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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9, 10)

9, 10권은 3부의 전반부에 해당한다. 서희가 간도에서 돌아온 뒤인 1920년대 이야기로 경성, 진주, 하동, 만주 등이 무대다. 신분 질서가 붕괴되며 양반과 상민 사이의 결혼이 나타는 시대다. 서희와 길상의 뒤를 이어 홍이와 허보연이 두 집안의 마찰을 이겨내고 결혼한다. 관수는 백정의 사위가 되어 형평운동을 주도한다. 3.1만세 뒤 민족의 미래를 두고 의견을 달리하는 다양한 분파가 생겨난다. 환이를 중심으로 의병 활동을 이어가는 동학 후예들, 해외에서 활동하는 임정과 공산당 조직이 있다. 나라를 잃고 방황하는 지식인들의 모습도 자주 나온다. 이상현처럼 시대의 좌절을 견디지 못하고 술로 세월을 보내기도 한다. 서의돈 같은 사회주의 그룹이 있고, 민족자본을 육성해서 일본에 대항하려는 일군도 있다. 어쨌든..

읽고본느낌 2025.01.31

사기[36]

주창은 강직한 성격으로 거침없이 바른말을 했기 때문에 소하와 조참을 비롯하여 모든 신하가 그에게 몸을 굽히고 낮췄다. 주창은 일찍이 고조(유방)가 한가롭게 쉬고 있을 때 어떤 일을 말씀드리려고 한 적이 있었다. 그때 마침 고조가 척희(戚姬)를 끌어안고 있어서 주창은 뒤돌아 달아났다. 고조가 뒤쫓아 와 붙잡더니 주창의 목을 타고 올라앉아 물었다."나는 어떤 임금이냐?"주창이 고개를 곧추세우고 말했다."폐하께서는 걸왕과 주왕 같은 임금이십니다."이에 고조는 웃음을 터뜨렸지만 이 일로 해서 주창을 더욱 꺼리게 되었다. - 사기(史記) 36, 장승상열전(張丞相列傳)  한나라가 개국하고 나서 고조 유방을 보좌하며 나라를 이끌었던 승상들에 관한 열전이다. 장창, 주창, 신도가 등 여러 명이 나오지만 그중 대표적인 ..

삶의나침반 2025.01.30

에피쿠로스의 네 가지 처방

에피쿠로스(Epicurus, BC 341~271)는 쾌락학파의 창시자라고 고등학생 때 배웠다. '쾌락'이라는 용어 때문에 오해를 받을 여지가 있지만, 에피쿠로스가 말하는 쾌락은 육체보다 정신적인 면에 더 비중을 둔다. 에피쿠로스 철학의 목적은 행복하고 평온한 삶을 얻는 것이다. 그는 말했다. "이상적 삶이란 육체적 욕구의 충족보다 정신적 고통에서 자유로워지는 상태에 이르기 위해 매진하는 것이다." 에피쿠로스는 우리 정신이 도달하는 최고의 경지를 '아타락시아(Ataraxia)'라 불렀다. '즐거움' '근심 없음' '평정'으로 해석되는 아타락시아는 물질적 욕망을 줄이고 자연적인 욕구를 충적시킴으로써 달성되는 내면의 평온을 말한다. 에피쿠로스에게 행복이란 내면의 불안과 고통에서 해방되는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

읽고본느낌 2025.01.29

설날 마누라랑 장보기 / 서봉교

시골 가야 된다고 궁시렁대는 마누라를 위해설거지며 빨래 널고 개고청소기 돌린 후이불 깔고 마트 갔는데 그놈의 잔소리는 쉴 줄 모른다주위를 둘러보고 아무도 안 보길래살짝 알밤을 한 대 주고는혼자 보라고 나오면서다음 생에 환생해서 당신과 결혼하면벙어리였으면 좋겠다고 했더니차례 지내러 새벽 춘천 가는 길아무 말 없다자냐고 물어도 대답 없고아마 잔뜩 부은가 보다 도착해서 한 마디 당신도 꽤 시끄럽거든그리고 난 환생 같은 거 안해 - 설날 마누라랑 장보기 / 서봉교  내일이 설날이다. 어제부터 눈이 엄청 내리고 있다. 창밖의 소나무 가지는 무거운 눈을 인 채 힘겹게 버티고 있다. 곧 부러질 듯 아슬아슬하다. 올 설은 고향에 안 가기로 했지만, 이런 날씨라면 내려갈래도 움직이기 어려웠을 것 같다. 명절 스트레스니 ..

시읽는기쁨 2025.01.28

한 문을 닫으면 다른 문을 열어주시니까

당구와 바둑, 비슷한 또래가 만나는 두 개의 취미 모임이 있다. 앞으로 몇 년을 더 모임에 나갈 수 있을지 생각할 때가 있다. 그러면서 다른 사람에게도 물어본다. 대체로 의견은 비슷하다."뭘 하더라도 길어야 10년이겠지." 여든이 넘어서도 계속 모임에 나가는 경우는 드물다. 당구장이나 기원에서 봐도 80이 넘은 사람은 찾기 힘들다. 패키지여행을 가더라도 이미 내 나이는 최고령자다. 건강하더라도 대외 활동의 분기점이 대략 여든 전후라고 보면 무방할 것 같다. 억지로 나간다 한들 타인에게 신경을 쓰게 만들고 폐를 끼치는 나이다. 자연스레 발을 끊게 된다. 그렇다면 10년도 채 안 남은 셈이다. 일흔줄에 든 지도 한참 되었으니 말이다. 그런 생각을 하면 가슴으로 찬바람이 불어온다. 10년이면 눈 깜짝할 사이에..

참살이의꿈 2025.01.27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쏜다

무하마드 알리가 가장 위대한 복서라는 주장에 이의를 달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는 선수로서 이룬 업적 외에 인간적인 면에서도 존중받을 삶을 살았다. 인권을 지키고 인종차별에 맞서 싸우는 데 앞장섰기 때문이다. 알리(당시 이름은 케시어스 클레이)가 1960년 로마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획득하고 고향인 켄터키주 루이빌로 금의환향한다. 그러나 흑인이라는 이유로 차별은 여전했다. 어느 날 한 식당에서 웨이트리스로부터 서비스를 거부당한 뒤, 그는 금메달을 오하이오 강에 던져 버렸다고 한다. 그의 용기와 결단을 드러내 보이는 일화다. 그는 흑인 인권 운동가인 말콤 엑스에 감화되어 이슬람교로 개종했고 이름도 클레이에서 알리로 바꾸었다. 또한 베트남 참전을 거부해서 유기징역을 받고 챔피언 벨트를 박탈당하기도 했다...

길위의단상 2025.01.26

파사성과 여강길 8코스

아침에 일어나니 겨울날 치고는 맑고 바람 없이 따스했다. 바깥나들이를 하자고 아내와  의기투합하여 불현듯 떠오른 장소가 파사성이었다. 그동안 수없이 지나치고 직접 오르지는 못한 성이었다. 파사성(婆娑城)은 여주시 대신면 파사산에 있는 삼국시대의 석성이다. 6세기 중엽 신라가 한강 유역으로 진출하면서 쌓은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의 성은 조선 시대에 다시 쌓은 것이며 성의 둘레는 1,800m이고 성벽의 최대 높이는 6.5m로 규모가 큰 편이다. 성 안에서는 백제, 신라, 고려, 조선 등 여러 시기의 건물터가 확인된다. 파사산은 해발 230m로 야트막하지만 산성에 오르는 길은 꽤나 가팔랐다.  파사성에 서면 남한강이 한 눈에 내려다 보이고 사방이 뚫려 있어 경치가 좋다.   여강길 8코스 파사성길이 이곳을 지..

사진속일상 2025.01.25

겨울 여수천

지난 며칠간 추위가 가셨으나 대신 미세먼지가 자욱했다. 안개가 낀 듯 시야가 흐릿했다. 다행히 오늘부터는 대기 상태가 정상으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야탑 모임에 오가는 길에 걷는 여수천의 아침저녁은 을씨년스러웠다. 날이 풀리고 있지만 천변 산책로를 걷는 사람은 드물었다. 한쪽에는 남아 있는 지난 눈의 잔해가 패잔병처럼 초라해 보였다. 겨울이 깊으면 봄이 멀지 않았음을 안다. 물길을 따라 비둘기, 백로, 흰뺨검둥오리, 물까치 등이 보였다. 그중에서 물까치가 제일 활발했다. 카메라를 들이대면 이내 사라지고 없었다.  파란 하늘에 여객기가 흰 줄을 그으며 지나갔다. 프로펠러 군용기 한 대는 계속해서 하늘을 선회하고 있었다.  모임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구름 없는 서쪽 하늘이 발갛게 물들었다. 새들도 저..

사진속일상 2025.01.24

다읽(22) - 좁은 문

20대 때 읽은 앙드레 지드의 작품 가운데 제일 기억에 남아 있는 것은 이다. 기존의 가르침이나 규범을 타파하고 본능에 충실한 삶을 살라는 가르침이 젊은 가슴에 울림을 줬다. 좋은 문장들은 노트에 필사하며 정독했던 기억이 난다. '나타나엘이여'로 시작하는 싱싱한 문장들이 지금도 떠오른다. 반면에 은 그다지 인상적이지 않았던 것 같다. 제목으로 봐서 종교적이고 철학적인 작품이라 여겼을 텐데 기대에 못 미치지 않았나 싶다. "뭐, 사랑 이야기네" 하며 실망했던 기억이 어슴프레 남아 있다. 이제 다시 읽어 본 은 젊었을 때보다는 훨씬 더 의미 있게 다가왔다. 지드가 사랑 이야기를 통해 전하려는 의도가 무엇인지 보인다. 의 메시지와 연관시켜 보면 더욱 분명하지 않나 싶다. 줄거리는 간단하다. 외사촌간인 제롬과 ..

읽고본느낌 2025.01.23

두루미를 보다가 / 유안진

하늘에 사는 이가잠깐 땅에 내려서는 것도미안하게 여겨외다리 맨발 한쪽만 딛고 서는저 겸손과 염치 있음에가슴 뜨끔해져있는가 아직도 용서 받을 여지가 - 두루미를 보다가 / 유안진  지난주에 철원에 가서 두루미를 봤다. 논에 산재해서 먹이를 먹고 있는 많은 두루미 가족을 보았다. 두루미 탐조대에서는 수백 마리가 모여 있는 장관이 펼쳐졌다. 두루미와 만났으니 올 겨울도 가득 찬 셈이다. 두루미를 보면서 인간이 어떤 경지에 올라야 그들처럼 우아할 수 있을까를 생각했다. 꾸미지 않는 자연스러움이 그런 것이었다. 시인은 겸손과 염치를 떠올리며 가슴 뜨끔해졌다고 말한다. 그리고 용서 받을 여지가 있을지를 묻는다. 정작 용서를 빌어야 할 놈은 철면피를 한 채 큰소리를 떵떵 치는 세상이다. 인간으로 산다는 게 부끄럽고 ..

시읽는기쁨 2025.0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