읍내에서 그를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철공소 앞에서 자전거를 세우고 그는
양철 홈통을 반듯하게 펴는 대장장이의
망치질을 조용히 보고 있었다
자전거 짐틀 위에는 두껍고 딱딱해 보이는
성경책만한 송판들이 실려 있었다
교인들은 교회당 꽃밭을 마구 밟고 다녔다, 일주일 전에
목사님은 폐렴으로 둘째 아이를 잃었다, 장마통에
교인들은 반으로 줄었다, 더구나 그는
큰 소리로 기도하거나 손뼉을 치며
찬송하는 법도 없어
교인들은 주일마다 쑤군거렸다, 학생회 소년들과
목사관 뒤터에 푸성귀를 심다가
저녁 예배에 늦은 적도 있었다
성경이 아니라 생활에 밑줄을 그어야 한다는
그의 말은 집사들 사이에서
맹렬한 분노를 자아냈다, 폐렴으로 아이를 잃자
마을 전체가 은밀히 눈길을 주고받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 주에 그는 우리 마을을 떠나야 한다
어두운 천막교회 천장에 늘어진 작은 전구처럼
하늘에는 어느덧 하나둘 맑은 별들이 켜지고
대장장이도 주섬주섬 공구를 챙겨 들었다
한참 동안 무엇인가 생각하던 목사님은 그제서야
동네를 향해 천천히 페달을 밟았다, 저녁 공기 속에서
그의 친숙한 얼굴은 어딘지 조금 쓸쓸해 보였다
- 우리 동네 목사님 / 기형도
동명이인인 줄 알았다. 기형도 시인이 이런 시를 썼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그의 시는 어둡고 쓸쓸하며 삶에 대한 절망이 배어 있다. 읽기에 쉽지도 않다. 시인이 중학생일 때였다. 시흥에서 가난하게 살 때였을 것이다. 고등학생이던 누나가 밤에 귀가하다가 성폭행당한 뒤 살해되었다. 범인은 남매가 함께 다니던 교회의 청년 신도였다. 어린 시인에게 이 사건은 엄청난 충격을 주었을 것이다. 그 뒤로 시인은 기독교를 버렸고 허무주의 철학에 빠져들었다고 한다. 시인의 지상에서의 삶은 채 30년도 되지 못했다.
시인이 품은 희망이 어디에 있었을지 이 시는 보여준다. 캄캄한 방이지만 작은 틈으로 새어들어오는 한 줄기 빛이 있었다. 세상 사람들한테 외면받고 쫓겨나고 초라하고 쓸쓸한, 2천 년 전 유다 땅을 찾아온 예수도 마찬가지가 아니었을까. 우리는 눈 감고 귀 막은 채 살아가고 있는지 모른다.
'시읽는기쁨'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버지의 팔자 / 김나영 (3) | 2023.03.27 |
---|---|
딸을 위한 시 / 마종하 (2) | 2023.03.20 |
늦게 오는 사람 / 이잠 (0) | 2023.02.17 |
사랑이란 이 세상의 모든 것 / 에밀리 디킨슨 (4) | 2023.02.12 |
허깨비 상자 / 김창완 (1) | 2023.02.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