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통(좌측통행)'은 내 어릴 적 별명이다. 국민학교에 입학한 직후였다. 처음 학교에 들어온 아이들에게 기본 생활 지도를 했을 테고, 그중에 좌측통행 교육이 있었다. 복도에서는 뛰지 말고 좌측으로 질서 있게 다니라는 담임선생님의 가르침이었다. 국민학교 1학년 아이들이니 말을 잘 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담임선생님이 좀 과하셨던 것 같다. 학교를 나가서도 길을 다닐 때는 좌측통행을 지켜야 한다고 했다. 하느님의 말씀이라 한들 철부지들에게 학교 밖에서까지 통할 리가 없었다. 신작로를 지나 논둑길을 걷고 개울과 철길을 건너야 하는 한 시간이나 걸리는 등하교 길이었다. 교문을 나서면 개구쟁이가 되어 장난하느라 정신을 놓았을 것이다. 모범이 되어야 할 고학년의 형들은 좌측통행을 아예 무시했다. 그럼에도 예외가 있었으니 바로 나였다.
학교와 집 사이 그 긴 길을 나만 좌측통행을 고집하며 걸어다녔다고 한다. 아이들이 놀려도 끄떡없었다. 선생님의 말씀을 따라야한다고 했다. 마을 골목길에 들어서서도 왼쪽을 따라 반듯하게 걸어가는 내 모습은 동네 어른들에게 별난 구경거리였던 것 같다. 그래서 얻은 별명이 좌통이다. 아이들이 아니라 어른들이 붙여주고 부른 별명이다. 어릴 때부터 별종이었던 셈이다.
한적한 시골길에서 좌측통행이란 규칙이 의미가 없다는 걸 알아채기에는 너무 어렸는지 모른다. 오로지 선생님의 말씀이기에 어기면 안 되는 것이었다. 내 외곬수의 융통성 없는 성격을 그대로 보여주는 일화다. 어릴 때는 선생님이나 부모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착한 아이로 칭찬과 귀여움을 받았다. 하지만 성장한 뒤에 두루두루 어울려 살아가가는 사회생활을 하는 데는 병통이 된다. 성장통을 심하게 앓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오래전이지만 우리 아이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 별명이 '장학사'였다. 원칙을 벗어나지 않는 모범적인 학교 생활을 해서 담임선생님이 붙인 애칭이었다. 그때는, 이놈도 나와 똑 닮았구나, 라는 생각이 들면서 씁쓰레했다. 자식은 꼭 부모의 못난 걸 닮는단 말이야. 이놈이 제 성격을 극복하면서 사회생활에 적응해 나가자면 엄청 힘들 것이라는 걸 내 경험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요사이도 가끔이나마 고집부리는 모습에서 윗대로 올라가는 유전자의 힘을 확인한다. 아빠를 닮아서 그런 걸 어떡하냐고 하면 할 말이 없다.
천성은 변하지 않는다. 인간은 '빈 서판'으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주조된 틀이 있다고 나는 믿는다. 이 세상에 가지고 나오는 내면의 그릇이 각자 다른 것이다. 그런 천부적 지시 체계가 세상과 부딪치면서 만들어지는 것을 운명이라고 부르는 게 아닐까. 인생이 선택이라고 하지만 큰 줄기의 선택은 이미 어느 정도 정해져 있는지 모른다. 인생은 운명과 우연이라는 날실과 씨실이 교차하면서 만들어내는 양탄자 같은 것일까.
이만큼 살아온 내 인생을 돌아볼 때 어린 시절의 '좌통'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걸 깨닫는다. 손오공이 아무리 날뛰어도 부처님 손바닥 안이듯이. 하지만 의기소침할 필요는 없다. 비록 손바닥 안일지라도 천변만화하는 만화경 같은 요술이 펼쳐지는 세상이니 이 또한 재미있지 아니한가. 양탄자의 날실과 씨실을 배열하며 어떤 그림을 그려낼지는 내 몫이기도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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