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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32]

한나라 5년 정월에 제나라 왕 한신을 옮겨서 초나라 왕으로 삼고 하비에 도읍을 정하게 했다. 한신은 초나라에 이르자 일찍이 밥을 먹여 주었던 무명 빨래를 하던 아낙을 불러 1000금을 내렸다. 또 하향의 남창 정장에게 100전을 내리면서 말했다."그대는 소인이다. 남에게 은덕을 베풀다가 중도에서 그만뒀기 때문이다."또 자기를 욕보인 젊은이들 가운데 자기에게 가랑이 밑으로 기어나가게 하여 모욕을 주었던 자를 불러 초나라의 중위로 삼고, 여러 장군과 재상에게 알렸다."이 사람은 장사일지니, 나에게 모욕을 주었을 때에 내 어찌 이 사람을 죽일 수 없었겠는가? 그를 죽인다 하더라도 이름이 드러날 것이 없기 때문에 참고 오늘의 공을 이룬 것이다." - 사기(史記) 32, 회음후열전(淮陰候列傳)  한신(韓信)은 젊..

삶의나침반 10:41:31

2024년 기상사진과 오로라

영국 왕립기상학회가 주관하는 기상사진 공모전이 매년 열린다. 2024년 올해는 고공에서 발생하는 번개인 '스프라이트'를 찍은 사진이 대상을 받았다. 스프라이트(sprite)는 대기권의 중간권에 해당하는 50~90km 높이에서 생긴다. 보톻의 번개는 10km 밑에서 발생한다. 스프라이트는 양전하가 일으키는 번개로, 양전하가 질소 원자와 충돌하면서 붉은색을 띈다. 지속 시간도 매우 짧다. 스프라이트는 보통 번개가 200번 칠 때 한 번 발생할 정도로 드물어서 관찰하기가 어렵다. 이 사진을 찍은 사진작가 왕신은 상하이 하늘에 번개가 몰아치자 충밍으로 달려가 카메라를 설치하고 수 시간을 기다린 끝에 이 스프라이트를 찍을 수 있었다고 한다.  스마트폰 부문 3위를 차지한 원형 무지개다. 여객기가 미국 시애틀 공항..

길위의단상 2024.12.21

경안천 버들(241219)

1년 만에 대면하는 경안버들이다. 한결 더 의젓해진 것 같다. 지난 폭설에 부러진 가지가 보이지만 전체적으로는 멀쩡하다. 수평으로 누운 가지들이 엄청난 눈의 무게를 견뎌냈다는 게 신기하다. 경안천은 살얼음이 살짝 얼어 있다. 나무 너머에는 휴식을 취하고 있는 고니 떼가 자그마하게 보인다. 강이 꽁꽁 얼면 올해는 나무 곁으로 가 볼 기회가 주어질지 모르겠다. 한 번 정도는 된통 추웠으면 한다.

천년의나무 2024.12.20

고향에 다녀오다(12/16~19)

고향에 내려가서 어머니를 뵙고 왔다. 겨울로 들어선 계절이 고향집의 안팎 풍경을 스산하게 했다. 집에 있었던 3박4일 동안 두문불출하고 방 안에서 어머니하고만 지냈다. 고향에 내려가면 게으른 몸이 더 게을러져 나무늘보가 된다.   감사하게도 어머니는 무탈하게 잘 지내시는 편이다. 지남력도 떨어지지 않았다. 다만 외로움을 많이 타신다. 90대 중반이니 친구들이 대부분 떠나고 이제는 말상대가 거의 없다. 장수한다면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할 몫인 것 같다.   어머니의 조각그림 맞추기 속도는 나보다 낫다. 시력, 청력도 젊을 때와 같다. 허리가 아픈 걸 빼면 신체에 다른 이상도 없다. 그럼에도 고령의 연세로 혼자 지내시기 때문에 자식 입장에서는 늘 걱정이며 불안 요소다. 언젠가 지인에게 이런 심정을 하소연..

사진속일상 2024.12.20

저들에겐 총이 우리에겐 빛이 / 박노해

이 한겨울에 우리 다시 만나니슬프기도 하고 반갑기도 하여눈물과 미소로 너를 바라본다 용기 내줘서 고마워살아있는 네가 눈부셔우린 꼭 이겨낼 거야 저들에겐 총이우리에겐 빛이 우리, 서로가 서로를 지키고우리, 서로가 나라를 지키고될 때까지 우리 함께 할 거야 역사의 악인은 얼굴을 바꾸며교과서 밖으로 걸어 나오지만우리는 지금 살아있는 빛으로승리의 역사를 다시 쓰고 있으니 세계가 우리를 지켜보고 있어아이들이 우리를 바라보고 있어선령들이 우리를 가호하고 있어 저들에겐 탐욕이 우리에겐 영혼이저들에겐 총칼이 우리에겐 사랑이저들에겐 파멸이 우리에겐 희망이 우리 인생의 '별의 시간'에다치지 말고 지치지 말고빛으로 모이자, 될 때까지 모이자 - 저들에겐 총이 우리에겐 빛이 / 박노해  윤석열이 지난 12월 3일에 '아닌 밤..

시읽는기쁨 2024.12.16

유유히

전국 대학교수들이 올해의 사자성어로 '도량발호(跳梁跋扈)'를 선정했다. '제멋대로 권력을 부리며 함부로 날뛴다'는 뜻이다. 12월 3일 이전에 고른 것이지만 묘하게 윤석열의 비상계엄 선포와 맞아떨어졌다. 어제는 국회에서 탄핵안이 가결되었다. 국민이 준 권력이라는 사실을 망각한 채 '광란의 칼춤'을 추다가 나락으로 떨어진 것이다. 누구의 말대로 그는 오로지 '자신을 탄핵시킬 능력'만 갖고 있었는지 모른다. 이번 탄핵 과정에서 국회 앞에 모여 민주주의 수호를 외치는 시민들을 보고 감명을 받았다. 특히 이번에는 8년 전의 촛불 시위와 달리 10대와 20대의 여성들이 많이 나왔다. 정치에 무관심한 MZ세대라고 폄하했었는데 내 잘못된 선입견이었다. 다양한 색깔로 빛나는 응원봉을 흔들며 시위를 축제 마냥 즐기는 그..

참살이의꿈 2024.12.15

소년이 온다

지난 10일에 스톡홀름에서 한강 작가의 노벨 문학상 시상식이 있었다. 국내 정세가 급박하여 관심을 덜 받고 지나갔지만 우리나라 작가가 노벨 문학상을 받는 장면은 감격이었다. 시상식 전후로 수상 소감과 강연도 있었다. 최근에 작가의 를 읽었다. 5.18광주민주화운동의 참상이 작가의 부드럽고 감성적인 문체로 애절하게 그려졌다. 그래서 더 슬펐는지 모른다. 잔인한 폭력과 고통, 동시에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읽는 내내 떠나지 않았다. 국가 폭력은 쉬지 않고 반복되어 나타난다. 책에 나오는 대로 폭력에 노출된 인간은 방사능 피폭처럼 오랜 기간 인간성을 파괴한다. 광주는 수없이 되태어나고 인간을 살해한다. 작금에 윤석열에 의해 저질러진 비상계엄도 그런 연장선상에서 이해해야 하지 않을까. 에 나오는 인상적인..

읽고본느낌 2024.12.13

토지(2)

올 겨울에는 박경리 작가의 를 읽으려 한다. 1969년에 집필을 시작하여 26년 만인 1994년에 완성한 5부작, 20권으로 된 대하소설이다. 처음 나왔을 때 1부까지 읽고 나머지는 뒤로 미루어뒀는데 이제야 완결 지으려고 한다. 지난달 통영에 있는 박경리기념관에 갔을 때 한 결심이다. 전집을 사서 읽을까, 도서관에서 빌려 볼까, 고민했는데 후자를 택했다. 도서관에는 다산책방에서 나온 20권 전집이 있다. 그런데 서가에 1권만 빈 채로 있어서 2권부터 시작한다. 오래 전이긴 하지만 한 번 읽은 적이 있으니 큰 지장은 없을 듯하다. 그렇지만 눈에 익은 등장인물은 최치수, 서희, 길상 정도다. 40년도 더 되었으니 그럴 만도 하다. 2권에서는 최치수의 죽음과 함께 최참판 댁의 몰락이 시작된다. 1890년대 후..

읽고본느낌 2024.12.12

사기[31]

영포의 총애를 받는 희첩이 병들어 의사에게 치료를 받게 되었다. 의사의 집은 중대부 비혁의 집과 문을 마주 보고 있었다. 희첩은 자주 의사의 집에 갔다. 비혁은 자신이 한때 영포의 시중이었으므로 많은 선물을 바치고 그녀를 따라가 의사의 집에서 술을 마시기도 했다. 희첩이 왕을 모시면서 무슨 말 끝에 비혁의 장점을 칭찬하니, 왕이 화가 나서 말했다."너는 그를 어디서 알게 되었느냐?"희첩이 사정을 자세히 말하자 왕은 그와 정을 통하지 않았나 의심하였다. 비혁은 겁이 나서 병을 핑계로 나오지 않았다. 왕이 더욱더 화가 나서 비혁을 체포하려 하니, 그는 영포가 반란을 꾀하고 있다는 사실을 밀고하려고 역마를 타고 장안으로 떠났다. 영포는 사람을 보내 뒤쫓게 했으나 미치지 못했다. 비혁은 장안에 이르러 글을 올려..

삶의나침반 2024.12.11

5연속 우승과 30연승

그저께 밤에 벌어진 여자 프로당구[LPBA] 결승에서 김가영 선수가 김보미를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5연속 우승에 개인 투어 30연승이라는 대기록이다.  운칠기삼이라는 말을 흔히 하는데 당구는 유독 운이 많이 작용하는 게임이다. 그날의 컨디션이나 심리 상태도 중요하다. 실력보다 외적 요인이 크게 영향을 미친다는 얘기다. 나도 여러 운동을 즐겼지만 당구만큼 미묘하고 종잡을 수 없는 종목도 없다. 언제든 이변이 생길 수 있다. 이런 조건에서 5연속 우승과 30연승을 한다는 것은 탁월한 실력과 함께 플러스알파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다른 종목의 30연승과는 다르다. 당구를 즐기기 때문에 2019년에 LPBA가 출범했을 때부터 쭉 경기를 봐 왔다. 김가영 선수는 포켓볼에서 쓰리쿠션으로 옮긴 뒤 초기에는 적응이 안..

길위의단상 2024.1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