단상 09:13:27

노년에는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

친구가 단톡방에 글을 하나 올렸다. 일본 의사가 쓴 '80세의 벽'이라는 책을 요약한 내용이었다. 목숨이 다할 때까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좋아하는 음식을 즐기며, 자유롭게 독립적으로 살기를 원하는 노인들이 어떻게 80대의 벽을 넘느냐에 대한 문제를 다룬 책이다. 저자는 과도한 강박과 욕심이 스스로를 압박하고 무리한 절제 때문에 결과적으로 행복하지도 건강하지도 못한 삶을 만든다고 말한다. 대부분 건강에 대한 내용인데 경청할 만한 부분이 있었다. 현대인은 지나칠 정도로 병원과 약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매스컴에서 알려주는 건강 상식에 매달려 자신의 몸을 거기에 맞추려 한다. 사람의 신체는 표준화할 수 없는 각자의 특성이 있는데, 획일적인 건강 지침은 오히려 몸을 망가뜨릴 수도 있다. 80세의 벽..

참살이의꿈 2025.04.26

1408a(6)

세상을 진지하게 대하지 말 것 너는 네 심장의 리듬만 따를 것 꼭두각시 춤은 그들끼리 실컷 추라고 할 것 이것이 하찮은 세상에 저항하는 자세. (140801) 들꽃이 얼마나아름답게 피는지 봐 새들이 얼마나즐겁게 지저귀는지 들어봐 잘보라구! 그래서'봄'이잖아 (140802) 네가 이리 서럽게 울면 난 어떡하니 (140803) 열매를 맺으면고개를 숙인다 사람이라고다르지 않을지니 (140804) 세상 모든 사람이제 가슴을 열고상처를 드러낸다면 세상은한숨과 비탄에 빠질까 아니면동정과 위안으로 따스해질까 너와 나는가련한 포옹을 할 수 있을까 아프지 않은생명은 없다 (140805) 보는 눈이 없어야보인다 듣는 귀가 없어야듣는다 주인을 잃어야주인이 된다 가창오리 떼 날아오르는금강 하구에서..

포토앤포엠 2025.04.25

작별하지 않는다

이런 작품을 쓰는 작가는 얼마나 고통스러울까를 생각한다. 야만의 시대 속 인간의 아픔에 스며들지 않고서는 써질 수 없는 작품이다. 피해자의 눈물과 비명을 직면하며 슬픔을 이겨내고 어찌 이런 작품을 쓸 수 있었을까. 한강 작가의 는 제주 4.3사건의 비극을 고발한다. 5.18 광주항쟁을 다룬 와 맥을 같이 하는 소설이다. 역사의 수레바퀴에 치인 희생자들의 이야기다. 국가 폭력 앞에 인간의 생명과 삶은 얼마나 연약한지를 생각한다. 읽는 내내 마음이 너무 아팠다. 그래서 작가는 오죽했을까,라고 유추하는 것이다. 제주 4.3사건은 제주를 거점으로 한 남로당 무장대의 습격으로 시작하였지만 진압은 지나치게 잔혹했다. 그 과정에서 억울하게 희생당한 주민이 많았다. 아무 죄 없는 아녀자와 어린이도 상당했다. 마을 전체..

읽고본느낌 2025.04.25

아기자기한 라일락 향기

아파트 현관 앞에 라일락이 활짝 폈다. 드나들 때마다 강렬한 꽃향기에 취한다. 아줌마 한 분이 전화 통화를 하면서 라일락에 휴대폰을 갖다댄다. "오빠, 라일락 향기가 기가 막혀. 냄새를 맡아봐." 이 정도 바람이라면 폰으로 냄새를 전송하는 기술이 개발될 날도 멀지 않았으리라. 라일락, 하면 고등학생이던 시절이 떠오른다. 국어 시간에 처음 배운 시가 김용호 시인의 '오월의 유혹'이었다. 곡마단 트럼펫 소리에탑(塔)은 더 높아만 가고유유히젖빛 구름이 흐르는산봉우리분수인 양 쳐오르는 가슴을네게 맡기고, 사양(斜陽)에 서면풍겨오는 것아기자기한 라일락 향기계절이 부푸는 이 교차점에서청춘은 함초롬히 젖어나고넌 이브인가푸른 유혹이 깃들여감미롭게 핀황홀한 오월 이미 60년 가까이 흘렀지만 이 시를 읊던 국어선생님의..

꽃들의향기 2025.04.24

진달래 시첩 / 조명암

진달래 바람에 봄치마 휘날리더라저 고개 넘어간 파랑 마차소식을 싣고서 언제 오나그날이 그리워 오늘도 길을 걸어노래를 부르노니 노래를 불러앉아도 새가 울고 서도 새 울어맹서를 두고 간 봄날의 길은 멀다 갈 길도 멀건만 봄날도 길고 길더라돌 집어 풀밭에 던져보면이렇단 대답이 있을쏘냐그날이 그리워 오늘도 길을 걸어노래를 부르노니 노래를 불러산 넘어 산 있고 물 건너 벌판기약을 두고 간 봄날의 길은 멀다 범나비 바람에 댕기가 풀어지더라산허리 휘감은 아지랑이봄날은 소식도 잊었는가그날이 그리워 오늘도 길을 걸어노래를 부르노니 노래를 불러아가씨 가슴속에 붉은 정성과행복을 두고 간 마차의 길은 멀다 - 진달래 시첩 / 조명암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이 노래를 들었다. '진달래 시첩'은 1941년에 가수 이난영이 불렀는..

시읽는기쁨 2025.04.23

신록으로 물든 남한산성 한 바퀴

밤부터 설사가 많이 나와서 오늘 못 나가겠다고 친구한테서 연락이 왔다. 노년이 되니 이런 식의 약속 어긋남이 자주 있다. 수시로 몸에 탈이 나는 나이가 된 것이다. 외출하려고 준비중이었는데 그냥 집에 있기도 뭣해서 남한산성으로 행선지를 잡았다. 성곽을 따라 한 바퀴 돌기로 했다. 산야는 봄의 신록으로 물들고 있다. 이때의 숲 색깔은 꽃보다 더 아름답다. 특히 신록의 이른 시기에 나타나는 연두빛은 너무나 신비하다. 그윽한 생명의 색이다. 이제 막 옹알이를 하는 아기의 얼굴에 서린 미소 같은 것, 부드러움의 완전체 같은 것. 사진으로는 이 색깔이 전해주는 느낌을 도무지 표현할 수 없다. 성곽길을 걸을 때 곁을 스쳐가는 꽃들과 만나는 즐거움이 있었다. 여러 종류의 제비꽃이 반겼다. 개별꽃, 양지꽃, 붓..

사진속일상 2025.04.22

1407c(6)

아침 햇살을 받은초원의 강아지풀 천 개의 태양으로빛나고 있다 손에 잡힐 듯은하가 떠 있다 (140714) "우째 사람 그림자도 안 보이노?"할머니는 초점 잃은 시선으로밖을 응시하고 있었다 이제 주인 잃은의자만 남고 먼지쌓여가는 고가(古家)는적막하다 (140715) 산 넘고 강 건너 평탄한 길에 접어들었다 쉬울 줄 알았는데금방 지치고 싫증이 났다 쉬운 게쉬운 게 아니었다 나그네는 걸으면서 배운다 모든 길은하나라는 것을 길 위에 선 자는길을 원망하지 않는다고 (140716) 이쪽의 휴식은다른 쪽의 노동 이쪽의 웃음은다른 쪽의 눈물 이쪽의 평화는다른 쪽의 분쟁 물어 보아라 이 안락이어디서 오는지를 (140717) 공부염불수행좌선 이 모든 종착지는하나 바로이 얼굴 (140718) 자신의 몸을불..

포토앤포엠 2025.04.21

사기[41]

문제가 패릉에서 올라갔다가 서쪽 가파른 고갯길을 달려 내려가려고 하였다. 그때 원앙은 타고 있던 말을 황제의 수레 옆에 대고는 말고삐를 잡아당겼다. 황제가 말했다."장군은 두렵소?"원앙이 말했다."신이 듣건대 1000금을 가진 부잣집 아들은 마루 끝에 앉지 않고, 100금을 가진 아들은 난간에 기대어 서지 않으며, 성스러운 군주는 위험을 무릅쓰면서까지 요행을 바라지 않는다고 합니다. 지금 폐하께서는 여섯 마리의 말이 끄는 마차를 달려 가파른 고갯길을 내려가시려고 하는데, 만일 말이 놀라 수레가 부숴지기라도 한다면 폐하께서는 자신을 가볍게 여긴 것이라 치더라도 종묘와 태후께 무슨 낯으로 대하시겠습니까?"그래서 황제는 생각을 거두었다. - 사기(史記) 41, 원앙조조열전(袁盎鼂조列傳) 원앙과 조조는 한나라..

삶의나침반 2025.04.20

다읽(24) - 수인

다시 읽은 황석영 작가의 자전 기록이다. 유소년 시절부터 책이 나온 2010년대 중반까지 모자이크식으로 작가의 일생이 자세히 서술되어 있다. 역사의 한가운데를 파란만장하게 살아간 한 인간의 진솔한 기록이다. 1권(경계를 넘다)과 2권(불꽃 속으로) 두 권으로 되어 있다. 제목인 '수인(囚人)'은 감옥에 갇힌 죄인을 뜻하지만 - 작가는 민주와 통일 운동으로 5년 넘는 옥고를 치렀다 - 분단된 한반도에서 이념에 갇혀 살아가는 우리들을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다. 작가는 에필로그는 이렇게 말한다."시간의 감옥, 언어의 감옥, 냉전의 박물관과도 같은 분단된 한반도라는 감옥에서 작가로서 살아온 내가 갈망했던 자유한 얼마나 위태로운 것이었던가." 작가의 일생을 보면 한 인간이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았..

읽고본느낌 2025.04.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