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토지(8)

샌. 2025. 1. 21. 10:34

8권은 2부의 마지막이다. 용정 생활을 마치고 10여 년 만에 서희가 드디어 고향으로 돌아간다. 공 노인의 도움으로 조준구한테 빼앗긴 땅을 되찾고 귀향할 수 있게 되었다. 남편인 길상은 서희와는 다른 뜻을 품고 있었고, 우국지사들과 함께 하기 위해 연해주에 남는다.

 

이 권에서 월선이 죽는다. 월선은 <토지>에 나오는 인물 중 가장 마음씨가 고운 여인이다. 일편단심 한 남자를 사모하면서 갖은 고난을 겪다가 암에 걸려 죽게 된다. 대척점에 물욕으로 가득찬 임이네가 있다. 두 여자 사이에서 용이도 속깨나 끓였으리라. 산판 일을 마치고 열 달 만에 돌아온 용이 월선의 마지막을 지키는 대목에서는 가슴이 뭉클해진다. 8권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이다.

 

방으로 들어간 용이는 월선을 내려다본다. 그 모습을 월선은 눈이 부신 듯 올려다본다.

"오실 줄 알았십니다."

월선이 옆으로 다가가 앉는다.

"산판 일 끝내고 왔다."

용이는 가만히 속삭이듯 말했다.

"야, 그럴 줄 알았십니다."

"임자."

얼굴 가까이 얼굴을 묻는다. 그리고 떤다. 머리칼에서부터 발끝까지 사시나무 떨듯 떨어댄다. 얼마 후 그 경련은 멎었다.

"임자."

"야."

"가만히,"

이불자락을 걷고 여자를 안아 무릎 위에 올린다. 쪽에서 가느다란 은비녀가 방바닥에 떨어진다.

"내 몸이 찹제?"

"아니요."

"우리 많이 살았다."

"야."

내려다보고 올려다본다. 눈만 살아 있다. 월선의 사지는 마치 새털처럼 가볍게, 용이의 옷깃조차 잡을 힘이 없다.

"니 여한이 없제?"

"야, 없심니다."

"그라믄 됐다. 나도 여한이 없다."

머리를 쓸어주고 주먹만큼 작아진 얼굴에서 턱을 쓸어주고 그리고 조용히 자리에 눕힌다.

용이 돌아와서 이틀 밤을 지탱한 월선은 정월 초이튿날 새벽에 숨을 거두었다.

 

월선과 용이는 어릴 때부터 같은 마을에서 자라며 서로 좋아하게 되었다. 월선의 어미가 무당이라 집안의 반대로 둘은 맺어지지 못하고, 용이는 강청댁과 억지로 결혼하게 되고 월선은 늙은 홀아비한테 시집간다. 마음에 없는 결혼 생활이 둘 다 편안할 리 없다. 월선은 몇 년을 못 살고 다시 평사리로 돌아오고, 그 뒤의 기구한 사연과 둘의 순정한 사랑은 결국 이렇게 마무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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