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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승심

2023-2024 당구 시즌을 마감하는 월드 챔피언십 결승이 어제 끝났다. 남녀부 우승자는 조재호와 김가영 선수였다. 당구를 잘 치지는 못하지만 선수들 경기를 구경하는 것은 좋아한다. 대리만족이라고 할까, 승부를 벌이는 선수들의 긴장된 모습과 호흡에서 짜릿함을 느끼기 때문이다. 잘 쓰이지는 않지만 호승심(好勝心)이라는 말이 있다. 승부욕과 비슷한 말로 '반드시 이기려는 마음'을 뜻한다. 승부사라면 당연히 가져야 할 마인드다. 아마추어라면 져도 그만 이겨도 그만이지만 프로의 세계는 다르다. 호승심이 없다면 프로의 자격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언제나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자신을 응원하는 팬에 대한 프로의 사명이기도 하다. 승부를 가려야 할 때 이기려는 마음은 인간에게 내재된 욕망이다. 친..

길위의단상 2024.03.18

딸년을 안고 / 김사인

한 살배기 딸년을 꼭 안아보면 술이 번쩍 깬다 그 가벼운 몸이 우주의 무게인 듯 엄숙하고 슬퍼진다 이 목숨 하나 건지자고 하늘이 날 세상에 냈나 싶다. 사지육신 주시고 밥도 벌게 하는가 싶다. 사람의 애비 된 자 어느 누구 안 그러리. 그런데 소문에는 단추 하나로 이 목숨들 단숨에 녹게 돼 있다고도 하고 미친 세월 끝없을 거라고도 하고 하여, 한 가지 부탁한다 칼 쥔 자들아. 오늘 하루 일찍 돌아가 입을 반쯤 벌리고 잠든 너희 새끼들 그 바알간 귓밥 한번 들여다보아라. 귀 뒤로 어리는 황홀한 실핏줄들 한 번만 들여다보아라. 부탁한다. - 딸년을 안고 / 김사인 선거철이라고 온갖 장밋빛 공약이 넘쳐난다. 국회의원 후보는 그렇다치고 대통령이라는 작자가 전국을 돌아다니며 개발 약속을 하면서 돈을 퍼주겠다고 난..

시읽는기쁨 2024.03.17

그리고 봄

조선희 작가의 따끈따끈한 소설이다. 소설의 무대가 2022년으로 작금의 정치 상황을 앓는 한 가족의 이야기다. 20대 대통령 선거에서 윤석열이 당선되었고 그를 반대한 사람들은 집단우울증에 빠졌다. 나도 마찬가지지만 TV 뉴스를 보지 않게 된 사람도 많을 것이다. 소설의 주인공인 정희와 영한 부부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딸 하민은 3번을 찍었고, 아들 동민은 소위 '2찍'이었다. 정치에 관심이 많은 부부니 가족 사이에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다. 은 이런 부모 자식간의 갈등에 더해 청년 세대의 진로와 취향, 퇴직 후의 생활 등의 우리가 보편적으로 겪는 문제를 경쾌한 필치로 다룬다. 정희는 기자 출신의 엘리트 엄마이고, 영한은 은퇴한 전직 교수다. 하민은 커밍 아웃하고 동성 연인과 함께 독일로 떠났고, 동민은..

읽고본느낌 2024.03.16

사기[15-1]

"내 너에게 이 아이를 버리라고 했는데 감히 키운 것은 무엇 때문이냐?" 문(文)이 머리를 조아리며 어머니 대신 말했다. "아버님께서 5월에 태어난 아들을 키우지 못하게 한 까닭이 무엇입니까?" 전영이 대답했다. "5월에 태어난 아들은 키가 지게문 높이만큼 자라면 부모에게 해롭다고 하기 때문이다." 문이 또 물었다. "사람이 태어날 때 그 운명을 하늘로부터 받습니까? 아니면 지게문으로부터 받습니까?" 전영이 대답하지 않자 문이 다시 말했다. "사람의 운명을 하늘에서 받는다면 아버님께서는 무엇을 걱정하십니까? 그렇지 않고 운명을 지게문에서 받는다면 지게문을 계속 높이면 그만입니다. 어느 누가 그 지게문 높이를 따라 계속 클 수 있겠습니까?" 전영이 말했다. "너는 그만하여라." - 사기(史記) 15-1, ..

삶의나침반 2024.03.15

의림지 소나무

제천에 있는 의림지(義林池)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수리용 저수지다. 삼한시대부터 있었던 것으로 추정하니까 거의 2천 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충청도를 호서(湖西), 전라도를 호남(湖南)이라고 부르는데, 그 호수가 바로 의림지를 가리킨다는 설마저 있을 정도다. 저수지 둘레는 1.8km인데 제방 위에는 아름드리 소나무가 있어 눈을 즐겁게 해 준다. 원래는 버드나무도 많았다는데 지금은 몇 그루밖에 보이지 않는다. 소나무는 우리나라의 대표종인 적송이고 수령은 대략 100년에서 300년 사이로 보인다. 주로 남쪽 제방을 따라 서거나 눕거나 하며 다양한 모양으로 자라고 있다. 의림지 제방을 따라 걸으며 소나무의 사열을 받는 것도 흐뭇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천년의나무 2024.03.14

어머니를 뵙고 오다

고향에 내려가 어머니를 뵙고 왔다. 2박3일을 함께 지내면서 옛 추억을 소환한 여러 얘기들을 나누었다. 친척들과 많은 마을 사람들이 한두 사지 사연들을 던져주고 명멸하듯 스쳐 지나갔다. 그들 대부분은 이제 이 세상 사람들이 아니다. 어머니와 함께 하는 짧은 시간이 너무나 소중하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고향에 내려가면 두문불출하고 어머니와 붙어 지낸다. 어머니도 외출할 생각을 안 하신다. 아들과의 이런저런 수다가 즐거운 것이다. 내려가는 길에 제천 의림지에 들러 저수지를 한 바퀴 돌며 초봄의 바람을 쐬었다. 어머니가 놓으신 마늘의 초록 잎이 싱싱하게 돋아났다. 덮었던 비닐을 며칠 전에 벗겼다고 한다. 다른 집에서도 마늘을 심었지만 어머니 마늘만큼 생생하지 못하다. 이웃에 사는 선배는 어머니의 작물 키우는 ..

사진속일상 2024.03.14

가벼히 / 서정주

애인이여 너를 맞날 약속을 인젠 그만 어기고 도중에서 한눈이나 좀 팔고 놀다 가기로 한다 너 대신 무슨 풀잎사귀 하나 가벼히 생각하면서 너와 나 새이 절깐을 짓더라도 가벼히 한눈파는 풀잎사귀 절이나 하나 지어 놓고 가려 한다 - 가벼히 / 서정주 '가볍게'나 '가벼이'가 아니고'가벼히'다. 시인이 골라 썼을 이 특별한 시어에 자꾸 눈이 간다. '맞날' '인젠' '새이'도 마찬가지다. 이 시가 주는 분위기와 시어의 선택이 절묘하다. 사랑이란 집착이나 소유가 아니다. 그런 사랑은 깨어지기 쉽다. 풀잎사귀 하나 같은 사랑이라면 거센 폭풍우가 닥쳐도 누울 뿐 부러지지는 않는다. 인연의 소중함도 그러하다. 가면 가고 오면 오는 것일 뿐 거기에 천만 금의 무게를 부여할 필요는 없다. 우리의 인연은 '가벼히 한눈파는..

시읽는기쁨 2024.03.11

우리 동네 첫 산수유꽃(2024/3/10)

우리 동네에도 산수유꽃이 피기 시작했다. 남녘에서는 만개한 꽃소식이 들리지만 여기는 아직 봄을 실감하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나무 꽃 중에서는 산수유가 제일 먼저 춘신(春信)을 전해준다. 옆에 있는 목련은 꽃봉오리가 기름칠을 한 듯 반들반들하다. 얼마 안 있어 터지기 시작하면 바라보는 사람을 혼미하게 만들 것이다. 겨울 잠바를 입고 외출했더니 등에 땀이 배었다. 봄이 성큼 가까이 왔다.

꽃들의향기 2024.03.10

코마

로빈 쿡의 의학 스릴러 소설이다. 읽다 보니 기시감이 드는 내용인데 오래전에 출판된 책이라 예전에 접했던 적이 있었던 것 같다. 책이 아니라면 영화를 봤을 수도 있다. 어쨌든 흥미롭게 읽었다. 뇌 기능이 정지돤 혼수상태를 '코마(coma)'라고 한다. 총명한 의대생인 수잔 윌러가 보스턴 메모리얼 병원에 연수를 갔다가 코마에 빠진 환자를 보면서 의문을 품게 된다. 자신과 동갑인 젊은 처녀가 자궁 이상 출혈로 소파 수술을 받다가 갑자기 코마 상태에 빠졌고, 한 청년이 무릎 이상으로 수술을 받다가 의식불명 상태가 되었다. 병원 자료를 살펴보던 수잔은 이런 사례가 수십 명에 이르는 것을 발견한다. 는 병원측의 거대한 음모를 밝히기 위해 목숨을 건 사투를 벌인다. 마지막에는 수잔 자신도 코마의 대상이 되어 수술대..

읽고본느낌 2024.03.10

죽음을 결정할 권리

며칠 전에 MBC 'PD 수첩'에서 지옥 같은 고통 속에서 불치병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소개하며 인간에게 죽음을 결정할 권리를 허용해야 하는지에 대한 내용이 방송되었다. 인간답게 살 권리가 있다면 죽음을 결정할 권리도 달라는 아픈 사람들의 목소리가 있었다. 보통 사람이 상상할 수 없는 아픔을 겪으며 하루하루를 견디는 이들이 예상외로 많다. 밖으로 드러나지 않으니 우리 눈에 잘 보이지 않을 뿐이다. 프로그램에서는 척수염과 어지럼증을 앓는 두 분이 나온다. 그중 한 분은 원인 불명의 바이러스에 의한 뇌염과 척수염으로 타인의 도움이 없으면 일상생활이 불가능하다. 그리고 마약성 진통제가 없으면 견디지 못하는 환상통에 시달린다. 생을 마감하려고 스위스 조력사망 센터를 알아봤으나 포기했다고 한다. 스위스에 가자면 다..

참살이의꿈 2024.03.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