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토지(9, 10)

샌. 2025. 1. 31. 11:18

9, 10권은 3부의 전반부에 해당한다. 서희가 간도에서 돌아온 뒤인 1920년대 이야기로 경성, 진주, 하동, 만주 등이 무대다. 신분 질서가 붕괴되며 양반과 상민 사이의 결혼이 나타는 시대다. 서희와 길상의 뒤를 이어 홍이와 허보연이 두 집안의 마찰을 이겨내고 결혼한다. 관수는 백정의 사위가 되어 형평운동을 주도한다.

 

3.1만세 뒤 민족의 미래를 두고 의견을 달리하는 다양한 분파가 생겨난다. 환이를 중심으로 의병 활동을 이어가는 동학 후예들, 해외에서 활동하는 임정과 공산당 조직이 있다. 나라를 잃고 방황하는 지식인들의 모습도 자주 나온다. 이상현처럼 시대의 좌절을 견디지 못하고 술로 세월을 보내기도 한다. 서의돈 같은 사회주의 그룹이 있고, 민족자본을 육성해서 일본에 대항하려는 일군도 있다. 어쨌든 민족의식을 잃지 않으면서 민중을 계몽하려는 안타까운 고군분투들이다.

 

무대가 경성이면 주로 인텔리, 진주나 하동이면 고단한 민중의 삶이 펼쳐진다. 진주에 내려온 서희는 빼앗겼던 집까지 되찾으면서 조준구에 대한 복수를 완결한다. 만주에 남은 길상의 근황은 전해지지 않고 있다. 둘이 왜 떨어지게 되었는지 구체적인 설명은 없지만, 서희가 길상의 마음을 헤아리며 이해하게 되는 대목이 나온다. 첫째 아들인 환국이 종의 자식이라는 놀림을 받고 친구를 때리는 사건이 일어나는데, 역시 서희답게 현명하게 수습한다. 그 뒤의 묘사다.

 

"병원문을 나서는 순간 서희 입에서 낮은 신음이 새나왔다. 거리은 어두웠다. 아주 어두웠다. 강가까지 온 서희는,

'여보, 그곳에 남은 뜻을 이제 확실히 알겠소. 하지만 장하지 않아요, 당신 아들 환국이가?'

찬 바람 속에 서서 서희는 오랫동안 흐느껴 울었다."

 

겉으로는 차갑고 당당해 보이나 서희가 얼마나 외로울 지 느껴진다. 고향으로 돌아간다고 했을 때 길상은 서희와 동행하지 못했다. "여보, 그곳에 남은 뜻을 이제 확실히 알겠소." 고향에 돌아왔을 때 뭇사람들의 시선을 길상은 감당할 자신이 없었을 것이다. 독립운동을 하겠다는 것은 핑계에 불과했을지 모른다. 길상이 그만큼 뻔뻔하지 못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기생 기화가 된 봉순이의 기구한 삶도 마음을 아프게 한다. 진흙탕 속에 꽃 핀 한 송이 연꽃 같은 느낌을 주는 여인이다. 지금까지 읽은 <토지>에서 애틋하게 지켜보고 있는 두 여인이라면 봉순이와 월선이다. 월선이는 이미 죽었다. 월선이가 죽는 장면에서는 눈물이 나와 시야가 뿌옇게 흐려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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