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판에서 자라나는 풀꽃을 생각한다. 만약 풀꽃이 말을 한다면 왜 사느냐는 물음에 "그냥"이라고 대답할 것 같다. 풀꽃은 사는 게 무슨 이유가 있느냐고 고개를 갸웃하며 살포시 웃을 것이다.
"그냥"이라는 말이 참 좋다. 내가 너를 좋아하는 것도 이유가 있는 게 아니다. "그냥" 좋을 뿐이다. 이런저런 이유를 댄다면 정말로 좋아하지 않는 것일 수도 있다. 사는 것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무슨 목적이나 의미가 있어 사는 게 아니다. "그냥" 산다. "그냥" 산다고 자신에게 가만히 속삭여 보라. 나를 짓누르던 삶의 무게가 홀연히 가벼워지는 걸 느낄 것이다.
기쁜 일이 찾아오면 웃고, 슬픈 일이 찾아오면 울면 된다. "그냥" 그렇게 살뿐이다. 지금 좋게 보인다고 좋은 일은 아니다. 지금 나쁘게 보인다고 나쁜 일은 아니다. "그냥"은 애착을 내려놓는 마음이다. 바람이 부는 대로 구름이 흘러가는 대로 살아가는 자세다. 아등바등하지 않으니 죽음조차 힘을 쓰지 못한다. "그냥" 살다가 죽겠다는데 사신(死神)인들 어쩌겠는가.
노년은 관조(觀照)의 시기다. 한 발 비켜서서 인생을 바라보는 여유를 가지는 나잇대다. "그냥"이라는 말속에 들어 있는 노년의 마음이다. 힘으로 자랑할까, 지식으로 자랑할까, 무엇으로도 젊은이의 상대가 되지 못하지만 앞서려 하지 않으므로 도리어 한가하고 여유 있다. 이런 걸 지혜라고 부른다.
"그냥"은 너와 나를 구별하지 않는다. "그냥"이라고 말할 때 모든 존재는 함께 어울려 살아간다는 것을 안다. 관조는 그러함을 보는 마음이 아닐까. 속세에 살지만 속세를 떠난 마음이다.
날씨가 싸늘해지고 집 앞의 국화 화분이 늘어났다. 문득 도연명의 시가 떠올라 중얼거려 본다.
採菊東籬下 동쪽 울타리에서 국화를 꺾어 들고
悠然見南山 마음 한가로이 남산을 바라보네
山氣日夕佳 산기운은 해가 저물자 더욱 아름다운데
飛鳥相與還 나는 새들도 서로 어울려 돌아오네
도연명이 말하고자 했으나 말로 드러내지 못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아마 도연명은 해 저무는 저녁 풍경에 서서 혼자 나직이 "그냥"이라고 하지 않았을까. 그런 상상을 해 보는 가을의 어느 날 저녁 무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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