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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처럼 / 오세영

나무가 나무끼리 어울려 살듯우리도 그렇게살 일이다.가지와 가지가 손목을 잡고긴 추위를 견디어 내듯 나무가 맑은 하늘을 우러러 살듯우리도 그렇게 살 일이다.잎과 잎들이 가슴을 열고고운 햇살을 받아 안듯 나무가 비바람 속에서 크듯우리도 그렇게클 일이다.대지에 깊숙이 내린 뿌리로사나운 태풍 앞에 당당히 서듯 나무가 스스로 철을 분별할 줄을 알듯우리도 그렇게살 일이다.꽃과 잎이 피고 질 때를그 스스로 물러설 때를 알듯 - 나무처럼 / 오세영  기온이 뚝 떨어졌다. 눈을 뜨니 냉랭한 기운이 얼굴에 닿아 이불을 끌어올렸다. 가을을 제대로 즐기기 전에 겨울이 불시에 쳐들어 온 것 같다. 따끈한 믹스커피 한 잔을 감싸 쥐고 너와 내가 나눌 수 있는 온기에 대해 생각했다. 인간의 삶이란 게 너무 소란하고 번잡하다. 벌판..

시읽는기쁨 2024.11.06

청춘의 문장들, 오롯이 내 인생이잖아요

최근에 읽은 두 권의 책이다. 김연수 작가의 은 2004년에 나온 후 49쇄까지 찍은 베스트셀러다. 2년 전에 내용을 보강한 개정판이 나왔다. "청춘은 들고양이처럼 재빨리 지나가고 그 그림자는 오래도록 영혼에 그늘을 드리운다"라는 책 서두에 나오는 말처럼 청춘의 고뇌를 감명받은 명문장들과 연결하여 그려냈다. 작가가 30대에 들어서서 과거의 자신을 돌아보며 쓴 '삼십자술(三十自述)'이라 할 수 있다. 글에는 김 작가 특유의 감성이 오롯이 드러나 있다. 문학을 지망하던 20대의 작가가 무엇을 고민했고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를 탐구하던 젊은 시절의 모습은 그 나잇대의 나를 떠올리게 했다. 작가만큼 치열하지는 않았지만 방황하던 내 20대 역시 포근히 감싸안아주고 싶도록 따스하게 추억했다. 초판 서문에 나오는 ..

읽고본느낌 2024.11.05

동네 추경(秋景)

아직 완숙은 아니지만 우리 동네에도 가을이 무르익어가고 있다. 인간의 마을에도 숲에도 가을 향기가 가득하다. 화려하기로 치면 이맘때의 가을과 필적할 계절은 없다. 가을이 주는 선물을 감사히 받으며 동네 한 바퀴를 돌았다. 한낮의 추광(秋光)이 따스했다. 고운 단풍 따라 내 마음도 곱게 물드는 것 같았다.  뒷산 숲에는 가을이 먼저 와 있었다. 오솔길에는 떨어진 낙엽이 수북했다. 촌촌가인인생(村村家人人生)이던가, 우리의 삶도 나뭇잎에 다르지 않을 것이다. 새 움이 돋아 여름, 가을을 지나 흙으로 돌아간다. 대자연 순환의 흐름 속 시절인연이 나를 이 순간 이 자리에 있게 한다. 그저 그렇고 그런 것이다.

사진속일상 2024.11.04

가수리 느티나무

정선초등학교 가수분교 운동장에 있는 느티나무다. 동강과 이웃하고 있어 풍광이 뛰어나다. 어느 단체에서 이 느티나무가 있는 풍경을 동강 12경 하나로 정했다. 옛날 강을 건너는 다리가 없던 때에는 오가는 주민들이 이 나무 아래서 다리쉼을 했다고 한다. 자연 풍광만 아니라 가수리(佳水里)라는 마을 이름도 아름답다. 가수분교는 아이들이 없어 폐교가 될 위기에 처했다는 소식을 들은 적이 있다. 예전 같으면 아이들로 북적일 시간이었을 테지만 교사와 운동장은 적막했다. 느티나무를 보러 찾아오는 관광객들의 웃음소리만 들린다. 이 느티나무는 수령이 500여 년에 높이가 40m, 줄기 둘레는 7m에 이른다. 가을이 되어 황금빛으로 단장한 느티나무가 더욱 멋져 보였다.

천년의나무 2024.11.03

방절리 느티나무

영월읍 방절리 수변공원에 있는 느티나무다. 공원 내에서 우뚝 솟은 언덕 위에 있는데 저류지 공사를 하면서 주변을 파내어 이런 언덕이 생겼다고 한다. 느티나무를 지키기 위한 행동이 이 공원의 가치를 더욱 높였다고 할 수 있다. 나무 둘레에 붉은색의 식물을 심어 나무에 더욱 시선이 가게 했다. 멀리서 봤을 때는 꽃인가 싶었는데 가까이 가서 보니 작은 나무였다. 검색한 결과 매자나무인 듯하다. 이 느티나무는 수령이 500년 정도 되고 높이는 18m, 줄기 둘레는 6.3m다. 차를 몰고 가다가 눈에 띄어서 잠시 정차하고 찾아가 봤다. 여행을 다니다 보면 이렇듯 우연히 큰 나무를 만나는 즐거움이 있다.

천년의나무 2024.11.03

동강 코스모스

동강시스타 앞 강변에 코스모스가 활짝 폈다. 아침에 일어나 숙소 주변을 산책하다가 만난 코스모스 꽃밭이다. 전날 정선의 단풍이 아쉬웠는데 뜻하지 않게 이곳 코스모스에서 가을의 정취를 흠뻑 느낄 수 있었다.  여기처럼 키 작은 코스모스를 '왜성코스모스'라 부르는가 보다. 키가 작으니 훨씬 더 귀여워 보인다. 어릴 적 추억 속 코스모스는 몸이 파묻힐 정도로 컸다. 이 코스모스는 높이가 40cm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코스모스 산책로를 걸으며 소년 시절 신작로를 따라 피어 있던 코스모스를 떠올렸다. 코스모스 꽃잎을 따서 이런저런 장난을 치다 보면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너무 짧았다. 그 시절을 그리워하게 만드는 얄미운 꽃, 코스모스다.

꽃들의향기 2024.11.02

보덕사 느티나무

영월 장릉 옆에 있는 보덕사는 조선 영조 때 단종의 보위 사찰로 지정되었다고 한다. 보덕사는 경내에 수령이 300년이 넘은 느티나무들이 여러 그루 있는 유서 깊은 사찰이다. 6.25 때 화재로 전소되고 건물은 새로 지었지만 나무들에는 고난의 흔적들이 남아 있다. 그래도 이만큼이나마 생명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 대단하다. 장릉이 품은 비애와 더불어 아픔의 역사를 보여주는 느티나무들이다.

천년의나무 2024.11.01

정선, 영월 단풍 여행

아내와 함께 정선과 영월로 1박2일의 단풍 여행을 다녀왔다. 단풍만으로는 결과가 시원찮았다. 높은 기온과 잦은 비로 시기가 늦어져서 두 지역 단풍은 아직 절정이 되지 못했다. 된다 한들 색감이 예년처럼 곱지 않을 것 같다. 제일 먼저 정선의 병방치 스카이워크 전망대에 올랐다. 눈에 그렸던 울긋불긋 산하의 모습이 아니었다.  오래전 아내의 추억이 어린 정선성당에 들렀다.  점심은 정선읍내에 있는 군언송어횟집에서 송어회와 매운탕으로 했다. 반찬으로 나온 번데기에 제일 먼저 젓가락이 갔다.  오후에는 동강을 따라가는 드라이브였다. 할미꽃마을에 정차하여 마을 뒤편의 조용한 산길을 걸었다.   가수분교와 미리내폭포(와인잔폭포)를 지나고,  문치재 정상에서 사행의 도로를 보고, 후진하다가 가드레일 모서리와 격한 키..

사진속일상 2024.11.01

단촌리 느티나무(2024/10)

단촌리 느티나무도 가을물이 들기 시작했다. 나무 끝 부분부터 갈색으로 변해가고 있다. 바닥에는 떨어진 낙엽이 고운 주단처럼 깔려 있다.  나무를 중심으로 마을길을 따라 한 바퀴 돌았다. 보는 방향에 따라 나무는 다른 모습을 띤다. 어떤 때는 근엄하고 어떤 때는 다정하다. 노거수에 다가갈 때마다 이번에는 나무가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귀를 기울인다. 들리지 않는 소리를 들으려 한다. 나무가 무슨 말을 하겠는가,라고 반문해도 할 말은 없다. 단지 내 마음의 반영일 수도 있다. 그렇더라도 나무 거울에 나를 비춰보는 의미는 있지 않겠는가. 어떤 말씀을 하시든 끝은 늘 "고맙습니다"이다. 그리고 이렇게 당신을 만날 수 있어 감사합니다.

천년의나무 2024.10.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