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에 MBC 'PD 수첩'에서 지옥 같은 고통 속에서 불치병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소개하며 인간에게 죽음을 결정할 권리를 허용해야 하는지에 대한 내용이 방송되었다. 인간답게 살 권리가 있다면 죽음을 결정할 권리도 달라는 아픈 사람들의 목소리가 있었다.
보통 사람이 상상할 수 없는 아픔을 겪으며 하루하루를 견디는 이들이 예상외로 많다. 밖으로 드러나지 않으니 우리 눈에 잘 보이지 않을 뿐이다. 프로그램에서는 척수염과 어지럼증을 앓는 두 분이 나온다. 그중 한 분은 원인 불명의 바이러스에 의한 뇌염과 척수염으로 타인의 도움이 없으면 일상생활이 불가능하다. 그리고 마약성 진통제가 없으면 견디지 못하는 환상통에 시달린다. 생을 마감하려고 스위스 조력사망 센터를 알아봤으나 포기했다고 한다. 스위스에 가자면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데 그러면 도와준 사람은 자살방조죄로 처벌을 받기 때문이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몰려 있는 것이다. "죽는 것도 마음대로 안 된다"는 하소연에 마음이 아팠다.
한 개인이 감당할 수 없는 고통에 직면한다면 누구나 죽음을 생각한다. 원인은 물론 치료 방법도 없는 질병이라면 희망조차 가질 수 없다. 그래도 살아내야 하는 것일까? 죽지 못해 사는 삶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내가 만약 그런 상황에 처한다면 어떤 결정을 내릴 수 있을까? 무조건 버티라고 하는 것은 너무 가혹하지 않은가? 프로그램을 보면서 여러 생각이 들어 착잡했다.
안락사(安樂死)는 생존 가능성이 없는 말기 환자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시행된다. 환자의 요청으로 의료진이 약물을 투여해 죽음에 이르게 하는 '적극적 안락사', 의식이 없는 환자의 인위적인 생명 유지 장치를 제거하는 '소극적 안락사'가 있다. 환자가 의료진의 도움을 받아 직접 약물이나 주사를 투여하는 '조력 자살'도 안락사에 포함된다. 불치병의 고통에서 벗어나 존엄하게 죽을 권리가 강조되면서 안락사를 허용하는 국가가 늘어나는 현실이다. 유럽만 봐도 안락사를 합법화한 나라는 열 나라가 넘는다.
우리나라에서도 조력존엄사법이 발의되어 있다. 국민의 80%가 이 법안을 찬성함에도 불구하고 종교계의 반대가 심해 국회에서 통과되지 못하고 있다. 안락사를 허용하면 생명의 존엄성이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는 죽음을 선택할 권리를 인간의 기본권으로 보는 시각이 늘어나고 있다. 가톨릭 국가인 스페인에서도 2021년에 안락사를 합법화했다. 환자가 만성적인 고통이나 치료가 불가능한 질병을 앓고 있다는 게 확인되면 간병인도 환자의 요청에 따라 안락사를 도울 수 있다고 한다.
지난달에는 네델란드 전 총리 부부가 함께 안락사로 생을 마감해서 화제가 되었다. 총리는 5년 전에 뇌졸중으로 쓰러진 뒤 건강이 좋지 않았고 아내도 매우 아팠다고 한다. 70년을 함께 산 두 사람은 손을 마주잡고 같이 죽음을 맞았다. 네덜란드에서만 한 해에 약 1만 명이 안락사를 택한다고 한다.
우리나라 노인 자살률은 세계 최고다. 질병과 가난이 제일 큰 이유다. 서구 나라들이 안락사를 허용하는 것은 죽음에 대한 개인의 자기 결정권을 존중하는 측면도 있지만 노인의 높은 자살률도 한 가지 이유라고 한다. 자살을 방지할 수 없다면 인간답게 죽는 방법을 열어두자는 것이다. 이제 우리도 현실적인 대책을 마련할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생명을 연장하기 위해 지옥 같은 고통을 언제까지 감내하라고 강요할 것인가. 조력존엄사법이 통과되면 죽음에 대한 두려움도 한결 가벼워지리라 생각한다. 누구나 인간답게 죽고 싶으며 그 결정은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이다.
'참살이의꿈' 카테고리의 다른 글
홍세화 선생의 마지막 당부 (2) | 2024.04.21 |
---|---|
인생은 독고다이 (0) | 2024.03.20 |
작은 즐거움으로 슬픔을 덮고 (0) | 2024.02.21 |
우울한 한국 (0) | 2024.02.06 |
좌통 (0) | 2024.01.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