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다읽(23) - 몽테뉴 수상록

샌. 2025. 2. 2. 09:59

몽테뉴는 30대 후반에 공직을 은퇴하고 자신의 영지로 돌아와 독서와 글쓰기에 전념했다.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막대한 재산 덕에 오로지 자신을 성찰하며 고독하지만 행복한 글쓰기를 할 수 있었다. 16세기 후반은 프랑스에서 종교전쟁의 광풍이 불던 때였다. 그는 세상과 거리를 두고 자신의 성에 은둔하며 인간과 세상에 대한 질문을 던졌고, 그런 사색의 결과로 나온 책이 <수상록>이다.

 

<수상록>은 몽테뉴가 대중을 위해서가 아니라 사후에 가족이나 친지들에게 자신에 대한 기억을 남기기 위해 집필했다고 적고 있다. 그러므로 미화하거나 꾸밀 필요가 없이 본인의 진실된 모습을 거짓 없이 기록할 수 있었다. 나중에 책으로 출판되었을 때는 "이런 하찮고 부질없는 주제에 여러분의 시간을 헛되이 낭비하지 말라"라고 당부한다. 이런 솔직함이 독자들을 더 끌어당겼는지 모른다.

 

0.1% 금수저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몽테뉴는 세상의 명성이나 쾌락을 추구하지 않고 자신을 성찰하며 인생 후반부를 보냈다. 40대 때 썼다고 믿기지 않을 만큼 <수상록>은 원숙한 인생의 경험이 배인 품격 있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이번에 읽은 책은 <나이 듦과 죽음에 대하여>로 우리가 어떻게 노년과 죽음을 맞이할까,에 대한 내용의 선집이다(어쩌다 보니 이 책도 두 번째 보게 되었다). 

 

몽테뉴의 <수상록>은 3권 107장으로 되어 있는 방대한 양으로 20대 때 읽었을 때도 일부 내용만 발췌한 선집이었다. 그때는 완역이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모범생 귀족의 인생론 같은 이미지가 커서인지 완역본을 읽어야겠다는 결심이 지금도 서지 않는다.

 

죽음에 대한 몽테뉴의 생각을 정리하면, 죽음을 충분히 대비해야겠지만 그렇다고 죽음에 대해 공연히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죽음을 걱정하기보다 자연에 순응해 살며 지금 삶의 기쁨을 만끽하자. 지금 잘 사는 것이 잘 죽는 것과 같다고 말한다.

 

이 책을 읽으며 내가 늘 하는 "잘 죽고 싶다"라는 바람은 어쩌면 경쟁심에 바탕을 둔 욕심이 아닌가 여겨졌다. "남보다 잘 살아야 돼"의 다른 버전이라고 생각되었다. 죽음은 운명에 맡기고 나에게 주어진 지금 이 시간을 충일하게 살아가면 되는 것이다. 인간이 할 일은 그것밖에 없는 것 같다.

 

<나이 듦과 죽음에 대하여>에 나오는 몇 구절이다.

 

- 신은 생명을 조금씩 빼앗아감으로써 인간에게 은총을 베푼다. 이것이 노화의 유일한 미덕이다. 노화를 겪으며 조금씩 죽어온 덕분에 마지막 순간에 죽음이 완전하지도 고통스럽지도 않은 것이다.

 

- 나는 매번 새로운 풀과 꽃과 열매를 보고 있다. 그리고 이제는 그것들의 바싹 마른 모습을 보고 있다. 얼마나 행복한가. 왜냐하면 바로 그것이 자연이기 때문이다. 지금 내가 병에 걸리기는 했지만, 병이 응당 와야 할 때 와서 과거에 누렸던 긴 행복을 상기시켜주는 만큼, 더욱더 수월하게 병을 견디고 있다.

 

- 노년이 되면 얼굴보다 정신에 더 많은 주름살이 생긴다. 늙으면서 시큼해지고 곰팡내 나지 않는 영혼이란 없으며, 있다 해도 매우 드물다.

 

- 내가 노년에서 발견하는 위안은 노년이 내 마음 속에서 세상 형편에 대한 걱정, 재산 지위 학문 건강에 대한 걱정, 나 자신에 대한 걱정 등, 인생을 심란하게 만드는 여러 욕망과 번뇌를 느슨하게 했다는 것이다.

 

- 고독의 목적은 동일하다. 그것은 보다 평온하게 보다 안락하게 사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나 고독의 길을 제대로 찾은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사람들은 때때로 온갖 일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일거리를 바꾼 것에 지나지 않는다.

 

- 우리는 완전히 자유로운 자기만의 뒷방을 마련해 두고, 그 안에서 참된 자유와 은둔과 고독을 확보해야 한다. 그곳에서 자기 자신과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어야 한다. 그곳에서는 아내가 없는 것처럼, 자녀가 없는 것처럼, 재산이 없는 것처럼, 시중드는 사람이나 하인이 없는 것처럼 이야기하고 웃을 수 있어야 한다. 

 

- 남을 위해  실컷 살아왔으니, 적어도 남은 생애 동안에는 자기를 위해 살아보자. 우리의 생각과 계획을 우리 자신과 우리 자신의 안락 쪽으로 다시 향하게 하자. 짐을 꾸리고, 서둘러 친구들과 작별하자. 우리를 다른 곳에 매이게 하고 자신에게서 멀어지게 하는 강압적인 구속으로부터 도망치자.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남에게 예속되지 않고 스스로 설 줄 아는 것이다.

 

- 세월이 달음질쳐 흘러가지만, 나는 그렇다고 마음 아파하지 않는다. 책들이 내 곁에 있어서 내가 원할 때 나에게 즐거움을 줄 거라는 생각을 하면 얼마나 위로가 되는지, 책들이 내 인생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이루 다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책은 내가 살아온 한평생에서 찾아낼 수 있었던 최상의 양식이다.

 

- 죽음이라는 적에 당당하게 맞서 싸우는 법을 배우자. 그리하여 우선 우리를 압도하는 적의 가장 큰 장점을 빼앗기 위해, 사람들이 흔히 선택하는 길과는 정반대 되는 길을 택하자. 적에게서 기이한 면을 없애고, 적과 자주 사귀어 익숙해지고, 무엇보다도 종종 죽음을  염두에 두도록 하자. 매 순간 죽음을, 죽음의 온갖 모습을 상상 속에 그리자.

 

- 죽는 법을 배운 사람은 노예 상태에서 벗어난 사람이다. 생명의 상실이 나쁜 것만은 아님을 깨달은 사람에게 인생에서 나쁜 것이란 아무것도 없다. 죽는 법을 알면 모든 예속과 속박에서 벗어난다.

 

- 나는 매순간 내게서 기력이 빠져나가는 것을 느낀다. 그리고 나 자신을 향해 끊임없이 되뇐다. 언젠가 일어날 수 있는 일은 오늘도 일어날 수 있다고.

 

- 자연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할 것을 권한다. 이 세상에 들어왔을 때처럼 이 세상에서 나가라고, 고통도 두려움도 없이 죽음에서 삶으로 건너왔던 그 길을 따라, 삶에서 죽음으로 다시 건너가라. 그대의 죽음은 우주라는 거대한 구조물의 한 부분일 뿐이다. 그것은 세상의 생명 가운데 한 요소이다.

 

- 우리는 죽음에 대한 걱정으로 제대로 살지 못하고, 삶에 대한 걱정으로 제대로 죽지 못한다.

 

- 노화란 우리 안에 천천히 자연스럽게 퍼지는 가공할 질병이다. 우리를 괴롭히는 노년의 결함에 대비하려면, 적어도 그 진행 속도를 줄이려면, 엄청난 주의와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아무리 방어 진지를 튼튼하게 구축해도 노화가 조금씩 나를 이겨가는 것을 나는 분명히 느낀다. 그저 힘닿는 데까지 버텨볼 뿐이다. 노화가 종내 나를 어디로 데려갈지 나는 알지 못한다. 어쨌든 내가 어느 지점에서 쓰러졌는지 사람들이 알아주기만 한다면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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