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살이의꿈

사람을 만나고 오면 쓸쓸해진다

샌. 2023. 12. 19. 10:21

연말이라 모임이 잦다. 이번 주도 두 차례 송년 모임이 있다. 뜸한 해도 있었는데 올해는 별스럽게 만남이 많다. 사람과의 교류가 적은 편인 내가 이럴진대 다른 분들은 어떨까 싶다.

 

모임을 다녀오면 피곤하다. 인간관계에서 오는 감정의 피로도가 크기 때문이다. 사람을 만난다는 게 나한테는 어렵고 힘이 든다. 대화에서는 억지로 박자를 맞춰주며 고개를 끄덕여줘야 한다. 그렇다고 속마음을 솔직히 드러내면 분위기가 어색해지기 십상이다. 가능하면 사람들과의 접촉을 피하지만 모든 관계를 끊을 수는 없는 일이다. 

 

타인과 만나고 접촉해야 활력이 솟는 사람도 있는 모양이다. 사소한 갈등이야 문제 삼지 않는다. 사람이 북적이는 데가 좋고, 모여서 수다를 떨어야 생기가 돋는다고 하니 신기하다. 나는 혼자 있어야 편하다. 사람과의 접촉이 부담스럽다. 버스나 지하철을 이용할 때도 복잡하면 다음 차를 기다린다. 가까이서 사람과 부딪히는 게 싫다. 그래서  차가 떠나고 혼자 남아 있을 때가 흔하다.

 

심리학을 공부한 지인에게 이런 나의 상태를 말했더니 '회피성 성격장애'인 것 같다고 설명해줬다. 인터넷에서 찾아보니 회피성 성격장애는 이렇게 정의되어 있다.

 

"회피성 성격장애는 거절에 대해 매우 예민하고, 그로 인해 사회적으로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는 인격장애다. 자신을 거절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드는 사람만을 대상으로 인간관계를 맺고, 거부나 상실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가 커서 오히려 혼자 지내려고 하지만, 내적으로는 친밀한 관계를 원하는 특징이 있다. 유병률은 0.5%~1% 정도이며 여성에서 잘 생긴다. 사회공포증을 동반하기도 한다."

 

타인과의 만남을 피하려 하고, 대인관계나 사회 적응이 어렵고, 소심하면서 염려가 많고, 거절에 대한 두려움이 크고, 여러 사람 앞에서 말을 잘하지 못한다는 등 일치하는 특징이 많다. 회피성 성격장애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말해주는 개념으로 받아들여도 될 듯하다. 알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런 자신을 이해하고 도닥여주면 된다.

 

인생이 고해(苦海)인 것은 대부분이 인간관계에서 온다. 회피성 성격장애든 아니든 누구나 그러할 것이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어떤 사람은 뒤로 숨으려 하고, 어떤 사람은 괘념치 않고 정면으로 부딪친다. 반응은 개인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생긴 대로 살아야지 어떡하겠는가. 사람과의 접촉 대신 홀로 있는 게 편안하다면 삶의 패턴을 그런 방향으로 정리하면 된다. 퇴직하고 집에서 지낼 수 있는 나에게는 천만다행한 일이다.

 

12월의 잦아진 모임이 부담스러웠나 보다. 사람을 만나고 돌아오면 여느 때와 다르게 더 피곤하고 쓸쓸해진다. 한 해를 보내는 아쉬움과 연말의 스산한 분위기가 더해져 그런지도 모른다. 누가 그랬던가, 인생 50년을 살면 49년은 후회하게 된다고. 남은 1년이란 어머니 품에 안겨 있던 유년뿐이라고. 그나저나 나 아닌 누가 나를 진실로 위로해 주겠는가. 살아가느라 애쓴다고, 그냥저냥, 이만하면 잘 살아가는 편이라고, 내가 나를 보듬고 토닥토닥 도닥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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