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나침반

사기[39]

샌. 2025. 3. 15. 09:24

숙손통이 한왕에게 항복하였을 때 그를 따르던 유생과 제자는 100명이 넘었다. 그러나 숙손통은 그들을 한왕에게 추천하여 벼슬길을 열어주지 않고 도적이나 장사치만을 추천하여 나아가게 하였다. 그래서 제자들은 뒤로 숙손통을 욕하며 말했다.

"선생을 여러 해 동안 섬겼고, 다행히 선생을 따라 한나라에 항복하게 되었는데 지금 선생은 저희들을 추천하지 않고 아주 교활한 사람들만 오로지 추천하는 것은 무슨 까닭입니까?"

숙손통은 이 말을 듣고서 이렇게 말했다.

"한왕은 화살과 돌을 두려워하지 않고 천하를 다투고 있는데, 여러분이 어찌 싸울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먼저 적장의 목을 베고 적기를 빼앗을 수 있는 사람을 추천한 것입니다. 여러분은 나를 믿고 잠시 기다리십시오. 나는 여러분을 잊지 않고 있습니다."

한왕은 숙손통을 박사로 삼고 직사군(稷嗣君)이라고 불렀다.

 

- 사기(史記) 39, 유경숙손통열전(劉敬叔孫通列傳)

 

 

유경과 숙손통은 유방을 도와 한나라 건국의 기틀을 마련한 사람들이다. 나라의 제도와 의례를 제정하는 데 유학자였던 둘의 공이 컸다. 유경은 한나라의 수도가 장안으로 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인물이다.

 

숙손통은 진나라 사람으로 처음에는 항우를 따랐으나 세가 불리해지자 유방에게 투항했다. 숙손통의 행실을 보면 기회주의자적인 측면이 있다. 사마천은 이를 시대의 변화에 따른 것이라며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숙손통은 아첨을 통해 신임을 얻었지만 나중에는 강직한 말로 군왕의 허물을 깨우치기도 했으니 나라를 다스리는 방편이 아니었던가 싶다. 어찌 보면 지혜로운 사람이었고 할 수 있다.

 

숙손통을 따르던 제자들은 당장의 과실만 생각했지만 숙손통은 미래를 내다보는 눈이 있었다. 자신을 비난하는 유생들에게 숙손통은 말했다.

"당신들은 참으로 고루한 유생이라 시대의 변화를 모르는 군요."

결국 시간이 지나면 숙손통의 결정이 옳은 것으로 드러났다. 나중에 벼슬과 황금을 받자 유생들은 그제서야 기뻐하며 말했다.

"숙손 선생은 진실로 성인으로 이 시대에 중요한 임무를 알고 있다."

 

인물에 대한 평가는 즉시적이기보다는 긴 시간을 두고 종합적으로 바라봐야 할 것 같다. 숙손통의 경우도 겉으로 보면 기회주의자 같은 행태였지만 결과를 보면 모두에게 유익이 되었다. 세상 돌아가는 이치에 밝았다는 평가가 나오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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