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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천 산수유

야탑 모임에 가는 길에 탄천에 나가봤더니 산수유가 활짝 폈다. 역시 산수유는 봄의 전령사가 분명하다. 사람 세상이 시끄럽든 말든 봄은 온다. 인간이 하는 꼬라지를 보고 봄이 고개를 내젓는다면 어찌 하겠는가. 무심한 자연의 변화가 고맙기만 하다.  봄철 꽃나무를 찾는 단골 손님은 직박구리다. 직박구리는 사람의 시선을 두려워하지 않고 봄나들이를 즐긴다. 가까이서 이런 포즈를 취해주는 새는 드물다.

꽃들의향기 2025.03.20

두 친구

자주 만나지 못하는 두 친구와 오랜만에 통화를 했다. 둘 다 첫마디가 "참 오랜만이다!"였다. 40대 때만 해도 한 해에 두세 번은 만났는데 그 뒤로는 빈도가 점점 떨어졌다. 그러다가 가끔 전화로 안부를 묻게 되고, 그마저도 해를 넘기기 일쑤였다. 늙어지면 대개 그렇게 된다.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은 천태만상이다. 같은 인간인데 어쩜 이리 다양할까, 신기한 생각이 든다. 처한 환경이나 사고방식, 건강 상태까지 각양각색이다. 젊을 때는 별 차이가 없어 보이지만 노년이 될수록 삶의 스펙트럼의 폭이 확대되는 것 같다.  A는 당뇨 합병증으로 고생하고 있다. 다리에 괴사에 생겨 병원에 입원하고 수술을 받았다. 발가락을 잘라냈고 아직도 병원 치료중이다. 걷지를 못하니 바깥출입을 하지 못한다. 워낙 낙천적인 성격이..

길위의단상 2025.03.19

3월의 풍성한 눈

3월 하순으로 접어드는데 한겨울 같은 눈이 내렸다. 어젯밤에 대설 특보가 내리고 아침까지 계속되다가 그쳤다. 습기를 머금은 무거운 눈에 소나무 가지가 부러질 듯 휘청인다. 오후에는 비가 내린다는 예보가 나와 있으니 곧 작별을 해야 할 마지막 눈일 듯싶다.  올 겨울은 눈이 많았다. 농경사회에서 눈은 풍년을 약속하는 반가운 존재였다. 첫눈이 내리는 날은 공휴일이 되는 나라도 있다. 얼마나 낭만적이면 이런 기념일도 있을까.     어제는 수서에서 면목회 모임이 있었다. 점심을 먹고 차를 나누며 40여 년 전의 옛이야기에 젖었다. 각자가 소환하는 얼굴들에서 갖가지 추억들이 안개처럼 피어올랐다. 지금은 다들 어떻게 지낼까 궁금해지기도 하면서 인간 사이에 맺어지는 인연과 우연에 대해 여러 생각이 들었다. 눈은 곧..

사진속일상 2025.03.18

인사는 잠깐인데 우리는 오래 헤어진다

늙어가면서 감성을 잃지 않고자 젊은 여성의 글을 일부러 찾아 읽는다. 이 책도 그렇게 해서 서가에서 골랐다. 지혜 작가가 쓴 에세이로 자신이 직접 찍은 사진이 함께 있어 좋았다. 작은 빛을 찍은 사진이 많았다. 책을 다 읽은 뒤 사진만 따로 음미하는 느낌이 좋았다. '인사는 잠깐인데 우리는 오래 헤어진다'라는 제목에 가족의 슬픈 사연이 숨겨져 있어 가슴 아팠다. 작가는 부모가 있음에도 고모 손에서 자랐다. 낳은 부모, 기른 부모를 경험한 사람의 마음이 어떠한지 작가의 글이 오롯이 담고 있다. 쓸쓸하면서 따스한 풍경들이다. 살아간다는 일이 그러하듯이. 책을 읽으면서는 자주 시선이 돌려져 창밖을 바라보게 된다. 글 일부를 옮긴다. - 어젯밤 버스 의자에 앉아 있다가 갑자기 우는 사람의 뒷모습을 봤다. 그건 ..

읽고본느낌 2025.03.17

주막 / 백석

호박잎에 싸오는 붕어곰은 언제나 맛있었다부엌에는 빨갛게 질들은 팔(八)모알상이 그 상 우엔 싸리를 그린 눈알만한 잔(戔)이 뵈였다아들아이는 범이라고 장고기를 잘 잡는 앞니가 뻐드러진 나와 동갑이었다울파주 밖에는 장군들을 따라와서 엄지의 젖을 빠는 망아지도 있었다 - 주막(酒幕) / 백석  장날 주막의 풍경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장날이 되면 주막은 시끌벅적했을 것이다. 동무의 집에서 주막을 했던 모양이다. 거기서 얻어먹던 붕어곰의 맛이며, 주막 안팎의 광경이 정겹게 다가온다. 어릴 적에 어른들을 따라 장에 갔을 때 봤던 주막의 모습도 어슴프레 떠오른다. 어린 나는 주막에 딸린 작은 방에 들어가 따끈한 국수를 먹었던 기억이 난다. 문 밖에서 떠드는 사람들 사이에서 드물게 들리는 아버지의 목소리를 나는 놓치지..

시읽는기쁨 2025.03.16

사기[39]

숙손통이 한왕에게 항복하였을 때 그를 따르던 유생과 제자는 100명이 넘었다. 그러나 숙손통은 그들을 한왕에게 추천하여 벼슬길을 열어주지 않고 도적이나 장사치만을 추천하여 나아가게 하였다. 그래서 제자들은 뒤로 숙손통을 욕하며 말했다."선생을 여러 해 동안 섬겼고, 다행히 선생을 따라 한나라에 항복하게 되었는데 지금 선생은 저희들을 추천하지 않고 아주 교활한 사람들만 오로지 추천하는 것은 무슨 까닭입니까?"숙손통은 이 말을 듣고서 이렇게 말했다."한왕은 화살과 돌을 두려워하지 않고 천하를 다투고 있는데, 여러분이 어찌 싸울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먼저 적장의 목을 베고 적기를 빼앗을 수 있는 사람을 추천한 것입니다. 여러분은 나를 믿고 잠시 기다리십시오. 나는 여러분을 잊지 않고 있습니다."한왕은 숙손통..

삶의나침반 2025.03.15

청계산 진달래능선을 걷다

용두회의 이번달 걷기는 청계산 진달래능선이었다. 진달래가 피는 때에 맞추었더라면 금상첨화였겠으나 꽃이 나오기 전 이른 봄의 산도 좋았다. 산길에서는 봄이 오는 소식을 오감으로 느낄 수 있었다. 청계산역 2번 출구에서 조금만 걸어가면 원터골 등산로 입구가 나온다.   원터골 계곡에서는 얼음 녹은 물이 봄을 재촉하듯 재잘거렸다.   진달래능선을 따라 옥녀봉으로 올라간다. 약간의 황사가 있었으나 크게 개의할 정도는 아니었다.   진달래는 긴 겨울잠에서 이제 막 깨어나려 하고 있었다. 4월 초가 되면 이 길은 분홍색 꽃물결로 일렁이리라.   유일하게 생강나무꽃이 샛노란 봉오리를 선보이고 있었다.  진달래능선에서 바라본 서울 강남의 모습이다. 먼 시야는 흐릿했다.  친구들은 중턱까지 오르더니 못 가겠다며 다들 쉼..

사진속일상 2025.03.14

2025 기상사진

기상청이 주관하는 '제42회 기상기후 사진 영상 공모전'의 수상작이 결정되었다. 이번 공모전에는 사진 3394점, 영상 115점 등 총 3509점의 작품이 출품되었다고 한다. 해가 갈수록 작품의 수준이 높아지고 있는 것 같다. 올해의 대상은 김정국 작가의 '물기둥'이 받았다. 지리산 위로 여러 개의 물기둥처럼 소나기가 내리는 풍경을 찍은 사진이다. ▽ 대상: 물기둥(김정국), 구례, 2023. 8. 25. 06:13  ▽ 금상: 한옥마을 위 무지개(유광현), 전주, 2024. 10. 4. 15:20  ▽ 은상: 버섯구름(신규호), 경기도 광주, 2024. 8. 16. 18:15  ▽ 은상: 마른 하늘의 날벼락(유진희), 서귀포, 2024. 8. 17. 22:50  ▽ 동상: 안개가 목포를 점령한 날(홍희..

길위의단상 2025.03.13

토지(16)

16권은 신경에서 생활하는 홍이 1940년 8월 1일자 신문을 읽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이 권의 시대 배경은 1940년대 초반으로 일제가 전쟁을 확대하며 민족에 대한 탄압이 극심해지던 때다. 길상의 손자 돌잔치 장면을 그린 대목에서 당시의 암담한 시대 상황을 묘사한 부분이다. "불안과 공포, 억압에서 빚어진 습성 같은 것이지만 이제는 북녘땅에서 실려오던 신화 같은 것은 없다. 한 줄기 빛도 보이지 않는 어둠만 있을 뿐 전쟁의 함성, 전과(戰果)만 대서특필 전해질 뿐, 모든 것은 일본이 파놓은 깊이 모를 수렁 속으로 빨려들어가고 있었다. 창씨개명, 조선어 금지, 지원병제도, 민족신문의 폐간, 노동력 차출, 식량 공출, 유명무명의 조직 확대, 관리들과 학교 교사까지 준군복(準軍服)인 카키복 국민복으로 갈아입..

읽고본느낌 2025.03.12

시간이 남아서

친구를 만나러 서울에 갔는데 약속 시간에 30여 분 일찍 도착했다. 약속 장소가 20년 전에 살았던 동네라 옛 추억을 되살리며 주변을 돌아보았다. 살았던 아파트 단지 안에도 들어가 보고, 자주 왕래하던 길도 걸었다. 골목길 모퉁이의 편의점은 그대로였고, 음식점은 간판만 바뀌었을 뿐 그때에 비해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서울치고는 변화가 적은 동네였다. 20년의 중첩된 세월을 경험하는 기분이 헝클어진 실타래처럼 혼란스러웠다. 그리고 씁쓰레한 추억이 몇 개 떠올랐다. 그때는 내 잘못으로 서울 집을 잃고 전세살이를 하던 시기였다. 마침 계약이 만료되어 가는데 집을 구하기가 어려웠다. 집값이 폭등하면서 덩달아 전셋값도 치솟았다. 집주인이 터무니없이 값을 올려서 같은 집에 계속 살 수는 없었다. 작은 집으로 가든지..

참살이의꿈 2025.03.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