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소풍

샌. 2024. 6. 2. 10:57

 

노년의 상실과 아픔을 리얼하게 그린 영화다. 생로병사는 인간 존재의 숙명이지만 말년의 삶에 대해서는 누구나 회피하려 한다. 나에게도 닥칠 미래임을 인지하나 애써 외면한다. 직시한다고 뭐 뾰족한 수도 없다. 세월이 흘러가는 대로 감내하며 살 뿐이다. 영화 '소풍(逍風)'은 이 불편한 진실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 보여준다.

 

은심(나문희)과 금순(김영옥)은 고향 친구면서 사돈지간이기도 하다. 둘 다 지병에다 자식들이 골치를 썩힌다는 고민을 갖고 있다. 훌훌 털고 금순이 사는 고향인 남해에 내려온 은심은 역시 어릴 적 친구였던 태호(박근형)를 만나 잠시나마 추억에 젖으며 즐거운 시간을 갖는다. 그러나 고향은 옛 고향이 아니었다. 다녔던 학교는 폐교되었고, 동네는 리조트가 들어선다고 시끄럽다. 치매에 걸려 요양원에 있는 다른 친구를 보며 절망하기도 한다. 그 와중에 뇌종양으로 태호가 갑자기 죽고 은심과 금순도 마지막 결심을 한다.

 

영화는 두 사람의 중학생 때 모습과 현재의 모습을 교차로 보여주는데 늙는다는 게 무엇인지 애틋하면서 착잡하다. 구세대가 사라지면서 신세대로 교체하는 게 자연의 순리지만 막상 자신에게 닥치면 막막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심신이 시들면서 자식들과 온전한 소통도 힘들어진다. 평생을 지켜온 신념이 허물어지는 것을 억지로 지켜봐야 한다. 둘은 '소풍'이라는 과감한 선택을 한다. 곱게 차려입고 김밥을 꼭꼭 씹어먹으며 다가올 시간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려 한다.

"김치를 싸 올 걸 그랬지."

낭떠러지 앞에서 손을 맞잡은 채 마지막 지상의 풍경을 돌아보는 둘의 눈길이 너무 슬펐다. 

 

젊은이라면 제 삼자의 시선으로 보겠지만 나에게는 곧 닥칠 나의 일이 되었다. 내가 곧 은심이고 금순이고 태호인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존엄하게 살고 싶고 죽음 역시 존엄하게 맞고 싶다. 불가항력적인 상황에 맞닥뜨릴 때 나는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그저 안타깝고 막막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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