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 입하(立夏)다. 어느덧 봄날은 가고 여름으로 접어들고 있다. 얼마 전에 영화 '봄날은 간다'를 다시 봤다. 일흔줄에 들어서서 보는 영화는 20년 전과는 느낌이 좀 달랐다.
조연 정도로 여겼던 치매 걸린 할머니가 이번에는 비중있게 다가왔다. 두 젊은이의 사랑이 인생의 짧은 한 때의 에피소드라면, 할머니에게는 인생 전체가 걸린 '봄날은 간다'였기 때문이다. 매일 기차역으로 나가 죽은 남편을 기다리던 할머니는 사랑에 아파하는 손주를 위로한다. "버스 하고 여자는 떠나면 잡는 게 아니란다." 이 영화에 명대사로 회자되는 것이 여럿 있지만("라면 먹고 갈래요?"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이 할머니의 대사도 심금을 울렸다. 제정신이 돌아왔을 때 당신에게 하고픈 말이기도 했을 것이다.
할머니는 자신이 갈 때가 되었음을 인지하고 한복을 곱게 갈아입은 뒤 집을 나선다. 어떻게 돌아가셨는지는 영화에 나오지 않지만 본인이 스스로 죽음을 선택했으리라고 추측된다. 한 모임에서 어떻게 죽을 것인가에 대한 얘기가 나왔었다. 대뜸 A가 곡기를 끊는 방법이 있다고, 자신도 마지막 단계에서는 추하지 않게 죽고 싶다는 견해를 피력했다. 일행도 모두 동감했다. 영화에서 집을 걸어나가던 할머니의 뒷모습이 여전히 아프다.
'봄날은 간다'를 꿰뚫는 키워드는 무상(無常)이 아닌가 싶다. 그런 점에서 상우가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라고 한 말은 역설적으로 인생 무상을 더욱 드러내 보인다. 모든 것은 변하고 사라져 간다. 그러함에도 어느 한 상태에 집착한다면 인생은 힘들고 괴로워지기 마련이다. 인간은 수없이 많은 '봄날은 간다'를 경험하면서 성숙해 간다. 그런 면에서 영화의 라스트 신은 의미가 있었다.
인생이란 무수한 봄날을 보내고 맞으며 걸어가는 여정이라 할 수 있다. 지금 내 나이에도 찾아올 봄날은 있는 법이다. '봄날은 간다'가 감정선을 건드리며 인생의 비의를 드러내 주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힘은 '봄날은 온다'에서 오는 걸 잊지 않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