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A 선배와 노년의 삶에 대한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다. 이런저런 얘기 중에 몇 살까지 사는 것이 적당할까, 라는 물음이 나왔고 선배는 망설임 없이 85세라고 답했다. 병이 없더라도 그 이상은 살기 싫다는 것이었다. 우리나라 노인을 대상으로 한 통계를 보면 100세까지 살고 싶다는 사람이 50%에 달한다. 이에 비하면 선배는 소박한 바람을 갖고 있는 셈이다. 반면에 일본은 100세까지 살고 싶다는 비율이 20%에 불과하다. 우리보다 앞서 초고령화사회에 들어간 일본은 장수와 고령이 가져다주는 비극을 다수가 인지하고 있다는 뜻이다.
TV를 보면 100세를 넘기고도 건강하게 살아가는 슈퍼 노인이 자주 나온다. 이걸 보고 자신도 그렇게 되리라고 착각하기 쉽다. A 선배와의 대화에서도 김형석 선생이 화제에 올랐다. 선생은 100세가 넘었는데도 강연을 다니고 책을 쓰신다. 최근에는 104세가 되는 미국의 한 할머니가 스카이다이빙을 해서 세계 신기록을 세웠다는 보도가 있었다. 그리고는 8일 뒤에 잠자던 중 조용히 세상을 뜨셨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경우는 0.001%의 사람에게나 있을 수 있는 특별한 행운이다. 현실은 전혀 딴판인데 말이다.
보통 사람들에게 장수가 과연 축복일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 고향에 계신 노모는 아흔이 넘었지만 연세에 비해 건강하신 편이다. 그럼에도 옆에서 지켜보면 살아내는 게 참 힘들다는 느낌을 받는다. "사는 게 지겹다"라는 말씀도 자주 하신다. 마을의 어머니 친구분들은 상태가 더 나쁘다. 한 분은 서너 걸음만 걸어도 숨이 차서 옆집도 겨우 갈 정도다. 당뇨, 고혈압, 관절염을 비롯해 온갖 질병으로 고통을 받고 있다. 더구나 귀가 멀어서 의사소통이 거의 안 된다. 자연스레 투명인간이 될 수밖에 없다. 청력 이상은 노년의 외로움을 가져오는 원인 중 하나다. 만나볼 때마다 "왜 이렇게 오래 사는지 모르겠다"라고 눈물을 흘리신다. 오래 사는 게 결코 축복이 아니다.
인간이 살아가자면 존재의 의미가 있어야 한다. 인정 욕구가 만족되지 못하면 삶의 의의가 없어진다. 노인이라고 예외가 아니다. 늙으면 쓸모가 없거나 사람 대접을 받지 못한다는 자각이 들게 된다. 삶은 외롭고 쓸쓸하고 불안하다. 오래 살면 누구나 이르게 되는 종착역이다. 더구나 90세 이상이 되면 치매 확률이 50%로 올라간다. 인지 기능이 마비되면 살아도 살아 있는 게 아니다. 자식이 있어도 곁에서 부모를 보살피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자신이 누군지도 모른 채 요양병원에서 의술의 처치를 받으며 죽음을 기다려야 한다. 오래 살면 겪게 되는 일반적인 경로다.
"복이 없어 이렇게 오래 살았어요." 노년의 삶을 다룬 어느 TV 프로그램에서 어느 노인이 한탄하며 말하는 걸 들었다. "죽지 못해 산다"는 말이 결코 노인의 엄살만은 아니다. 우리를 비롯한 미래 세대는 장수에 따르기 마련인 부작용을 몸소 체험해야 한다. 장수가 축복이 아니라 형벌일지 모른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끼며 살아가야 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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