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나침반

사기[45-2]

샌. 2025. 6. 18. 09:40

황제가 순우의에게 물었다.

"문왕이 병을 얻어 다시 일어날 수 없게 된 까닭을 아시오?"

순우의가 대답하여 말했다.

"문왕의 병을 직접 진찰한 적은 없습니다. 그러나 가만히 들어 보니 문왕은 천식이 있었고 머리가 심하게 아팠으며 눈이 잘 보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신이 마음속으로 이 증상을 헤아려 보니 그것은 병이 아니었습니다. 생각해 보니 살이 찌고 정력이 쌓이기만 하여 몸을 잘 움직일 수 없고 뼈와 살이 조화를 이루지 못하여 천식이 생긴 것이므로 의약으로는 고칠 수 없는 병이었습니다. 맥법에도 '나이 스물에는 혈맥이 왕성하므로 달리는 것이 좋고, 서른에는 빠른 걸음으로 걷는 것이 좋고, 마흔에는 편안히 앉아 있는 것이 좋고, 쉰 살에는 편안히 누워 있는 것이 좋고, 예순 살이 넘으면 원기를 깊이 감추어 두는 것이 좋다.'라고 했습니다. 문왕은 나이가 스무 살도 채 되지 않았기 때문에 맥기로 보면 한창 달려야 할 때였습니다. 그런데 느릿느릿 걸으니 천도(天道)의 네 계절의 자연법칙에 순응하지 못한 것입니다."

 

- 사기(史記) 45-2, 편작창공열전(扁鵲倉公列傳)

 

 

창공은 한나라 때 의사로 활동했다. 젊어서 창고를 지키는 관리였던 탓에 창공(倉公)으로 불렸지만 본 이름은 순우의(淳于意)다. 순우의는 같은 고을의 양경한테서 3년 동안 의술을 배우고 병을 고치기 시작했다. 그러나 성격이 조심스러웠던 것 같다. 제후국을 돌아다니며 환자를 봤지만 어떤 경우에는 치료를 거부하여 원망을 듣기도 했다.

 

그런 일들이 겹쳐 고발되고 장안으로 압송되어 형벌을 받을 위기에 처했으나 막내딸이 애절한 상소를 올려 용서를 받게 되었다. 막내딸은 자신이 관청 노비가 되어 아버지의 잘못을 속죄하겠다고 하여 황제의 마음을 돌렸던 것이다. 황제는 순우의의 실력을 알아보기 위해 그동안 치료한 실적을 보고하게 했는데, 수십 가지 임상 사례가 사마천에 의해 <사기>에 실려 있다.

 

더하여 황제는 순우의와 심문 비슷한 대화를 나눈다. 얼마나 진실된 사람인지를 알아보려 한 것 같다. 인용한 대목은 문왕의 병세에 관해 순우의가 판단한 내용이다. 문왕의 증세는 병이 아니고 자연의 원리에 순응하지 못한 결과라고 순우의는 말한다. 그중에서 나이에 따른 활동에 대해 말하는 부분이 흥미롭다. 젊었을 때는 왕성하게 움직여야 하지만 나이가 들어서는 무리하게 몸을 써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마흔에는 편안히 앉아 있는 것이 좋고, 쉰 살에는 편안히 누워 있는 것이 좋고, 예순 살이 넘으면 원기를 감추어 두는 것이 좋다."

지금 나이로 환산하면 스무 살은 보태서 생각해야 할 듯하다. 요사이는 노년이 되어서도 젊은이 못지 않은 활동을 강조하는 추세다. 억지로라도 움직여야 한다는 강박 관념을 심어준다. 과연 그럴까. 쉬는 때가 되면 편안히 쉬는 게 순리가 아닐까. 계절이 순환하는 자연법칙에 순응하지 않으면 도리어 반작용을 불러온다고 생각해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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