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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산. 바. 라. 기.

동네에 무궁화 묘목장이 있다. 다양한 품종을 기르고 있는데 이름을 일일이 기억하기가 어려울 정도다. 모양을 조금만 변형시켜도 새로운 이름을 붙이는 것 같다. 아무리 그래도 무궁화의 기본 모습이 제일 친숙하고 정감이 간다. 이 묘목장의 무궁화는 오륙 년은 되었을 거다. 크기도 성인 키를 넘어섰다. 다 자랐지만 옮겨진 나무는 없이 밀집된 채 그냥 크고 있다. 무궁화 묘목 수요가 별로 없는 것 같다. 나라꽃이지만 무궁화의 인기는 별로다. 공공장소를 제외하고 가정집에서 무궁화를 가꾸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름처럼 오랫동안 꽃을 보는 장점이 있지만 깔끔하지 못하다는 단점이 꺼리는 원인이 아닌가 싶다. 무궁화는 한자로 목근(木槿)이라 쓰는데, 신라시대 때 우리나라를 근화향(槿花鄕)으로 지칭한 걸로 보아 나라를 대표..
호주의 한 연구소가 발표한 '세계평화지수 2025'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가장 평화로운 나라 1위로 다시 아이슬란드가 선정되었다. 18년 연속으로 뽑혔으니 아이슬란드는 압도적인 평화 국가인 셈이다. 이 연구소는 사회 안전, 안보 수준, 국내외 갈등, 군사화 정도 등 23개 항목으로 평가하는데 대상은 163개국이었다. 우리나라는 41위, 미국 128위, 북한 149위, 러시아가 꼴찌인 163위였다. 보고서는 전체적으로 세계의 평화도가 악화되었다고 지적했다. 지금도 여러 곳에서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지구촌 상황이 심각하다. 세계가 다시 분열과 갈등의 시대로 접어드는 게 아닌가 걱정이다. 기후 위기, 군사대국의 패권 경쟁, 경제 불평등 등이 지구 평화를 위협하고 있다. 트럼프의 미국은 최근에 국방부를 ..
'엑스터시(ecstasy)'란 감정이 고조되어 자기 자신을 잊고 황홀경에 빠지는 현상이다. 종교적으로는 내가 내 밖에 서는 경험을 말한다. 신과의 합일이나 영혼의 초월적 기능으로 해석되는 엑스터시는 종교의 핵심 체험이며 메시지라 할 수 있다. 는 엑스터시를 갈망하는 종교의 여정과 종교 이후의 종교가 어떠해야 할지를 설명한다. 서울대 종교학과 성해영 교수가 썼다. 엑스터시는 각 종교의 구체적이며 개별적인 체험이지만 나를 초월하고 나 밖에 서서 본다는 의미에서 종교를 연결하고 통합하는 역할도 한다. 심지어는 제도 종교를 통하지 않고도 엑스터시는 가능하다. 이런 사실로 미래의 종교 모습을 그려볼 수도 있다. 현대는 기존 종교의 권위가 상실된 탈종교의 시대가 되었다. '무종교의 종교' '종교를 넘어선 종교' '..

영종도 마시안 해변에서 저녁노을과 함께 했다. 요사이 해 지는 시간은 저녁 7시 부근이다.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다가, 해변을 산책하다가, 바위에 앉아 바다를 마주하며 멍 때리다가, 해 떨어지는 시간을 기다렸다. 평일 저녁 바닷가는 조용했다. 느긋하고 한가로운 시간이 좋았다. 들끓던 마음도 가라앉았다. 저어새 두 마리가 여유 있게 오가며 먹이를 찾는 바닷가였다. 낮에는 인천공항으로 착륙하는 비행기를 구경했다. 온갖 설레임과 기대가 저 비행기 안에 담겨 있을 걸 생각하면 내 가슴도 덩달아 뛴다. '르 스페이스'에서 영상으로 우주 여행도 했다. 현란한 색채 속에서 눈호강을 제대로 했다. 피신하듯 찾아갔던 영종도 나들이였다.
인생 상담을 하느라 스님과 마주 앉았는데보이차를 따라놓고는잔을 들고 있어 보라고 한다 작은 찻잔도 오래 들고 있으니 무겁다 그만 내려놓으시오찻잔을 내려놓자금세 팔이 시원해졌다 절간을 나와화분에 담겨 시든 꽃을 매달고 있는 화초와하수가 고여 썩은 개천을 지나오는데 꽃은 화려함을 땅에 내려놔야 열매를 얻고물을 도랑을 버려야 강과 바다에 이른다는 말씀이내 뒤를 따라온다 - 그만 내려놓으시오 / 공광규 찻잔 내려놓듯 할 수 있다면 근심 걱정이 아닐 것이다. 시름이 아닐 것이다. 스님의 말씀이 이해는 간다. 결국 마음의 문제가 아니겠는가. 나를 짓누르는 만 근의 무게도 알고 보면 찻잔 정도에 불과한 것인지 모른다. 몇 그램짜리를 몇 톤으로 만든 게 과연 누구인가. 그걸 아는 게 깨달음인지도. 시에 나오는 '화분..

어머니를 병원에 모시고 가서 진료를 받았다. 퇴원 후 3주 만이었다. 다행히 뼈는 잘 붙고 있고 경과가 좋았다. 다만 어머니가 식사를 잘 못하면서 무기력증을 보여 걱정이다. 집으로 퇴원할 때만 해도 활기에 차서 금방 일어설 것 같았는데, 한 번 몸살을 앓고 난 뒤 상황이 나빠졌다. 만사를 귀찮아하신다. 몸보다 정신에서 문제다. 노인은 몸이나 정신 상태가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 희망을 주다가도 금방 퇴행을 한다. 사람의 궁리로는 이해하기도 예상하기도 힘들다. 다행히 여동생이 옆에서 정성으로 구완을 하고 있으니 그나마 안심이 된다. 이번에 병원 진료를 받기 위해서 1시간 30분을 대기했다. 그런데 의사와 면담한 시간은 3분 쯤 되었을까. 문을 닫고 나오며 너무 허망했다. 여기는 예약 시간도 없이 그냥 접..

모든 사물에는 나름의 아름다움이 있다마음을 주지 않으니 보지 못할 뿐이다유심히 바라보면 모두가 다 사랑스럽다 너는 왜 여기 누워 있니,길에 떨어진 나뭇잎을 쪼그려 앉아 오래 바라봤다 (141001) 새 발자국은날아가는 새를 닮았네 내가 남기는 자취는 어떨까 사람값은 하고나사는 걸까 마음 속 거울을들여다보는 눈 내린아침 (141002) 네가 나를 비추고내가 너를 비춘다 네 속에 내가 있고내 안에 너가 있다 중중무진!나마스떼! (141003) 그대 오시는가 창문을 열어보니 뜰에 빗소리 (141004) 활활꽃불이 탄다 내 속에도저 불 지르고 싶어라 (141005) 해 질 무렵이 가로등 아래서 기다리면 마법의 나라로 가는꼬마 기차가 올 것만 같아 (141006) 스..
대장군이 말했다."나 위청은 다행히 폐하와 인척인 관계로 대장군에 임용되어 위엄이 없을까 하고 근심하지는 않소. 주패는 나에게 위엄을 분명히 하라고 했으나 내 뜻과는 사뭇 다르오. 또 내 직책상 비장을 밸 수 있다고는 하나 폐하의 총애를 받는다고 하여 국경 밖에서 내 마음대로 죽일 수는 없소. 천자께 이 일을 상세히 보고하여 천자께서 스스로 재가하시도록 하겠소. 이렇게 함으로써 남의 신하 된 자가 감히 권력을 함부로 휘두르지 않음을 보이는 것도 좋지 않겠소?"군관이 모두 말했다."좋습니다." - 사기(史記) 51, 위장군표기열전(衛將軍驃驥列傳) 한무제 때 대장군을 지내며 흉노를 토벌한 위청(衛靑)과 곽거병(霍去病) 장군에 대한 열전이다. 둘은 미천한 출신이었지만 흉노를 물리치는 큰 공을 세우면서 무제의..
음치지만 나도 모르게 노래를 흥얼거릴 때가 있다. 우울할 때면 '오늘도 걷는다마는 정처 없는 이 발길'이라는 백년설의 '나그네 설움'이 무심코 튀어나온다. 음정 박자가 자유롭게 놀아도 쓸쓸한 가사에 공감해서다. 어제도 그랬다. 50년 전 옛날이 떠오른다. 대학을 졸업하고 첫 직장을 다닐 때의 출근길에서도 이 노래를 자주 벗삼았다. 아침에 전철 대방역에서 내려서 가는 길은 공장 지대를 끼고 있었는데 왠지 모르게 스산하고 슬펐다. 평생을 공무원으로 갇혀 살 것 같다는 미래에 대한 절망 비슷한 심정도 있었으리라. 20대 때 흥얼거리던 노래가 70대가 되어서도 변함없다. 인생이 나그넷길이란 게 나이에 따라 달라지는 게 아니잖는가. 가사 중에서도 '정처 없는'에는 북받치는 무엇인가가 있다. 정처(定處)가 없다는 ..
읽으면서 너무 안타까워 책장을 넘기기 힘들었다. 150페이지 정도 되는 얇은 책이지만 드문드문 읽다 보니 여러 날이 걸렸다. 지은이가 겪은 시련과 가난에 마음이 아팠다. 풍요 속에 가려진 우리 시대 가난의 아픔이 절절이 다가왔다. 을 쓴 안온 작가는 태어나서부터 20년을 기초생활수급자로 살았다. 가난에 더해 예민한 청소년 시기를 알코올중독자인 아버지의 폭력까지 감내해야 했다. 밖으로는 숨겨야 하고 움츠러들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가난은 대개 가족의 애사를 동반한다. 가난이 원인인지 가족이 원인인지 모르게 둘은 얽혀 있다. 지은이는 책의 한 부분에서 그래도 가족을 변호하며 이렇게 말한다. 개인이나 가족보다 사회적 책임을 상기하려는 것 같다. "나는 가난을 말할 때 가족을 맨 뒤에 배치한다. 가족이 그 모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