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럭저럭'과 '그러려니'는 늙어가면서 사용 빈도가 늘어나는 말이다. 가끔 지인과 통화를 하게 될 때는 어떻게 지내느냐고 서로 묻는다. 이때 내 대답은 일정하다. "그럭저럭 지내지 뭐." 늙어서의 일상이란 게 그렇다. 잘 지낸다고 자신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못 지내는 것도 아닌 어정쩡한 상태를 표현하는 말로 '그럭저럭'만큼 적절한 것도 없다.
반면에 '그러려니'는 내 자신에게 하는 말이다. 늙으면 마음에 들지 않거나 어쩔 수 없는 일을 안팎으로 자주 만난다. 세상 돌아가는 일도 성에 차지 않고, 몸도 이곳저곳이 고장 난다. 그럴 때마다 예민하게 반응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려니 하는 게 제일 속 편하다.
여러 달째 손가락과 이빨이 말썽이다. 어느 때부터 양 손의 손가락이 구부러지지 않기 시작했다. 아침에 일어날 때 제일 심했고, 활동하기 시작하면 다행히 부드러워졌다. 오른손이 더 심했는데 그중에서도 검지는 거의 사용하기 힘들었다. 그러려니 하며 지내다 보니 조금씩 차도가 보였다. 네댓 달이 지난 지금 왼손은 거의 정상으로 돌아왔는데 오른손 검지는 여전히 구부리기 어렵다. 하지만 아주 느리게 나아지는 게 느껴진다.
여름부터 앞 이빨 하나가 욱신거리기 시작했다. 어느 날 찬 아이스크림을 먹을 때 뜨끔하면서 나타난 증상이었다. 곧 가라앉을 줄 알았더니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다. 딱딱한 음식은 씹지를 못하고 조심하며 지낸다. 이 역시 그러려니 하며 받아들이고 있다. 늙으면 어쩔 수 없지 뭐, 하는 마음이다. 손가락이나 이빨이나 병원에는 가지 않았다. 나는 병원 치료보다는 느릴지라도 자연 치유를 믿는 편이다.
이런 나를 아내는 미련하다고 나무란다. 병을 키운다는 것이다.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반면에 아내는 몸에 조금만 이상이 나타나도 병원을 찾는다. 식탁에는 언제나 약 봉지가 있다. 아내는 나보다 더 일찍 손가락에 이상이 나타났다. 그때부터 뻔질나게 병원을 찾아다녔지만 별로 효과가 없다. 병원과 약이 과연 얼마나 유용한지 나는 의문이다. 그래도 아내는 철두철미 병원과 약을 신뢰한다. 나는 고치려기보다 '그러려니' 하고 살아가려 한다.
인간 관계도 마찬가지다. 전에는 타인에 대한 애증에 자주 시달렸다. 네가 어쩜 그럴 수 있냐며 원망하는 마음을 품었다. 하지만 '그러려니' 하면 들끓는 속을 진정시킬 수 있다. 상대방 입장에서 바라보면 그럴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러려니'는 나에게 갇힌 마음을 넓게 여는 것이다. 그대와는 인연이 다한 것임을 받아들이면 애착에서 벗어나 가벼워진다. 동시에 나는 아무것도 아님을 자각하는 것이기도 하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저지르는 착각 중 하나는 자신이 대단한 존재라도 되는 양 구는 것이다.
바랄 것도 기대할 것도 없이 그냥 살아갈 뿐이다. 모든 것은 스스로 존재하도록 내버려 두면 된다. 이것이 노년이 되어서 살아가는 마음가짐이다. '그럭저럭'과 '그러려니' - 체념과 관조의 철학이 담겨 있는 이 두 말을 나는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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