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유신 사무라이 박정희

샌. 2025. 5. 25. 10:49

'낭만과 폭력의 한일 유신사'라는 부제가 말해주듯 유신을 키워드로 하여 한국과 일본의 근현대사를 설명하는 책이다. 역사를 보는 작가의 관점이 흥미롭다. 한국인이 누구인지를 탐구하는 홍대선 작가가 썼다.

 

이 책의 장점은 정통사관과는 다른 시선으로 보는 신선함이다. 작가는 "나는 다른 관점을 제시한다"는 말을 자주 한다. 그렇다고 본류에서 벗어나지는 않고 살짝 다른 각도에서 살펴보는 정도다. 그것만으로도 새로움을 느낀다. 예를 들면, 근대 일본을 탄생시킨 정신적 지도자인 요시다 쇼인에 대해 작가는 만들어진 영웅이라고 낮게 본다. 책에는 처음 접하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많다. 간결하고 깔끔한 설명도 좋다.

 

작가는 유신을 하나의 사건을 넘어 인격체로 다룬다. 유신은 상상력이며 정념이다. 그 정신이  1868년의 메이지 유신이나 1972년의 10월 유신을 만들어냈다. 유신은 자신이 위대해지기 위해 남을 파괴해도 된다는 신념이기도 하다. 스스로 아름다워지기 위해 죽어도 되는 탐미의 충동이기도 하다. 유신을 추종하는 이들을 유신 지사로 부른다면 그들은 사무라이 정신과 통한다. 유신은 일본에서 탄생하고 한국에서 부활한 후 소멸하며 완성되었다. 한국 유신의 중심에 박정희와 김재규가 있다.

 

<유신 사무라이 박정희>의 상당 부분이 일본 역사를 다룬다. 유신의 출발점이면서 성숙한 곳이기 때문이다. 유신의 씨앗은 여몽연합군의 일본 침공으로 심어졌다고 작가는 본다. 일본을 폐쇄적으로 만들면서 외부 세계를 적으로 돌리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에도 시대를 거치면서 사무라이들은 기회를 엿보다가 메이지 유신에 성공하고 대륙 침공에 나선다. 김옥균도 조선의 유신 지사급에 해당한다.

 

유신 정신은 낭만과 멋으로 포장되어 있지만 있지만 본성은 광기와 폭력이다. 사무라이의 할복과 태평양전쟁 말기에 나타난 가미가제 특공대가 그 예다. 유신의 끝은 자폭이다. 이념이 무엇이든 이런 행위를 아름답게 여긴다. 그들을 지사로 떠받들며 찬미한다. 유신 정신은 대물림되어 만주 군관학교 출신인 박정희에 의해 한반도에서 되살아났다. 그리고 김재규에 의해 장렬하게 끝을 맺는다. 김재규는 최후의 유신 지사였던 것이다. 박정희와 김재규를 이런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게 새로웠다.

 

책은 박정희를 공정하게 평가하려고 노력한다. 일제 강점기 때 창씨개명을 하고 만주 군관학교에 입학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이해하려 한다. 잘 사는 나라를 만들려는 그의 진정성도 믿는다. 하지만 박정희는 철저하게 유신 정신에 물든 군인이며 정치인이었다. 민주주의와 접점을 찾을 수 없었던 것은 당연했다. 같은 유신 지사인 김재규에 의해 최후를 맞은 것은 마지막 화려한 불꽃놀이 같은 게 아니었을까.

 

유신을 줄기로 해서 일본과 한국의 근현대사를 훑어볼 수 있어 의미 있었다. 일본이 벌인 전쟁과 침략은 벼락부자 같은 일본의 번영과 함께 유신의 결과물이었다. 한국도 일본과 비슷한 경로를 따랐다. 19세기와 20세기는 두 나라를 관통하는 유신이라는 하나의 정신이 지배한 시대였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죽음을 탐미한 낭만과 폭력의 역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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