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나침반

사기[41]

샌. 2025. 4. 20. 10:42

문제가 패릉에서 올라갔다가 서쪽 가파른 고갯길을 달려 내려가려고 하였다. 그때 원앙은 타고 있던 말을 황제의 수레 옆에 대고는 말고삐를 잡아당겼다. 황제가 말했다.

"장군은 두렵소?"

원앙이 말했다.

"신이 듣건대 1000금을 가진 부잣집 아들은 마루 끝에 앉지 않고, 100금을 가진 아들은 난간에 기대어 서지 않으며, 성스러운 군주는 위험을 무릅쓰면서까지 요행을 바라지 않는다고 합니다. 지금 폐하께서는 여섯 마리의 말이 끄는 마차를 달려 가파른 고갯길을 내려가시려고 하는데, 만일 말이 놀라 수레가 부숴지기라도 한다면 폐하께서는 자신을 가볍게 여긴 것이라 치더라도 종묘와 태후께 무슨 낯으로 대하시겠습니까?"

그래서 황제는 생각을 거두었다.

 

- 사기(史記) 41, 원앙조조열전(袁盎鼂조列傳)

 

 

원앙과 조조는 한나라 유방의 뒤를 이은 문제와 경제 시대의 신하다(삼국지에 나오는 조조와는 다른 인물). 둘은 강직한 성품으로 황제에 대해 직언을 서슴치 않았다. 당연히 황제나 다른 신하의 귀에 거슬리는 경우가 많아서 정적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원앙 때문에 자리에서 물러나게 된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다. 결국 원앙은 자객의 칼에, 조조는 황제의 명에 의해 참수를 당했다.

 

이 열전에는 두 사람이 눈치를 보지 않고 어떤 직언을 했는지 여러 사례가 나온다. 어느 날 문제는 젊음의 패기로 수레를 직접 몰고 싶었던가 보다. 요즘 같으면 스포츠카를 타고 고속으로 달리려는 심정과 비슷했으리라. 이때 원앙이 나서서 말고삐를 잡으려 말린다. 부잣집 아들이 마루 끝에 앉지 않듯, 황제가 경거망동하면 아니 된다는 것이다. 원앙의 만류로 황제가 생각을 거두었지만 속으로는 괘씸했을지 모른다. 꼭 사고가 난다는 보장도 없는데 한 번쯤 모른 척 해 줄 수도 있는데 말이다. 몸에 좋은 약은 입에 쓴 법이다.

 

간언하는 신하가 없으면 왕은 제멋대로 권력을 휘두를 가능성이 높다. 목숨을 걸고라도 직언하는 신하가 있어야 왕은 자신의 행위를 성찰하며 바른 정치를 펼 수 있다. 이 시대에는 원앙과 조조가 그런 역할을 했다. 파면된 윤석열 옆에 이런 참모가 있었다면 비상계엄 같은 엉뚱한 짓거리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달콤한 말로 아첨하는 무리만 좋아하고 곁에 두었으니 그의 자업자득이기도 하다. 2,200년 전 한나라의 사례에 비추어 오늘을 반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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