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나침반

사기[44]

샌. 2025. 5. 26. 11:34

노나라 왕이 사냥을 좋아하였으므로 재상 전숙은 언제나 왕을 모시고 사냥터로 들어갔다. 그때마다 전숙에게 관사에서 쉬라고 했지만 전숙은 사냥터로 나와 항상 햇볕이 내리쬐는 곳에 앉아 왕을 기다렸다. 왕은 자주 사람을 보내 그를 쉬게 했으나 끝까지 쉬지 않으며 이렇게 말했다.

"우리 왕이 사냥터에서 몸을 드러내 놓고 있는데, 내 어찌 혼자 관사에 가서 쉬겠소?"

노나라 왕은 이 일로 하여 밖으로 나가 노니는 일이 그다지 많지 않았다.

몇 년 뒤에 전숙이 임기 중에 세상을 떠나자 노나라 왕은 황금 100근을 주어 제사를 지내게 하려고 했으나, 작은아들 전인은 받지 않고 말했다.

"황금 100근 때문에 선친의 명예를 손상시킬 수 없습니다."

 

- 사기(史記) 44, 전숙열전(田叔列傳)

 

 

전숙(田叔)은 조나라 신하였는데 조나라에서 고조인 유방을 시해하려는 음모가 발각되어 조나라 왕과 연루된 자들이 체포되어 장안으로 압송되는 사건이 일어났다. 한나라 조정에서는 조나라 왕을 따르는 자가 있으면 삼족을 멸하겠다는 조서를 내렸다. 그러함에도 전숙은 스스로 죄수복을 입고 형틀을 찬 채 왕을 따라 장안으로 갔다. 조사 과정에서 조나라 왕의 혐의가 풀렸고 전숙의 충심을 본 유방은 전숙을 한중 군수로 삼고 중용했다.

 

그 뒤 전숙은 노나라 재상이 되어 인품대로 부드럽고 현명하게 공왕(恭王)을 모셨다. 그런 일화 중 하나를 인용했다. 공왕은 정사보다 놀기를 좋아했던 듯하다. 특히 사냥을 좋아해서 궁궐을 비우고 자주 사냥터를 찾았다. 전숙은 사냥하는 동안 햇볕을 맞으며 왕을 기다렸다. 늙은 신하에게 미안했던지 왕이 만류했지만 전숙은 어찌 왕 곁을 떠나 쉬겠느냐며 듣지 않았다. 결국 왕은 사냥터에 나가는 일을 줄일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상대방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는 말보다 몸으로 보여줘야 한다. 전숙이 사냥을 하면 안 된다고 말로만 설득하려 했다면 왕은 거부감을 느꼈을지 모른다. 전숙은 왕을 아끼는 마음을 진실되게 보여줌으로써 왕이 자신을 돌아보게 할 수 있었다. 예를 들어 가정에서 자식이 게임에 빠져 있을 때 부모가 어떻게 해야 할지 이런 사례에서 배우는 바가 있을 것이다. 말로만 게임 하지 말라, 공부를 해라,라고 잔소리를 한들 효과가 있는 경우를 보지 못했다.

 

전숙이 죽자 왕이 황금 100근을 내렸지만 아들은 선친의 명예를 손상시킬 수 없다며 사양했다.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인 셈이다. 한나라 고조와 문제, 경제 시대 때 명신이었던 전숙의 이야기다.

 

사마천은 이렇게 평가한다.

"공자가 일컬어 말하기를 '어느 나라에 가든지 반드시 그 나라의 정사를 듣는다'라고 했는데, 바로 전숙 같은 사람을 가리켜 한 말이다. 그는 현인을 의롭게 여겨 잊지 않았으며, 현명한 군주의 아름다운 덕망을 나타내어 잘못을 저지르지 않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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