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작은 제자 자양에게 쇠침과 돌침을 갈게 한 뒤 그것으로 몸 살갗에 있는 삼양(三陽)과 오회(五會)를 찔렀다. 한참 뒤 태자가 깨어났다. 그러자 제자 자표에게 10분지 5의 고약과 10분지 8의 약제를 섞어 달여 양쪽 겨드랑이 아래에 번갈아 붙이도록 하니 태자가 자리에서 일어나 앉았다. 음과 양의 기운을 조절해 가며 탕약을 스무 날 동안 먹게 하니 태자의 몸은 원래대로 돌아왔다. 이 일로 하여 세상 사람들은 모두 편작은 죽은 사람도 살려 낼 수 있다고 여기게 되었다. 편작이 말했다.
"나 진월인은 죽은 사람을 살려 내지는 못한다. 이는 내가 스스로 살 수 있는 사람을 일어날 수 있게 한 것뿐이다."
- 사기(史記) 45-1, 편작창공열전(扁鵲倉公列傳)
편작은 춘추시대 때의 명의로 이름은 진월인(秦越人)이다. 젊었을 때 여관 관리인이었는데 여관을 드나들던 손님과 인연이 되어 신비한 의법을 전수 받았다. 그가 준 약을 30일 동안 먹고 나니 담장 너머에 있는 사람이 보이고, 몸 안을 투시하는 능력을 갖추게 되었다.
편작은 제나라 출신이지만 여러 나라를 넘나들며 병자들을 고쳤다. 편작이 괵나라에 있을 때였다. 태자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궁궐 의원에게 증상을 물은 뒤 자신이 태자를 살려낼 수 있다고 자신했지만 믿지 않았다. 편작은 이렇게 말했다.
"당신이 질병을 치료하는 방법은 대나무 구멍으로 하늘을 보고, 좁은 틈으로 무늬를 보는 것과 같습니다. 저 진월인이 질병을 치료하는 방법은 환자의 맥을 짚고, 안색을 살피고 목소리를 듣고, 몸 상태를 살펴보는 등의 일을 하지 않고도 질병이 어느 부위에 있는지 말할 수 있습니다. 몸 속의 병은 겉으로 나타나므로 1000리 먼 곳까지 가지 않아도 진단을 내릴 수 있는 경우가 아주 많으며, 감추려 해도 감출 수 없습니다."
결국 편작은 태자를 살려냈으며 이때로부터 죽은 사람도 살려내는 명의라는 소문이 퍼졌다. 편작의 사람됨을 말해주는 이런 유명한 말이 사마천에 의해 남아 있다.
"스스로 살 수 있는 사람을 일어날 수 있게 한 것뿐이다."
편작은 고칠 수 없는 여섯 가지 불치병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1) 교만하고 방자하여 병의 원리를 논하지 않는 것
2) 몸을 가벼이 여기고 재물이 아까워 병을 치료하지 않는 것
3) 입고 먹는 것을 적절하게 하지 못하는 것
4) 음과 양이 함께 있어 오장의 기가 불안정한 것
5) 몸이 극도로 허약하여 약을 먹을 수 없는 것
6) 무당의 말만 믿고 의사를 믿지 않는 것
편작은 2500년 전 사람이지만 그의 의학 지식은 상당히 과학적이었던 것 같다. 위중한 병을 가리키는 '편작이 와도 못 고친다'는 속담이 있는 걸 보면 편작의 명성을 알 수 있다.
말년에 편작은 한단, 낙양을 거쳐 진나라 함양으로 들어가서 주로 어린아이의 병을 고쳤다. 진나라 태의령(太醫令)이였던 이해는 자신이 의술이 편작과 비교되며 칭송이 편작에게 집중되는 걸 시기해서 사람을 보내 편작을 찔러 죽였다. 어느 시대에나 이런 무지막지한 인간이 있는가 보다. 중국 의학의 기초를 놓은 편작의 최후는 비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