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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시안의 저녁노을

영종도 마시안 해변에서 저녁노을과 함께 했다. 요사이 해 지는 시간은 저녁 7시 부근이다.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다가, 해변을 산책하다가, 바위에 앉아 바다를 마주하며 멍 때리다가, 해 떨어지는 시간을 기다렸다. 평일 저녁 바닷가는 조용했다. 느긋하고 한가로운 시간이 좋았다. 들끓던 마음도 가라앉았다. 저어새 두 마리가 여유 있게 오가며 먹이를 찾는 바닷가였다. 낮에는 인천공항으로 착륙하는 비행기를 구경했다. 온갖 설레임과 기대가 저 비행기 안에 담겨 있을 걸 생각하면 내 가슴도 덩달아 뛴다. '르 스페이스'에서 영상으로 우주 여행도 했다. 현란한 색채 속에서 눈호강을 제대로 했다. 피신하듯 찾아갔던 영종도 나들이였다.

사진속일상 09:18:49

그만 내려놓으시오 / 공광규

인생 상담을 하느라 스님과 마주 앉았는데보이차를 따라놓고는잔을 들고 있어 보라고 한다 작은 찻잔도 오래 들고 있으니 무겁다 그만 내려놓으시오찻잔을 내려놓자금세 팔이 시원해졌다 절간을 나와화분에 담겨 시든 꽃을 매달고 있는 화초와하수가 고여 썩은 개천을 지나오는데 꽃은 화려함을 땅에 내려놔야 열매를 얻고물을 도랑을 버려야 강과 바다에 이른다는 말씀이내 뒤를 따라온다 - 그만 내려놓으시오 / 공광규 찻잔 내려놓듯 할 수 있다면 근심 걱정이 아닐 것이다. 시름이 아닐 것이다. 스님의 말씀이 이해는 간다. 결국 마음의 문제가 아니겠는가. 나를 짓누르는 만 근의 무게도 알고 보면 찻잔 정도에 불과한 것인지 모른다. 몇 그램짜리를 몇 톤으로 만든 게 과연 누구인가. 그걸 아는 게 깨달음인지도. 시에 나오는 '화분..

시읽는기쁨 2025.09.05

퇴원 후 첫 진료

어머니를 병원에 모시고 가서 진료를 받았다. 퇴원 후 3주 만이었다. 다행히 뼈는 잘 붙고 있고 경과가 좋았다. 다만 어머니가 식사를 잘 못하면서 무기력증을 보여 걱정이다. 집으로 퇴원할 때만 해도 활기에 차서 금방 일어설 것 같았는데, 한 번 몸살을 앓고 난 뒤 상황이 나빠졌다. 만사를 귀찮아하신다. 몸보다 정신에서 문제다. 노인은 몸이나 정신 상태가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 희망을 주다가도 금방 퇴행을 한다. 사람의 궁리로는 이해하기도 예상하기도 힘들다. 다행히 여동생이 옆에서 정성으로 구완을 하고 있으니 그나마 안심이 된다. 이번에 병원 진료를 받기 위해서 1시간 30분을 대기했다. 그런데 의사와 면담한 시간은 3분 쯤 되었을까. 문을 닫고 나오며 너무 허망했다. 여기는 예약 시간도 없이 그냥 접..

사진속일상 2025.09.04

1410a(7)

모든 사물에는 나름의 아름다움이 있다마음을 주지 않으니 보지 못할 뿐이다유심히 바라보면 모두가 다 사랑스럽다 너는 왜 여기 누워 있니,길에 떨어진 나뭇잎을 쪼그려 앉아 오래 바라봤다 (141001) 새 발자국은날아가는 새를 닮았네 내가 남기는 자취는 어떨까 사람값은 하고나사는 걸까 마음 속 거울을들여다보는 눈 내린아침 (141002) 네가 나를 비추고내가 너를 비춘다 네 속에 내가 있고내 안에 너가 있다 중중무진!나마스떼! (141003) 그대 오시는가 창문을 열어보니 뜰에 빗소리 (141004) 활활꽃불이 탄다 내 속에도저 불 지르고 싶어라 (141005) 해 질 무렵이 가로등 아래서 기다리면 마법의 나라로 가는꼬마 기차가 올 것만 같아 (141006) 스..

포토앤포엠 2025.09.02

사기[51]

대장군이 말했다."나 위청은 다행히 폐하와 인척인 관계로 대장군에 임용되어 위엄이 없을까 하고 근심하지는 않소. 주패는 나에게 위엄을 분명히 하라고 했으나 내 뜻과는 사뭇 다르오. 또 내 직책상 비장을 밸 수 있다고는 하나 폐하의 총애를 받는다고 하여 국경 밖에서 내 마음대로 죽일 수는 없소. 천자께 이 일을 상세히 보고하여 천자께서 스스로 재가하시도록 하겠소. 이렇게 함으로써 남의 신하 된 자가 감히 권력을 함부로 휘두르지 않음을 보이는 것도 좋지 않겠소?"군관이 모두 말했다."좋습니다." - 사기(史記) 51, 위장군표기열전(衛將軍驃驥列傳) 한무제 때 대장군을 지내며 흉노를 토벌한 위청(衛靑)과 곽거병(霍去病) 장군에 대한 열전이다. 둘은 미천한 출신이었지만 흉노를 물리치는 큰 공을 세우면서 무제의..

삶의나침반 2025.09.01

정처 없는 이 발길

음치지만 나도 모르게 노래를 흥얼거릴 때가 있다. 우울할 때면 '오늘도 걷는다마는 정처 없는 이 발길'이라는 백년설의 '나그네 설움'이 무심코 튀어나온다. 음정 박자가 자유롭게 놀아도 쓸쓸한 가사에 공감해서다. 어제도 그랬다. 50년 전 옛날이 떠오른다. 대학을 졸업하고 첫 직장을 다닐 때의 출근길에서도 이 노래를 자주 벗삼았다. 아침에 전철 대방역에서 내려서 가는 길은 공장 지대를 끼고 있었는데 왠지 모르게 스산하고 슬펐다. 평생을 공무원으로 갇혀 살 것 같다는 미래에 대한 절망 비슷한 심정도 있었으리라. 20대 때 흥얼거리던 노래가 70대가 되어서도 변함없다. 인생이 나그넷길이란 게 나이에 따라 달라지는 게 아니잖는가. 가사 중에서도 '정처 없는'에는 북받치는 무엇인가가 있다. 정처(定處)가 없다는 ..

길위의단상 2025.08.31

일인칭 가난

읽으면서 너무 안타까워 책장을 넘기기 힘들었다. 150페이지 정도 되는 얇은 책이지만 드문드문 읽다 보니 여러 날이 걸렸다. 지은이가 겪은 시련과 가난에 마음이 아팠다. 풍요 속에 가려진 우리 시대 가난의 아픔이 절절이 다가왔다. 을 쓴 안온 작가는 태어나서부터 20년을 기초생활수급자로 살았다. 가난에 더해 예민한 청소년 시기를 알코올중독자인 아버지의 폭력까지 감내해야 했다. 밖으로는 숨겨야 하고 움츠러들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가난은 대개 가족의 애사를 동반한다. 가난이 원인인지 가족이 원인인지 모르게 둘은 얽혀 있다. 지은이는 책의 한 부분에서 그래도 가족을 변호하며 이렇게 말한다. 개인이나 가족보다 사회적 책임을 상기하려는 것 같다. "나는 가난을 말할 때 가족을 맨 뒤에 배치한다. 가족이 그 모양..

읽고본느낌 2025.08.30

다읽(28) - 유년기의 끝

40여 년 전에 읽었지만 여전히 기억에 남아 있는 SF 소설이다. 지구가 종말을 맞이하는 소설의 끝 장면을 두근거리며 읽었던 기억이 선명하다. 아서 클라크의 작품인데 당시 번역된 책 제목은 였다. 응당 절판되었고 지금은 원 제목인 를 직역한 으로 나와 있다. 21세기 초반의 어느 날 갑자가 지구로 외계생명체가 찾아왔다. 여러 대도시 상공에 거대한 우주선이 출현한 것이다. '오버로드'라고 불리는 그들은 평화적인 방법으로 지구인과 소통하며 지구를 변화시켜 나간다. 그들의 뛰어난 능력은 불가능한 것이 없었다. 수십 년이 지나자 지구는 겉으로 보면 유토피아로 변했다. 전쟁이나 기아, 질병이 없어지고 진정한 평화가 찾아왔다. 대신에 예술, 종교, 과학이 사라지는 부작용도 감내해야 했다. 분쟁이나 갈등이 사라진 대..

읽고본느낌 2025.08.29

1409e(8)

어렸을 때 마을 앞 철길은우리들 놀이터였지 칙칙폭폭 증기기관차가굼뱅이처럼 기어가던 시절이었어 달리는 기차 옆을 닿을 듯 따라 뛰어도무섭지 않았어 열차 안 승객과 눈을 맞추고손을 흔들면 사탕을 던져주기도 했지 오랜 세월이 걸리지 않았어 총알처럼 달리는 고속열차가공기를 사납게 가르게 된 것이 이제 더 이상 밖을 내다보는승객은 없어 누구도 지나가는 기차에관심을 두지 않아 가까이 가지도 못하고아무도 손을 흔들지 않지 안과 밖을 가르고너와 나를 단절시키며기차는 바람 소리만 내며 달려가지 그렇게 쏜살같이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140928) 너희들은 좋겠다 씽씽 신나게 달려갈 곳 많고 반기며 기다리는 사람있을 거고 희희낙락거릴일 많을 테니 (140929) 파란 하늘이 고왔던 날 저 길 끝에서짜잔~..

포토앤포엠 2025.08.28

8월 하순의 능소화

햇볕은 따가우나 바람은 시원하다. 여름이 물러가고 있다는 신호다. 동네를 산책하다가 골목에서 여전히 환하게 피어 있는 능소화를 봤다. 6월 하순에 꽃을 피우기 시작한 것 같은데 두 달 동안 피고지기를 이어가고 있다. 새 꽃봉오리가 맺힌 걸 보니 9월까지는 꽃을 볼 수 있을 것 같다. 여름꽃이 대체로 강렬한 색감을 뽐내는데 능소화는 은은한 주황색이어서 정겹다. 목백일홍이라 부르는 배롱나무꽃은 졌지만 능소화는 지칠 줄을 모른다. 백일홍 명칭은 능소화에 붙여 마땅해 보인다. 능소화는 은근하면서 소박한 아름다움을 지닌 꽃이다. 이런 짧은 시가 있다. '하염없이'를 떠올리며 다시 능소화를 그윽히 바라본다. 누가 그렇게하염없이 어여뻐도 된답니까 - 능소화 / 서덕준

꽃들의향기 2025.08.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