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9일에 열렸던 제77회 서울대 후기 학위수여식에서 생물학자인 최재천 교수가 축사를 했다. 선배로서 졸업하는 후배들에게 전하는 당부의 말인데 근래 보기 드문 명연설이었다. 최 교수는 서울대 동물학과를 졸업하고 하버드대에서 생물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모교 생명과학부에서 교수로 재직하다 2006년부터 이화여대 석좌교수로 근무하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진화생물학자다.
이번 축사의 요지는 자기만 잘 살려는 사람이 되지 말고 이웃과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이 되라는 것이다. 선생은 "주변은 온통 허덕이는데 혼자 다 거머쥐면 과연 행복할까"라고 반문한다. 가진 자들은 별생각 없이 키 차이가 나는 사람들에게 똑같은 의자를 나눠주고 공정하다고 하지만 그건 일률적인 공평에 지나지 않는다. 키가 작은 이들에게는 더 높은 의자를 제공해야 비로소 이 세상이 공정하고 따뜻해진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치졸한 공평이 아니라 고결한 공정을 추구해야 한다"라고 당부한다. 그리고 멋진 말을 한다. "공평이 양심을 만나면 비로소 공정이 된다."
아름답고 따스한 문장들이라 직접 타이핑을 하며 옮긴 선생의 연설 내용이다.
여러분 모두의 졸업을 축하드립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그리고 이 영광스러운 자리에 저를 불러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성공은 성적순이 아니다"라는 사뭇 섭섭한 말이 있지요? 성적순이면 좋겠는데, 그렇죠? 다른 건 모르겠는데. 서울대 졸업식 축사 자격만큼은 분명히 성적순이 아닌가 봅니다.
저는 1970년대 '제2지망'이라는 참으로 치졸하고 얄궂은 입시 제도 덕택에 이 대학에 기어들어올 수 있었습니다. 수업 빼먹기를 밥 먹듯 하며 대학 4년을 거의 허송생활 했습니다. 4학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제 삶의 마지막 도피처가 유학이란 것 깨달았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예 짐작하신 대로, 성적이었습니다. 지금 유학을 준비하고 계시다면 너무나 잘 알겠지만, 외국 대학에서 장학금은 고사하고 입학 허가라도 받으려면 평점이 적어도 3.0은 넘어야 하는데, 그 당시 제 성적표에는 D와 F가 즐비했습니다. 단 한 대학만이라도 입학을 허가해 준다면 무조건 달려갈 마음으로 무려 28 대학에 눈물겨운 지원서를 보냈습니다. 그야말로 '하느님이 보우하사' 두 군데에서 연락이 왔고, 저는 그중 한 대학으로 유학을 떠났습니다.
저는 미국 대학에서 화려하게 '학점 세탁'에 성공하며 그야말로 개과천선한 사람입니다. 살다 보니 저 같은 사람에게도 오늘 같은 영광스러운 기회가 찾아오네요. 살아보니 인생 퍽 길군요.
말 그대로 '물 건너갔다'던 동강갬 계획에 대해 당시 김대중 대통령에게 호소하는 신문 기고문을 써서 댐 건설을 마지막 순간에 극적으로 백지화하는 데 성공하며, 졸지에 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가 되어 이명박 정부의 대운하, 4대강 사업에 항거하다 온갖 불공정한 핍박을 당했습니다.
어쩌다 호주제 폐지 운동에 가담해 헌법재판소까지 불려가 과학자의 의견을 변론했는데, 한 달 만에 헌법 위헌 판정이 내려지면 저는 남성으로는 최초로 '올해의 여성운동상'을 수상했습니다....
저는 왜 이 모든 걸 다 하느라 애쓰고 살았을까요? 연구와 교육을 게을리하지 않으려 안간힘을 다하면서도 왜 온갖 다양한 사회적 부름에 종종 제 목까지 내걸고 참여했을까요? 저는 사실 태생적으로 비겁한 사람인데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요?
그 이유를 곰곰이 생각하다 떠오른 단어가 하나 있습니다. 바로 '양심'입니다. 저는 우선 숨었습니다. 솔직히 다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언제나 그놈의 얼어죽을 양심 때문에 결국 나서고 말았습니다. 제 마음 깊숙한 곳에 아주 작지만 끝내 꺼지지 않는 촛불 같은 그놈의 양심을 어쩌지 못해 늘 결국 일어서고 말았습니다. 저는 오늘 여러 후배님들에게 제 마음속에 타고 있는 작은 양심의 촛불을 하나씩 나눠드리려 이 자리에 섰습니다.
오래전 제기 이곳에서 교수로 지내던 어느 해, 의예과 학생들에게 일반생물학을 가르치며 겪은 일화를 소개하렵니다. 숙제 검사를 하다 상당수의 학생이 누군가의 리포트를 그대로 베낀 걸 발견했습니다. 흔치 않은 타이포(typo)가 반복되어 나타난 것입니다. 저는 모두 여덟 명의 학생을 찾아내어 개별 면담하며 다음과 같은 다짐을 받고 관용을 베풀었습니다. "여러분은 대한민국 최고의 능력자들이다. 그런 자들이 부정한 방법으로 이득을 취하면 가진 것도 없고 머리에 든 것도 적은 저 바깥의 많은 사람들은 이 험한 세상을 어찌 살아가야 하는가? 앞으로 의사가 되어, 아니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오로지 정도만을 걷겠다고 나와 약속하면 이번 일은 없던 일로 해주겠다." 저는 그 여덟 명의 의예과 학생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오직 정도만을 걷고 있으리라 기대합니다.
저는 오늘 여러분에게도 똑같은 다짐을 받고 싶습니다. 물론 여러분은 부정을 저지르지 않았습니다. 혼전히 여러분의 노력으로 정당하게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똑같은 당부를 드리려 합니다. 이 땅에서 가장 축복받은 여러분이 공정하게 살지 않으면 그렇지 않아도 여러분과 경쟁에서 이기기 어려운, 저 바깥에 있는, 가진 것도 변변히 없고 머리에 든 것도 많지 않은 대다수의 사람들은 이 험한 세상을 어찌 살아가야 할까요?
공정은 가진 자의 잣대로 재는 게 아닙니다. 재력, 권력, 매력을 가진 자는 함부로 공정을 말하면 안 됩니다. 가진 자들은 별생각 없이 키 차이가 나는 사람들에게 똑같은 의자를 나눠주고 공정하다고 말합니다. 아닙니다. 그건 그저 공평에 지나지 않습니다. 키가 작은 이들에게는 더 높은 의자를 제공해야 비로소 이 세상이 공정하고 따뜻한 세상이 됩니다.
공평이 양심을 만나면 비로소 공정이 됩니다. 양심이 공평을 공정으로 승화시킵니다. 저는 모름지기 서울대인이라면 누구나 치졸한 공평이 아니라 고결한 공정을 추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의 선배들은 입으로는 번드레하게 공정을 말하지만 너무나 자주 실천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만들어갈 새로운 세상에서는 종종 무감각한, 때로는 뻔히 알면서도 모르는 척 밀어붙이는 불공정한 공평이 아니라, 속 깊고 따뜻한 공정이 우리 사회의 표준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여러분은 자타가 공인하는 이 나라 최고의 수재들입니다. '대서울대학교'의 졸업장을 거머쥐셨습니다. 취업전선에서 완벽하게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셨습니다. 그리고 그간의 노고에 경의를 표합니다. 하지만 거기까지입니다. 서울대 졸업장이 두 번째, 세 번째 직장을 얻을 때에도, 70대에 할 일을 찾을 때에도 지금처럼 막강한 힘을 발휘할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천만의 말씀입니다. 여기까지입니다.
여러분은 앞으로도 쉼없이 배우고, 일하고, 또 배우고 일해야 합니다. 융합의 세기, 21세기를 살아내려면 '통섭형 인재'가 되어야 합니다. 겸허한 자세로 평생 공부할 마음의 준비를 하십시오.
다시 한번 여러분의 졸업을 축하드리며 이제부터 살아갈 4분의 3 인생도 지금처럼 치열하게, 그러나 사뭇 겸허하고 따뜻하게 사시기 바랍니다. 주변은 온통 허덕이는데 혼자만 다 거머쥐면 과연 행복할까요? 농민 사상가 고 전우익 선생님은 일찍이 이렇게 말씀하셨지요. "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
제가 평생토록 관찰한 자연에도 손잡지 않고 살아남은 생명은 없더군요. '대서울대' 졸업생으로서 부디 혼자만 잘 살지 말고 모두 함께 잘 사는 세상을 이끌어 주십시오. 우리들의 서울대학교는 그런 리더를 길러내는 대학이어야 합니다. 오로지 정도만을 걷는, 공정하고 따뜻한 리더가 되십시오. 서울대인은 그런 리더가 되어야 할 운명을 타고났습니다. 여러분 모두의 삶을 뜨겁게 응원합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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