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만지고 싶은 기분

샌. 2024. 4. 23. 10:58

뮤지션이자 작가인 요조의 산문집이다. 요조 작가는 '책, 이게 뭐라고'라는 팟캐스트에서 목소리로 친근해진 터여서 쉽게 다가갈 수 있었다. 여기에는 음악을 하고 글 쓰는 여성의 섬세한 감성을 느끼고 싶은 면도 있었다. 일흔 넘어 자꾸 무디어지는 감성을 이런 식으로라도 보충하지 않으면 내 생각과 삶이 너무 삭막해질 것 같아서였다.

 

예상한 대로 따스하면서 여린 작가의 마음씀을 글을 통해 접할 수 있어 좋았다. 글은 상당 부분 글 쓴 사람의 인격을 드러내기 마련이다. 작가는 기본적으로 사람을 좋아하는 분 같다. 그러면서 작고 연약한 것에 대한 애정이 잔잔하게 흐른다. 제주도에 '책방 무사'라는 서점을 연 연유도 여기에 있지 않나 싶다.

 

"익숙하게 싫어하던 대상에 낯설게 임해보면 싫어하는 마음이 슬그머니 묘연해질 때가 있다."

책을 열면 나오는 이 문장에 눈길이 오래 머물렀다. 어느 글에 나오는지 확인하려고 책을 훑었지만 찾지 못했다. 아마 비둘기 이야기를 하는 글에 등장하는 문장이 아닐까 생각한다. 사람들은 공원의 비둘기를 보면 익숙하게 싫어서 피한다. 무의식 중에 더럽다는 인식이 들어 있는 것 같다. 모두가 싫어하니까 덩달아 싫어하게 된 건 아닐까,라고 작가는 생각하면서 이 문장을 썼지 않았나 싶다. 어쨌든 자꾸 곱씹어 보게 되는 문장이다.

 

<만지고 싶은 기분>에 나오는 산문 중에서 한 편을 옮긴다. 제목은 '터치'다.

 

 

터치

 

놀이터 벤치에 앉아 있는데 한 손에 깁스를 한 할머니가 다가와 정중하게 자신의 손톱을 깎아줄 수 있는지 부탁해 왔다는 글을 SNS에서 읽었다. 글쓴이는 흔쾌히 손톱을 깎아드렸고 답례로 행주와 율무차를 받았다고 했다. 요즘 이런 글에 유난히 울컥한다. 눈물로 그렁해진 눈을 옷소매로 무심히 닦아내며 나는 어제의 일을 떠올렸다. 친구의 생일 선물을 사려고 서울 명동에 갔다. 딱히 무엇을 사주면 좋을지 생각하지 않고 두리번거리다가 내가 좋아하는 영국의 자연 친화적 화장품 브랜드 매장을 발견했다. 들어서니 자연스레 입구에 서 있던 직원분이 나를 따라왔다. 그의 친절을 조금 심드렁하게 받아들이며 이것저것 냄새 맡고 손등에 발라보다 끈적해진 손등을 씻어내려 매장에 비치된 세면대에 다가갔을 때, 직원분은 "손 씻으시는 김에"라고 하면서 내 손을 잡았다. 그러고는 직접 스크럽과 컨디셔너를 발라주고 마사지해주며 성분들을 설명해준 뒤 손을 흐르는 물에 깨끗이 씻겨주었다. 내 손을 조심스럽게 매만지는 타인의 손을 보며 나는 마음이 이상해졌고 그 기분이 머쓱해서 웃고 말았다.

웃음소리를 들은 직원분이 여전히 내 손을 잡은 채 나를 바라보았다. "죄송해요. 점점 터치가 조심스러운 시대에 살아서 그런지 그냥 이런 접촉에도 마음이 찡해지고 그래요. 그게 좀 민망해서 웃었어요."

내가 사실대로 말하자 직원분은 크게 웃었다. 업무적인 웃음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친구의 선물을 다 고르고 포장을 부탁드리며 떠날 차비를 하는데 직원분이 말했다.

"저 괜찮으시면 저희 매장 향수 코너에서 좀 더 놀다 가실래요? 안 사셔도 돼요. 그냥 보시다시피 매장이 너무 한가해서...."

나는 한참 뒤에야 매장을 나왔다. 아름답고 다양한 향기들을 정신 없이 맡느라 머리가 조금 지끈했지만 행복한 시간이었다. 집으로 천천히 돌아가면서는 다가올 나의 다음 터치가 줄 기쁨을 생각했다. 생일을 맞은 친구의 따뜻한 손, 둥근 어깨 같은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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