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나침반

사기[40]

샌. 2025. 3. 25. 10:58

난포가 사신으로 제나라에 갔을 때 한나라는 팽월을 불러 모반죄를 물어 삼족을 멸하고, 팽월의 머리를 낙양에 매달아 놓고 다음과 같인 조서를 내렸다.

"감히 그의 머리를 거두어 돌보려는 자가 있으면 체포하라."

난포는 제나라에서 돌아오자, 팽월의 머리 앞에서 사신으로 갔던 일을 아뢰고 제사를 지내며 통곡했다. 관리가 난포를 체포하고 그 사실을 고조에게 아뢰었다. 고조는 난포를 불러 꾸짖어 말했다.

"네놈도 팽월과 같이 모반하였느냐? 내가 그놈의 머리를 거두지 못하도록 했거늘 네놈만이 제사를 지내 주고 통곡하니 팽월과 함께 모반한 것이 분명하다. 저놈을 빨리 삶아 죽여라."

 

- 사기(史記) 40, 계포난포열전(季布欒布列傳)

 

 

계포와 난포 두 사람의 열전이다. 둘 중 난포는 한나라 개국공신인 팽월과 친구 사이였다. 팽월과 난포는 평민일 때부터 교유했고, 머슴살이를 거쳐 나중에는 장수가 되었다. 난포가 위기에 처했을 때 팽월은 황제 유방에게 부탁하여 죗값을 치르고 풀어주기도 했다. 

 

유방을 위해 혁혁한 공을 세운 팽월이 여후의 참소로 죽임을 당하고 머리가 낙양 길거리에 매달렸다. 제나라에 사신으로 갔던 난포는 유방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팽월의 머리 앞에서 통곡하며 제사를 지내 주었다. 죽음을 각오한 행동이었다. 유방이 가만 둘 리 없었다. 난포는 한 마디만 하고 죽게 해 달라고 간청한 뒤 팽월의 억울함을 변호했다.

"팽월이 이미 죽었으니 신은 사는 것보다 죽는 편이 차라리 낫습니다. 삶아 죽이십시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의기에 감동을 받았는지 유방은 난포를 용서하고 도위로 삼았다. 사즉생의 사례라 할 만하다. 난포는 효문제 때는 연나라 재상이 되었다. 그는 말했다.

"힘들 때 치욕을 참지 못하면 사람 구실을 할 수 없고, 부귀할 때 뜻대로 하지 못하면 현명하다고 할 수 없다."

계포와 난포는 힘든 시기에 치욕을 참은 사람들이다. 사마천은 이 열전을 쓰면서 자기 자신을 투영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가 이렇게 쓴 것은 자신에게 한 말로 들린다.

"현명한 사람은 진실로 자기 죽음을 귀중히 여긴다. 저 비첩이나 천한 사람이 분개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은 진정한 용기라고 할 수 없고, 그들이 바라는 것을 실현할 방법이 없었을 뿐이다. 난포는 팽월을 위하여 통곡하고 끓는 물속으로 들어가기를 마치 제집으로 들어가듯이 하였으니, 이는 진실로 그가 삶과 죽음에 대해서 처신할 바를 알고 죽음을 겁내지 않은 것이다. 비록 지난날의 열사라도 더 이상 무엇을 더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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