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쿠로스(Epicurus, BC 341~271)는 쾌락학파의 창시자라고 고등학생 때 배웠다. '쾌락'이라는 용어 때문에 오해를 받을 여지가 있지만, 에피쿠로스가 말하는 쾌락은 육체보다 정신적인 면에 더 비중을 둔다. 에피쿠로스 철학의 목적은 행복하고 평온한 삶을 얻는 것이다. 그는 말했다.
"이상적 삶이란 육체적 욕구의 충족보다 정신적 고통에서 자유로워지는 상태에 이르기 위해 매진하는 것이다."
에피쿠로스는 우리 정신이 도달하는 최고의 경지를 '아타락시아(Ataraxia)'라 불렀다. '즐거움' '근심 없음' '평정'으로 해석되는 아타락시아는 물질적 욕망을 줄이고 자연적인 욕구를 충적시킴으로써 달성되는 내면의 평온을 말한다. 에피쿠로스에게 행복이란 내면의 불안과 고통에서 해방되는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불안의 원인을 알아야 그에 대한 처방이 가능하다.
'불안과 고통에 대처하는 철학의 지혜'라는 부제가 붙은 <에피쿠로스의 네 가지 처방>은 이런 내용을 담은 책이다. 저자는 영국의 존 샐라스다. 결론은 이렇다.
1) 신을 두려워 마라.
2) 죽음을 염려하지 마라.
3) 좋은 것은 구하기 어렵지 않다.
4) 끔찍한 일은 견디기 어렵지 않다.
첫째, '신을 두려워 마라'는 미신과 편견에서 벗어남을 뜻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연을 탐구해야 한다. 천둥 벼락이 제우스의 분노가 아니라 자연 현상임을 안다면 더 이상 두렵지 않을 것이다. 에피쿠로스는 원자론자였다. 그는 물질과 정신 현상까지 원자들의 이합집산으로 이해하려 했다.
둘째, 죽음이란 감각의 부재이므로 쾌락이나 고통과 아무 관계가 없다. 고로 죽음이란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죽음에 이르게 되는 과정에서 고통이 따르지만 에피쿠로스는 견딜 만하다고 말한다. 고통은 이런저런 즐거움으로 상당 부분 상쇄할 수 있다고 한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으로 현재를 망치지 마라. 그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단 한 번 태어난다. 두 번 태어날 수 없으며 영원히 존재할 수도 없는 것이 우리의 운명이다. 우리는 내일을 통제할 수 없는 데도 내일을 위해 오늘의 기쁨을 미룬다. 인생은 그런 유예 속에 낭비되며, 결국 모두가 그렇게 일만 하다 죽고 만다."
셋째, 우리 삶에 꼭 필요한 것은 얼마 되지 않으며 비교적 쉽게 구할 수 있다. 나머지는 겉치레에 불과하다. 우리는 이미 필요한 모든 것을 갖고 있으며, 그것을 깨닫기만 하면 된다. 이 사실을 알면 불안이 해소된다. 그러면 단순한 생활에서 오는 마음의 평화와 자유를 누릴 수 있다. 에피쿠로스는 단순에 삶을 통한 자족감에서 행복이 시작된다고 말한다.
넷째, 인생은 예기치 않은 불행과 어려움으로 가득하다. 그러나 어떤 끔찍한 일이라도 견딜 만하다고 에피쿠로스는 말한다. 그런 위안 중 하나에 친구가 있다. 어려울 때 의지가 되는 친구가 있다면 험한 세상을 헤쳐나갈 수 있다. 고통을 다른 즐거움으로 상쇄하는 것이다. 실제로 에피쿠로스는 아테네 성벽 바깥에 우정에 기반을 둔 '정원' 공동체를 만들어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과 함께 생활했다고 한다.
이 책은 얇으면서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는 쉬운 내용으로 되어 있다. 에피쿠로스가 말하는 바는 단순하다. 행복은 지금 여기서의 즐거움에서 온다. 진정한 즐거움이란 죽음에 대해 올바르게 통찰하고, 말이 통하는 사람과 아름다운 정원에서 소박한 음식을 두고 대화하며, 자연에 대한 과학적 탐구를 게을리하지 않을 때 가능하다. 그럴 때 우리는 이 세계 안에서 참으로 '살아 있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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