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가 '작지만 우아한 식물, 이끼가 전하는 지혜'이다. 미국의 식물생태학자인 키머러(R. W. Kimmerer) 박사가 썼다. 저자는 북아메리카 원주민 출신으로 식물학을 공부한 뒤 이끼의 생태를 연구하면서 인간과의 관계, 그리고 이끼가 자신에게 주는 깨달음을 중심으로 성찰해 나간다. <이끼와 함께(Gathering Moss)>도 그런 관점에서 쓰인 책이다.
이끼는 눈여겨 보지 않는 식물이다. 주로 예쁜 꽃이나 경치의 배경으로 존재한다. 하찮아 보이는 존재를 이렇게 따스한 시선으로 볼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말을 이 책을 읽으며 실감했다. 이끼 생태계는 또 다른 소우주라 할 수 있다. 숲에서 채취한 이끼 덩어리 1그램을 조사했더니 그 안에 원생동물 13만 마리, 완보동물 13만 2천 마리, 톡토기 3천 마리, 담륜충 800마리, 선충 500마리, 진드기 400마리, 파리 유충 200마리가 서식하고 있었다고 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미시세계가 신비롭다. 저자는 아마존 열대우림을 탐사한 경험과 비교하며 이끼 생태계가 크기만 작을 뿐 동일한 시스템으로 되어 있음을 보인다.
이끼는 뿌리가 없고 꽃도 없다. 환경에 따라 무성생식과 유성생식을 번갈아 한다. 식물 중 가장 간단한 몸을 하고 있다. 이끼의 생존에는 물이 필수적이다. 물을 효율적으로 흡수하도록 구조가 진화했다. 가뭄이 들면 인내하며 기다린다. 저자는 말한다.
"받아들이는 것이 이끼가 존재하는 방식이다."
"뜨거운 날씨에 바싹 마른 백참나무에서 이끼는 어떠한 기다림의 기술을 사용할까? 이끼는 마치 백일몽을 꾸듯 몸을 안으로 말아 웅크린다. 이끼가 꿈을 꾼다면 비 내리는 꿈일 것이다."
이끼가 꾸는 꿈을 상상하는 저자의 마음이 아름답지 않은가. 동시에 이끼와 물의 관계를 인간 간의 사랑의 관계로 확장시킨다. 삶의 원리는 이끼나 인간이나 다를 게 없다.
"이끼와 물의 상호관계, 이것이 우리가 사랑하는 방식이고, 사랑을 통해 스스로 나래를 펴는 방식이 아닐까? 우리는 사랑하는 이를 향한 애정으로 형상화되고, 사랑의 존재로 확장되며, 사랑의 부재로 움츠러든다."
책에는 여러 이끼 이야기가 나오고 연구와 관련된 흥미로운 에피소드도 소개된다. 이끼 종류가 2만 2천 종이나 된다는 데 식물분류학은 정말 대단하다. 눈에 보일 듯 말 듯한 차이를 찾아내서 저렇게 나눌 수 있다니 말이다. 내가 아는 이끼는 고작 우산이끼와 솔이끼의 둘이다. 존재하는 것의 1만 분의 1이라니, 이 세상에는 모르는 게 너무 많다. 알게 되면 세상이 넓어지고 그전과는 다르게 보일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내가 살아가는 생명 세계의 신비를 새삼 느꼈다. 미생물, 이끼, 인간, 생태계, 우주로 연결되는 거대한 네트워크를 상상해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차다. 인간이 무엇인가는 이 웅장한 시스템을 떠나서 생각할 수 없다. 우리는 모두 하나로 이어진 존재인 것이다.
길을 걸을 때 이제는 한 줌의 이끼에도 다정한 시선을 줄 수 있을 것 같다. 주머니 안에 루페가 있다면 더 좋겠다. 책에 보면 도시에서는 은이끼를 많이 볼 수 있다고 한다. 조만간에 "네가 은이끼구나"라고 인사를 나눌 수 있길 바란다. 작은 것에 대한 관심으로, 그래서 이끼와 친구가 되어간다면 내 삶이 더 풍성하고 윤택해지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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