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부아르가 어머니의 입원과 죽음을 지켜보면서 어머니와 화해하는 과정을 그린 자전소설이다. 동시에 인간에게 죽음이란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를 묻는다. 70대 후반이었던 작가의 어머니는 대퇴부골절로 입원해서 암 진단을 받고 두 달가량 치료를 받다가 사망했다.
작가의 어머니는 강인하고 열정적인 삶을 살았지만 자식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간섭하고 자신의 뜻대로 하려고 했다. 자연히 보부아르와는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갑작스레 찾아온 질병으로 어머니를 간병하면서 모녀간의 유대감을 확인한다. 작가는 어머니의 삶과 죽음을 드러냄으로써 어머니를 애도하면서 자신과도 화해하게 된다. 책 중 한 대목은 이렇다.
"나는 죽음을 목전에 둔 이 환자에게 애정을 느끼고 있었다. 희미한 불빛 아래에서 엄마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나는 오랫동안 담아 둔 후회의 감정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청소년 시절부터 대화를 나누지 않게 된 우리는 서로 너무나 다르고, 또 한편으로는 서로 너무나 닮은 탓에 끊어진 대화를 다시 이어나갈 수 없었다. 그런 내가 엄마와 대화를 나누게 된 것이다. 엄마가 몇 가지 단순한 말과 행동 속에 사랑하는 마음을 담아낼 수 있게 되면서부터, 완전히 식어 버렸다고 생각했던 엄마를 향한 내 오랜 애정이 되살아났다."
보부아르는 어머니의 죽음을 직면하면서 '자연스럽게 늙어서 죽는 사람은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누구에게나 죽음은 폭력으로 다가온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편안한' 죽음이란 불가능한 것이 아닌가. 이 책이 <아주 편안한 죽음>인 것은 어쩌면 역설적인 제목인지 모른다.
우리는 어떤 죽음을 맞이하며 또한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지은이는 삶에 열정이 없었던 할머니의 예를 들며 상대적으로 죽음을 잘 받아들였다고 한다. 대신 삶에 열정이 넘친 어머니는 죽음을 거부하고 독실한 신자였음에도 종교적 의식을 사양했다. 그러면서 죽음을 대할 때 종교가 그다지 위로가 되지 못한다고 말한다.
작가의 어머니는 병원에서 최고의 치료를 받으며 두 딸과 지인들의 사랑과 애도 속에 생의 마지막을 살았다. 그런 점에서 '편안한' 죽음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죽음을 맞는 당사자의 육체적 심리적 고통이 크게 감해지는 것 같지도 않다. 호전과 악화를 반복하는 병세를 경험하며 희망, 절망, 체념, 불안, 분도 등의 감정에서 벗어나기는 어려워 보인다. 이 책을 읽으며 편안한 죽음이 과연 어느 정도 수준까지 가능할지 묻게 된다.
시몬 드 보부아르는 사르트르와의 계약 결혼 등 시대를 앞선 행동하는 지성인이었다. 그의 작품은 이번에 처음 읽었는데, 죽음을 대하는 진지한 자세와 삶에 대한 성찰이 무겁게 다가왔다. 보부아르는 책을 이렇게 마무리한다.
"자연스러운 죽음은 없다. 인간에게 닥친 일 가운데 그 무엇도 자연스러운 것은 없다. 지금 이 순간 인간으로 존재하고 있다는 것, 이는 그 자체로 세상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다. 모든 인간은 죽는다. 하지만 각자에게 자신의 죽음은 하나의 사고다. 심지어 자신이 죽으리라는 걸 알고 이를 사실로 받아들인다 할지라도, 인간에게 죽음은 하나의 폭력에 해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