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제1세대 조경가인 정영선 선생이 직접 나오는 다큐멘터리 영화다. 영화는 선생이 만든 정원과 자택을 중심으로 사계절에 걸친 풍경을 통해 선생의 조경 철학을 보여준다. 이 영화를 보기 전에는 선생에 대해 전혀 몰랐지만 영화에 나오는 장소를 통해 선생이 얼마나 대단한 분인가를 알게 되었다.
'땅에 쓰는 시'에서 제일 긴 시간 동안 소개되는 장소가 선유도공원이다. 아마 선생의 대표작인 것 같다. 선유도공원은 근처에 위치한 직장에서 근무한 적이 있었기 때문에 앞마당처럼 드나들었던 곳이다. 옛날 정수 시설을 그대로 활용해서 만든 공원이라 특이하다 여겼는데 정영선 선생의 작품이라는 걸 이제야 알게 되었다. 선유도공원만 봐도 선생의 조경에 대한 생각이 어떠한지를 감잡을 수 있다.
또 하나는 여의도샛강생태공원이다. 이곳도 내가 아끼던 장소 중 하나였는데 역시 선생의 작품이었다. 인공을 최소화하면서 자연 그대로를 살린 공원으로 도심에서 자연 속에 들어간 느낌을 주도록 만들었다. 이 공원을 만들 때 공무원들과 싸우면서 자연 생태를 지키려 한 선생의 노력이 고마웠다.
영화에는 그밖에도 선생이 만든 경춘선 숲길, 국립중앙박물관, 아모레 사옥 정원, 호암미술관 희원, 아산병원 공원, 선생 집의 마당 정원 등이 나온다. 다시 보니 선생의 개성과 숨결이 숨어 있는 것 같다. 한국적인 것을 지키면서 각 공간의 특성에 맞는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선생의 철학이다. 선생 집의 마당 정원은 소박하다. '검소하나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나 사치스럽지 않다[儉而不陋 華而不侈]'는 정신을 구현하고 있는 셈이다.
조경설계 회사인 서안 대표를 맡고 있는 선생은 자신의 하는 일에 대해 자신만만하시고 자부심이 대단한 것으로 보였다. 풀 한 포기, 꽃 한 송이를 자식만큼 귀여워하는 선생의 마음은 영화에서 제일 자주 듣는 "아이, 예뻐라!"라는 말에 오롯이 들어 있다. 선생은 작년에 조경계의 노벨상이라는 제프리 젤리코상을 우리나라 최초로 받았다.
영화 엔딩에 나오는 동요 '모두 다 꽃이야'가 여운을 더 짙게 했다. KU시네마테크에서 봤다.
"산에 피어도 꽃이고 / 들에 피어도 꽃이고 / 길가에 피어도 꽃이고 / 모두 다 꽃이야
아무데나 피어도 / 생긴대로 피어도 / 이름 없이 피어도 / 모두 다 꽃이야
봄에 피어도 꽃이고 / 여름에 피어도 꽃이고 / 몰래 피어도 꽃이고 / 모두 다 꽃이야"