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아, 나는 가만히 앉아서 먹고 자고 테레비나 보고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내 팔자가 상팔자다'던 아버지
그 좋은 팔자도 지긋지긋했던 모양이네
온 식구들 불러 모아 놓고
사돈에 육촌 아재까지 불러놓고
그것도 부족해서 내 친구들까지 죄다 불러놓고
큰 홀 빌려서 사흘 밤낮 잔치를 베푸시네
배포 큰 우리 아버지
우리에게 새 옷도 한 벌씩 척척 사주고
아버지도 백만 원이 넘는 비싼 옷으로 쫘-악 빼 입으시고
한 번도 타보지 못했던 리무진까지 타시고
온 식구들 대절버스에 줄줄이 태우고
수원 찍고 이천으로 꽃구경까지 시켜 주시네
간도 크셔라 우리 아버지
이천만 원이 넘는 돈을
삼 일 만에 펑펑 다 써 버리고
우리들 볼 낯이 없었던지
돌아오시질 않네
잔치는 끝났는데...
아마도 우리 아버지 팔자 다시 고쳤나 보네
- 아버지의 팔자 / 김나영
집 근처에 화장장이 있다. 앞길을 지날 때면 가끔 장례 행렬과 만난다. 검은색 리무진 뒤를 대형 버스가 따르고, 그 뒤로 승용차 여러 대가 비상등을 깜박이며 이동한다. 오전에 모란에 나갔다 오는 길에도 같은 광경을 봤다. 지나쳐가며 흘깃 안으로 시선을 돌리지만 사람들 표정은 보이지 않는다. 보이지 않아도 안을 짓누르고 있을 슬픔은 전해진다.
시인은 애써 잔치 한마당으로 비유했다. 잔치는 잔치로되 정작 주인공은 꽁꽁 숨어 있다. 그게 아쉽다고 어떤 사람은 생전에 가까운 지인들과 마지막 인사를 나누기도 한다. 대신 장례식은 간소하게 치른다. 다 훌훌 털고 가는 마당에 타인의 부의금 봉투는 받아서 어쩌겠다는 말인가. 죽어서 리무진을 타고, 값 비싼 수의를 입고, 고급 향나무 관에 누은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남은 자들의 자기 위안이거나 대외 과시용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코로나를 계기로 가족장이 점차 보급되어 가는 것 같다. 부고를 하지 않고 가족끼리 망자를 추모하며 보내드리는 것이다. 친구들과 얘기를 나눠보면 다수가 공감한다. 인식이 바뀌면 장례 문화도 달라지게 된다. 이 또한 바람직하게 변해가는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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